<주일설교요약> 돌아서고 돌아서자 / 요한복음 20:11-18
부활절이 되면, 예수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글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고전15:17) 예수부활의 증거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따라 살고 있는지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일 좌절과 절망과 공포와 우울감에 사로잡혀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삶에 아직 동참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중심주의와 우월감 그리고 교만한 배타심을 보인다면 그것 역시 부활의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예수의 무덤에 찾아갔다가 그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치 공황장애 상태가 되어서 울기만 하다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지 요한복음은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처음에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의 선포를 듣고 따른 제자입니다. 예수의 공생애 과정에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한 가까운 제자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부활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도 못했습니다. 믿으면서도 무엇을 믿는지 모르고 따라다닌 셈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고 주님을 따라다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 번 나오는 단어가 “돌아서다”(strepho)라는 말인데, 한 번은 천사들에게 주님을 누가 가져갔다고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우리말이나 영어도 그렇지만, “찾다”라는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찾아 헤매는 것도 “찾다”이고 이미 찾은 것도 “찾다”입니다.
예수가 눈에 보이니, 찾은 것인데, 누구인지 모르니 찾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예수를 눈으로 보기는 보는데, 진정 예수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그(예수)에게 또 묻습니다. 시신을 어디에 가져다 두었는지 알려달라고 말입니다. 그때 예수는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때 마리아는 두 번째 돌아섭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선생님!”라고 반갑게 부릅니다. 이이야기가 단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부활하게 하였다는 증거의 말로만 보인다면 아직 우리는 깊은 의미를 못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돌아서다.”(strepho)라는 단어는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도 있고, “변화한다.”는 깊은 뜻도 있는 말입니다. 단순히 시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몸을 돌리고 자신의 발걸음이 향하고 있는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돌아섬”입니다. 그렇게 돌아서지 않으면 예수가 가신 길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으니 따라갈 수도 없습니다.
한자성어에 “이소승대”(以小勝大)라는 말이 있는데, 무술인 태극권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적은 것으로 큰 것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7장 7절에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이미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백성을 택해서 출애굽 하게하고, 가나안으로 이끄시는 이유가 ‘이 백성이 가장 큰 민족이 아니라, 작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큰 힘으로 큰일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적은 것으로 큰일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소승대”는 십자가의 도(道)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으로 세상의 지혜를 이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한 것으로 세상의 강함을 이기는 힘이 십자가이고 그 결과가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에서 나옵니다. 그 증거는 우리가 돌아서고 또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보시는 방향을 향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라 살아갈 때 확연하게 우리 눈앞에 드러납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돌아설 기회가 있을 때에 돌아서고 또 다시 돌아서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그의 인도를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선생님!”하고 부르며 부활을 증거 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2024년 3월 31일 부활절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