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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잘들 지내셨죠?
좀 오랜만에 책 추천입니다. 최근 개인적인 일로 영웅 이야기가 끌리더라고요.
그러다 친숙한 작가가, 알고 있는 역사 인물로, 허구적 회고록 같은 소설을 썼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호기심이 생겼고, 마침 영웅적인 뭔가가 필요했던지라, 그 책을 독서하기 시작했죠.
도서명: 잔 다르크를 추억하며
저자: 마크 트웨인
*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을 통해 데이지 형태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톰 소요의 모험>, <허클베리 핀> 이 두 작품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드물 것이다. 에니매이션이든 초등학생용 소설책이든, 그림이 다수인 만화책이든, 그 어떤 형태가 됐든 읽거나 보거나 했을 테니까.
이 두 작품의 저자 마크 트웨인 역시 자세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름 정도는 들어봄직하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이 스스로 뽑은 최고의 작품이 있다는 것, 그것이 앞서 언급한 <톰 소요의 모험>, <허클베리 핀>이 아니며, 우리에게 도서명이 낯선 《잔 다르크를 추억하며》인 줄은 아는 이가 얼마 없을 것이다.
물론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어느 정도 안다. 프랑스 100년 전쟁의 영웅이자 사후 성녀 혹은 성인으로 추존된 인물, 소녀의 몸으로 전쟁에서 큰 공적을 세우며 활약했다는 것도.
그녀의 생애와 안타까운 죽음은 영화나 에니매이션 등으로 2차 창작이 되거나, 모티브로서 또 다른 작품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 마크 트웨인과 잔 다르크의 조합은 생소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신기하다. 마크 트웨인은 과연 어떤 식으로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풀어갔을까?
《잔 다르크를 추억하며》 - 소녀에서 총사령관으로, 그리고 성인으로...
이 소설은 꽤나 독특한 전개 방식을 취한다. 사실 전개뿐 아니라 기고 및 연재 방식 역시 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 마크 트웨인은 이 이야기를 ‘진 프랑수아 올든’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했다.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가진 작가 자신의 이미지를 감추기 위함이었다.
요컨대, 이런 설정을 잡은 것이다. 진 프랑수아 올든이라는 사람이, 역사 속의 실존한 소녀 영웅 잔 다르크의 비서 루이 드 콩트가 남긴 회고록을 번역했다. 이것은 소설 아닌, 역사 에세이 회고록이다.
즉, 그런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 그러나 분명 밝히건대, ‘잔 다르크’라는 인물 빼고는, 그 모든 게 작가가 내세운 설정일 뿐이다. 번안자 진 프랑수아 올든은 작가 마크 트웨인의 다른 가명이요, 회고록의 저자 ‘루이 드 콩트’도 작가가 허구로 역사에 내세운 캐릭터이다. 애초에 ‘콩트’라는 이름부터가 불어로 ‘이야기’를 뜻한다.
어쨌든, 마크 트웨인의 소설은 ‘잔 다르크’라는 인물이 역사에 남긴 발자취에 드 콩트라는 허구의 인물을 끼워넣어 논픽션과 픽션의 줄타기를 전개한다. 그러면서도 실제 인물의 생애와 업적, 역사적 사실은 원안을 유지하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야기의 시작은 소녀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시골 마을 동레미의 일상으로부터이다.
잔 다르크는 1412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때는 영국(잉글랜드)과 프랑스가 한창 전쟁 중이었다.
🏡🛖 글쎄, 이 전쟁의 발발 원인은 모른다. 프랑스 역사를 세세하게 파고들지 않아서 말이다. 하여튼, 100년 가까이 이어졌다 해서 오늘날 우리가 ‘100년전쟁’으로 부르는 그 상황이다. 그렇지만 전쟁 중임에도 시골 마을 동레미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가끔 길 잃은 군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들려오는 좋지 않은 전황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마을 아이들은 언덕에서 뛰놀며 교회에 다니고, 온갖 신비로운 전설을 믿으며 동심을 지켰다. 그 아이들 중에는 물론, 수줍음 많고 다정한 소녀 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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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요정들을 인정해 주셨는데 감히 누가 요정들에게 해를 가한 거죠? 인간이에요. 인간은 금하지만 하느님은 허락하신 해롭지 않은 놀이를 하던 요정들을 다시 걸고넘어진 건 누구죠? 그리고 불쌍한 요정들을 위협하면서 집에서 쫓아낸 건 누구죠? 선하신 하느님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요정들에게 주신 집에서 말이죠. 하느님은 오백 년 동안 요정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계신다는 표시로 요정들에게 비와 이슬을 내려주시고 햇빛을 비추어 주신 게 아닌가요? 그곳은 하느님이 선하신 마음으로 은혜로우신 마음으로 요정들에게 주신 요정들의 집이에요. 인간은 집을 빼앗을 권리가 없단 말이에요. 요정들은 아이들의 가장 순하고 진실한 친구들이었어요. 또 오백 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즐겁게 아이들에게 잘해주었을 뿐, 어떤 아이도 해치거나 상처를 준 적이 없어요. 아이들은 요정을 사랑했어요. 지금은 요정 때문에 슬퍼하고 있죠.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이 무얼 했기에 이렇게 잔인한 상처를 입어야 하나요? 불쌍한 요정들이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런 적이 없었어요. 위험하지 않은 요정들을 위험할 수 있다고 내쫓는 건 말이 안 되죠. 악마의 친척이라고요? 그게 뭐가 잘못이라는 거예요? 악마의 친척이라도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요정도 권리가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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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의 성품은 온화하며 착했다고 한다. 소설 속 회고록의 저자 루이 드 콩트는 그렇게 전한다. 양식이 부족한 겨울밤, 길 잃어 마을로 찾아와 끼니를 구걸하는 수상한 군인에게, 부친의 반대가 있음에도 기꺼이 자신의 식량을 나눠줄 만큼.
그러나 한편으로 잔은 불의에 기꺼이 대적할 수 있을 만큼 정의롭고 용기 있는 소녀이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그런 모습을 요정 추방 사건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전설이 곧 실화인 시대라 당연히 동화책에나 나오는 요정도 실제 있다고 믿던 시대였다. 동레미 마을 사람들도 아이들이 자주 놀곤 하는 언덕에 요정들이 산다 믿었다. 시국이 불안정한 때라, 그런 작은 요정까지 아이들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씨앗으로 여겨진 모양이다. 마을 신부에게 요정을 쫓아내달라 요청한다. 신부는 요정은 악마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혹은 마을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니면 종교적인 신앙을 더 공고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요정을 내쫓는 의식을 한다.
이 소식에 아이들은 슬퍼한다. 그리고 잔은 신부에게 찾아가 부당함을 외친다. 당시 종교는 꽤나 큰 정신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만큼의 권위도 지녔을 것이다. 그러니 신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실제로 어른들의 행동이 부당하든 어쨌든, 그 일에 정면으로 반박하기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소녀는 신부에게 찾아가 논리와 정의에 근거해 성토했다. 심지어 하느님이 행한 자비에 호소하며 종교적 명분까지 갖췄다.
비록 소재가 ‘요정’이라는 유아틱한 것이긴 해도, 그에 담긴 논리와 정의와 자애가 빛바래지는 않는다. 실제로 역사 속에 잔 다르크는 문맹이고, 고등 교육을 받은 적 없음에도, 상당히 논리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된다. 요정 일화가 비록 허구이지만, 기록에 근거한 허구이기에 신빙성을 갖는 것 같다. 작가는 잔 다르크의 성품과 기질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일화를 쓴 게 아닐까?
그렇게 나름대로 소소한 사건 말고는 대체로 평온했던 어린 시절의 끝에서 소녀 잔은 어느 날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다. 하느님의 계시, 천사의 음성 등으로 표현되는 그것. 십대 소녀에 불과한 잔 다르크에게 왕세자 샤를 7세를 만나고 전쟁에 참전하라, 너는 프랑스를 구하고 랭스에서 샤를 7세의 대관식을 하게 되리라 속삭이며 예언한 그것.
나는 언제나 이 대목이 좀 의문이다. 고작 십대, 중학생짜리 소녀에게, 아무리 그때가 요즘과 달리 조숙한 시대였다 해도, 아무튼 소녀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애한테 전쟁에 나가라 하다니. 하느님이 주소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성경의 예언자들이나 선지자에게 내려지는 신탁인지, 실제 있었던 일이 맞는지, 아니면 애국심과 신념에 불타는 소녀의 주장일 뿐인지 오늘날의 우리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역사에 기록에 의하면, 잔 다르크는 기꺼이 전장으로 향했다는 사실이다. 가족의 반대가 있었고, 영주의 불신이 있었지만, 소녀는 기어코 샤를 7세를 만났다. 그리고 17살에 나이에 프랑스 총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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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 헌신하겠습니다! 장군님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장군님의 병사가 되겠습니다! 제 마음을 모두 장군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제게 영혼이 있다면 영혼까지. 그리고 저의 힘을 모두 바치겠습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서 그런지 힘이 아주 넘칩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제 생겼습니다! 장군님이 제게는 프랑스입니다. 장군님이 저의 프랑스입니다. 제게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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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프랑스는 그야말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존망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왕인 샤를 6세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국정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왕비인 이자보는 사치와 향락, 온갖 부정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귀족들은 프랑스와 프랑스 왕을 지지하는 아르마냐크 파와 영국과 영국 왕을 지지하는 부르고뉴 파로 나뉘어 정쟁만 일삼았다. 덧붙여 왕비는 영국 편이었다.
📑 엎친 데 덮쳤다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트루아 조약’까지 체결되었다. 프랑스의 왕 샤를 6세의 딸 카트린과 영국의 왕 헨리 5세가 결혼하여 그 둘 사이에 후손이 영국과 프랑스를 공동 통치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엄연히 왕세자 샤를 7세가 있는데도 그런 조약이 맺어졌다 하니, 이 정도 되면 거의 우리나라 구한말 일제강점기 주권 피탈 직전과 유사한 상황 아닐까 싶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국가 지도층은 하나같이 막장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무능한 왕과 무의미한 왕비 대신 국정을 이끌어가는 샤를 7세는 두 개의 파벌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했다. 심지어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하나 고민했다는 설도 있었다. 잔 다르크가 하느님의 계시로 불연듯 떨쳐 일어나 왕과 귀족들 앞에 나아갔을 때도 그들은 의심하고 검증하고, 온갖 허례허식에 빠져 시간만 끌기 바빴다.
솔직히 앞에 의심과 검증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긴 했다. 시골 출신의 어린 소녀가 뜬금없이 나타나 하느님이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세웠다고 말하는데,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법학자와 신학자와 온갖 지식인들의 검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붙은 지나치게 긴 재판과 지나치게 과한 허례와 지나치게 휘황찬란한 허식은 정녕 필요했던 것인가?
‘대외 선전용’이라고 하기에도 지나쳐 소설 읽다가 기가 찼을 지경이다. 백성 혼자 애국에 불타지, 백성만 헐벗고 피 흘리는 것 같았다. 귀족과 왕은 광대 같은 화려한 복장이나 하고 모자나 쓰고 보석이나 치렁거릴 뿐이다. 우스꽝스러운 꼴에 경멸만 나올 따름이었다. 왜 관찰자 루이 드 콩트가 그저 왕이라는 이유 하나로 샤를 7세에게 잔 다르크가 무릎을 꿇고 경애하는 걸 보며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알 만하다. 이해될 뿐 아니라 공감된다.
좌우간 잔 다르크는 우여곡절 끝에 총사령관으로서 최고의 격전지 오를레앙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군대 문화에도 변화, 그러니까 쇄신을 가져온다. 당시 나라가 막장이라 군영도 영 꼴이 말이 아니었다. 군인이 도적으로 변해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기도 했고, 군영에 창부가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하니,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었을 것 같다. 잔 다르크는 어떤 모종의 카리스마와 종교적인 권위, 일종의 신비감으로 군영을 이끌어 프랑스 군대를 군인답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잔 다르크는 민중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소설에서 그 주요 일화로 내세우는 건, 타령으로 사형당할 뻔한 군인을 잔 다르크가 구명한 일이다. 그는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 잠시 다녀오게 해달라 요청하지만 그 청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그는 무단 이탈해 아내를 보내고 다시 군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타령의 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잔 다르크는 군인의 사정을 참작하고, 그가 복귀했음을 들어 군인을 면책한다. 이건 프랑스 군대가 강팍했다 봐야 하는지, 융통성이 없었다 봐야 하는지, 아니면 군법이 쓸데없이 엄중했다고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모르긴 해도 이 일화 하나로 잔 다르크의 신망은 더 두터워졌으리라.
게다가 이어진 화려한 전과,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오귀스탱 요새에서는 대승을 거두는 등의 성과가 겹치자 민중은 이 소녀에게 열광한다. 잔 다르크의 공로를 인정한 샤를 7세가 귀족 작위 ‘뒤 리스’를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 누구도 가능하다 말하지 않은 랭스에서의 대관식까지도 잔 다르크 덕에 진행할 수 있었다. 랭스로 향하는 경로에 영국의 요새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녀 총사령관 잔 다르크의 승리가 그 요새를 모두 점령하고 프랑스의 왕관을 왕의 머리에 씌웠다.
《잔 다르크를 추억하며》 - 뒤 리스도, 성인도 아닌, 그저 잔 다르크로 오롯한
마크 트웨인은 자신이 집필한 다른 어떤 작품보다 이 책 《잔 다르크를 추억하며》를 스스로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았다. 준비 기간만 12년, 쓰는 데는 2년이 걸린 소설은 그에게 큰 보람과 기쁨으로 다가왔다고. 작가는 잔 다르크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사료와 함께 불어와 영어로 된 많은 책들을 연구한 후에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잔 다르크에 대한 주요 사건과 재판 기록, 등장 인물 대부분도 실존한 인물이다. 더불어 당시의 시대상도 은근 담고 있어 역사서가 아니라 모험담이나 전설집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가령, 영국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 멀린의 예언이 당시 잔 다르크에 대한 예언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이 소설을 통해 접했다. 트럼프 카드 잭 하트의 모델이 잔 다르크의 전우였던 라 이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 외에도 카트린 성당에 묻혀 있던 전설의 검,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에 쓰이던 생레미 성당의 유리병에 대한 전설 등 소설 곳곳에는 당시 떠돌던 풍문과 전설과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또한 곳곳에 자연스레 스며든 완전히 창작된 이야기들, 이를테면 잔의 친구 허풍쟁이 팔라댕이 각색한 잔 다르크와 샤를 7세의 만남을 술집에서 떠벌이는 장면, 루이 드 콩트가 소녀의 관심을 얻고자 지은 시 오를레앙의 장미와 같은 에피소드는 중간중간 적절한 쉼표로서 기능해 독자의 피로감을 덜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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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haec ex urbe canuti nemoris eliminabitur puella, ut medelae curam adhibeat.(하얀 숲에서 한 처녀가 나와 치유할 것이다.) / Ascendet Virgo dorsum Sagittarii, et flores virgineos obfuscabit.(처녀가 궁수의 등에 올라 처녀의 꽃들을 가릴 것이다.” - <브리튼 왕들의 역사>에 실린 멀린의 예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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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뼈대 위에 마크 트웨인이 창작적 기법을 통해 채색한 잔 다르크의 이야기의 끝은 아시다시피 ‘비극’이다. 랭스의 대관식 이후 잔 다르크는 여세를 몰아 파리까지 진군하자 주장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이쯤에서 영국과 휴전을 맺길 바랐다. 왕이 된 샤를 7세는 왕관 썼으니 이제 됐다는 건지, 그 자리에서 안주하길 원했다.
샤를 7세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떠한지는 모르겠다. 그 아수라장 시대에서 어쨌든 그는 왕이 되었으니 승자라 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잔 다르크를 끝내 외면한 것은 그 어떤 정치적 이념과 이익을 떠나,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만인에 의해 지탄받아 마땅한 부끄러운 행적일 것이다. 망말로 그가 누구 덕에 왕관 썼는데?!
결국 우유부단한 왕과 신하들 탓에, 잉글랜드군과 부르고뉴 파는 시간을 벌게 되었다. 뒤늦게 출발한 잔 다르크는 생드니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부상을 당해 후방으로 옮겨졌고, 영국의 반격을 당해 그만 사로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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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귀족 아가씨 뒤 리스가 일어났다. 상류 귀족들은 자기들의 성스러운 신분에 참여한 것을 축하해 주며 잔의 새로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잔은 당혹스러워하면서 자기처럼 천한 태생과 신분에 그런 영예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상은 필요 없으니 그저 잔 다르크로 소박하게 남아 있게 해 주고 잔 다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니! 어찌 잔과 어울리지 않는 그 이상인 것이, 잔보다 더 높고 더 위대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의 귀족 아가씨 뒤 리스. 빛나고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뒤 리스라는 이름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잔 다르크!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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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7세와 프랑스 귀족들은 잔 다르크를 외면했다. 민중의 지지를 업은 소녀, ‘그 처녀’ 전쟁의 영웅이 위정자들에게는 퍽 불편했을 것이다. 비록 부귀와 영화 같은 건 바라지 않았고, 오직 잔 다르크가 고향에서의 평온한 삶을 원했다고 해도 말이다.
영국은 그녀의 두터운 신망을 무너뜨리기 위해 ‘마녀’로 몰았다. 재판을 구실로 압박했고, 협박했고, 고문했다. 성직자 코숑 신부는 루앙의 대주교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잔 다르크의 유죄 판결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재판을 진행했다. 어떻게 해도 그 작업이 신통치 않자, 마지막에는 비공개로 재판을 진행해 졸속으로 마무리했다. 끝내 소녀 영웅은 덧없이 불길 속으로 스러져 갔다.
예전부터 늘 궁금했다. 잔 다르크는 신화인가, 역사인가?
👩🦯 우리에게도 유관순이 있었듯이, 그 옛날에 그런 영웅이 있었다는 것도, 그래, 충분히 신빙성 있었다.
다만 그녀가 왕의 임명을 받고 전군을 이끄는 사령관이 되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은 사실로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책은 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당시 왕권의 허약함, 영국과 적당히 협상하여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귀족들의 행태, 그에 대한 희생양으로 나라를 구한 영웅까지 내버리는 정치적 상황들이 펼쳐진다. 1부와 2부가 전쟁 가운데에서도 밝고 명랑했다면, 끝이 다가오는 3부는 꿈에서 찬물을 맞고 깨어난 듯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씁쓸했다. 그래서 오로지 신앙과 신념으로 조국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잔 다르크의 고독한 승리와 죽음의 이야기는 설득력 있으면서 동시에 가슴 찡했다. 결국 명예 회복 재판을 통해 복권이 되었다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의로울 줄 알고 다정할 줄 아는 그 소녀는, 이미 한 줌 재로 흩어져 버린 것을.
그러나 역사에는 그 이름 한 줄이 남았다. 잔 다르크, 그녀가 원했던 대로 그 이름만이, 그 하나로서 오롯하게.
왕은 그녀에게 명예를 주었고 ‘뒤 리스’라는 귀족 작위도 하사했다. 하지만 잔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교회는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켰고, 성녀 혹은 성인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그녀가 바란 건 아니었다.
그녀는 동상을 세워달라 청하지 않았고, 자신의 마을에 그녀를 기리는 성당을 지어달라 요청한 적 없다.
바란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마을에 가해지는 세금 면제뿐이었다. 약속은 약 300년간은 지켜졌다. 그러나 끝내 그 빛이 바랬다.
그럼에도, 그 이름 한 줄만은 남아 의연하게 시대의 한 자리를 채웠다. 허구인지 신화인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잔 다르크’라는 인물이 있었고, 그 소녀가 나라를 위해 행한 일들은 기록으로써 남았다. 뒤 리스라는 허울뿐인 명예도, 성인이라는 높은 자리보다도, 그저 대중은 잔 다르크를 기억한다. 그 하나로 오롯하게. 그녀가 바란 대로.
나는 이 점이 좀 부러웠던 것 같다. 요즘 심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마음도 몸도 고단했다. 그것을 의연하게 잘 넘기고 싶었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웅이나 우상 같은 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프랑스 민중이 그랬듯이.
아니면, 그저 도피할 영웅적인 모험 이야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으며, 잔 다르크의 일생을 따라가며 생각했다.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명예와 허식과 환경과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결국 하나는 남기고 간 한 소녀의 일생을 보면서.
그 끝이 비극이지만, 결국은 승리했다고도 볼 수 있는 삶이라면, 나름 만족할 만한 결말이 아닐까?
나도 너무 연연해하지 말아야겠다. 잔 다르크가 잔 다르크일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뿌리이자 자신의 중심을 잘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정치적인 권력과 영광에 휩쓸렸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되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그냥 매사 최선을 다하자. 그걸로 족하다. 감정적인 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자. 물론 이래도 자주 휘청이고 아프고 벅찰 테지만, 그래도...
이 소설에 대한 총평은 이렇다. 마크 트웨인의 《잔 다르크를 추억하며》는 비록 소설이지만, 역사 코너에 두어도 좋을 책이다. 최소한 잔 다르크라는 인물에 대해 입문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재미도 놓지지 않았다. 신화와 역사와 전설과 진실, 그 어디쯤을 방랑하길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첫댓글 성공적인 삶이란?
사후 나를 1 년 만이라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공한 삶이 였다고 말 할 수 있다.
정의롭고 의의로운 삶에 갇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놓친다면 무슨 소용일까? 인생은 참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