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나무가 교감하는 순간의 진한 감동을 전하며 ‘나무 대변인’으로 살아왔던 그가 이제 도시 한가운데 살고 있는 나무 산책에 나섰다. 빌딩 숲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공원이나 광장에서, 빽빽한 주택가에서, 8차선 대로변에서, 학교와 관공서에서 고락을 같이한 나무들을 한 그루 한 그루 불러내었다. 도심의 조경수 개잎갈나무부터 순백의 꽃 옥매까지, 도시 속 대표적인 나무 38종의 생태와 일상생활에서의 쓰임은 물론 그에 얽힌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지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생태적이고 문학적인 감성으로 써내려간 이 산책기에는 그간 전해오는 곁 이야기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지식들이 가득하다. 저자가 현장에서 찍은 120여 컷에 달하는 세밀한 사진과 각각의 나무에 관한 식물학적 표준 정보까지 별도로 수록해 풍부하고도 입체적인 나무 읽기를 제공한다. 늘 봐왔지만 이름조차 몰랐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주변 나무 이야기를 명쾌하게 정리한 나무 교양서로 손색없다.
도시는 어쩌면 산과 들, 혹은 농촌 산촌과 같은 시골 마을보다 훨씬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시골에서라면 대개 자생하는 생물들 위주로 식생이 이루어지겠지만, 자생하는 생명체의 서식지를 파헤치고 들어선 도시에서는 새로이 생명체를 들여와야 한다. 결국 다양한 생명체들을 끌어들여 심어 키우게 되고, 자연스러움이야 모자랄지 몰라도 다양함에서만은 시골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든 다양하든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곳은 없다. 자연의 숨결이 멈춘 곳이라면 사람의 숨결까지 멈추어야 하는 곳이다. 이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곁의 자연,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 앞에 우리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을 함께 찾아보기로 하자.
-「들어가는 글」에서
개잎갈나무부터 옥매까지, 세상에 흔한 나무는 없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무들의 진짜 이야기
저자는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나무가 있다. 그의 존재를 알아주든 말든 나무는 도시인들 곁에서 여느 숲에서와 마찬가지로 광합성도 하고, 미세먼지도 빨아들이며 싱그럽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늘 곁에 있는 나무들이지만 정작 우리는 도시살이에 지쳐 그들의 존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상에 꽃 피지 않는 나무가 없음에도 단풍나무에 꽃이 핀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도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그 나무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개 플라타너스로 부르는 양버즘나무가 도시 공기를 맑게 해주는 대표적인 가로수라는 사실,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의 조상인 왕벚나무의 원산지를 정작 일본에서는 찾을 수 없고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자못 흥미롭다. 또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도 바로잡는다. 라일락의 공식적인 우리말 이름은 ‘서양수수꽃다리’로서, 수수꽃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자라던 토종 나무라는 것. 우리가 마로니에로 많이 알고 있는 나무는 일본에서 건너온 칠엽수로서 프랑스 파리의 가로수인 마로니에가 아니라는 것. 눈에 가까이 대면 눈이 먼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능소화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양반꽃’이라 불리던 양반의 전유물로서 이 꽃을 독점하고 싶었던 지배계급의 욕망이 소문의 배경이라는 유래를 되짚기도 한다.
또한 단풍나무를 통해서는 단풍의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고, 소나무의 번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숲이 오랫동안 변화하는 과정인 ‘천이遷移’의 단계를 설명한다. 헷갈리곤 하던 철쭉과 진달래 구별법뿐만 아니라 학자수나 선비나무라 불린 회화나무가 서양에서도 비슷한 별명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까지 이르면, 저자의 도시 나무 읽기는 더욱 진진해진다. 나무의 생태학적 지식은 물론 다양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쉬운 설명을 곁들여 나무에 전문적인 식견이 없더라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독서가 될 만하다.
양버즘나무가 도시의 가로수로 알맞춤하다는 데에는 양버즘나무만의 특징이 있다. 그의 넓은 잎 표면에는 얼핏 보아서 구별되지 않는 매우 작은 솜털이 촘촘히 돋아 있는데, 이 작은 솜털이 공해와 매연을 빨아들이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도시의 나쁜 공기를 빨아들이는 데에 제격이다. 덧붙여 공해가 심한 조건에서도 양버즘나무는 잘 견뎌내니, 그야말로 가로수로 더 좋은 나무가 없지 싶다.
그런 이유로 양버즘나무는 세계 곳곳에서 도심의 가로수로 널리 심어 키우는 나무가 됐다. 심지어 공해 걱정이 그리 크지 않았을 기원전 5세기 무렵의 그리스에서도 가로수로 플라타너스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양버즘나무의 이름이 붙은 건 줄기 껍질의 생김새 때문이다. 양버즘나무의 줄기 껍질에는 흰색에서 유윳빛 혹은 회색의 얼룩이 심하게 드러나는데, 그게 마치 우리 얼굴에 나는 버짐을 닮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표준어로 ‘버짐’을 택하고 있지만 옛날 표준어는 ‘버즘’이었고 한번 정한 식물 이름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버즘나무 양버즘나무로 표기한다.
양버즘나무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온갖 더러운 배출물을 빨아들여서 사람 사는 마을의 공기를 깨끗이 해준다.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혜택의 끝을 알기 어려울 만큼 고마운 노릇이다. 흔하디흔하게 보는 나무이지만, 그야말로 고맙고 고마운 나무다.
-56~57쪽
사람 사는 곳에 나무가 살고 나무 사는 곳에 사람이 산다
자연에서 배우는 사람살이의 지혜
『도시의 나무 산책기』를 통해 도심 속 나무의 식생을 읽어주는 저자의 산책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흔한 나무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흔하게 보는 사람의 눈이 있을 뿐이다. 저자는 도시 나무살이의 다양한 모습을 애정을 담아 새롭게 발굴해낸다. “필경 한 송이의 꽃, 한 그루의 나무는 오래도록 사람살이의 알갱이로 남는다는 깨우침이 고마울 뿐이다”라는 저자의 깨달음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마침내 나무살이란 사람살이의 한 이름임을 잊지 않는 그에게 나무는 나무로만 머물지 않고 사람을, 세상을, 자연의 이치를 배울 수 있는 지혜의 통로가 된다. 나무의 말을 부단히 듣고자 노력하고 “내 곁의 나무를 한 번 더 바라보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그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의 말대로 눈을 들어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초록의 생명과 더불지 않고 가능한 생명은 이 땅에 없다. 풀이든 나무든 초록의 모든 생명체는 세상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는 기반이다. 나무 없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나무가 아름다운 곳은 사람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며, 나무가 죽어가는 곳은 사람도 살 수 없는 곳이라는 깨달음이 간절하게 필요한 때다. 내 곁의 나무를 한 번 더 바라보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맺는 글」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그 자리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다. 하기야 자연 상태의 나무가 솟아오르기 어려울 만큼 높이 솟구친 고층 빌딩이 스카이라인을 이룬 도심에서라면, 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라도 사방을 휘휘 둘러보면 어느 한쪽에서만큼은 필경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나무, 운이 좋다면 초록 숲을 이룬 산의 능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59쪽
책속으로 추가
시골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밤나무를 옛 어른들은 조상의 음덕을 잊지 않는 기특한 나무라고 했다. 제사상에 생밤을 깎아 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건 밤이 처음 나무로 독립해 뿌리를 내릴 때 자신에게 생명을 내린 어미 나무의 흔적을 오래도록 간직한다는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밤나무의 씨앗인 밤을 땅에 심으면 싹이 나오는데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밤 껍질이 어린 나무의 뿌리에 계속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여느 나무들이 싹이 트면서 곧바로 씨앗의 껍질과 같은 이전의 흔적을 모두 덜어내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걸 보고 옛 어른들은 밤나무를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는 나무로 여기게 됐고, 조상의 음덕을 기억해야 하는 제사상에 반드시 올리게 됐다고 한다.
-200~201쪽
목에 한껏 힘을 주고 부는 나팔처럼 싱싱하게 고개를 쳐들고 피어나는 능소화 꽃송이. 바람 불고 비라도 몹시 내리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능소화 꽃송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 나팔을 닮은 꽃들이 불어내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시대의 양반 아닐까 싶다. 능소화 핀 대문 안마당에 빗자루를 들고 선 집주인의 여유와 풍류가 부럽다.
-222~223쪽
수수꽃다리를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른다고 했는데, ‘라일락’은 식물학에서 부르는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국가표준식물목록이나 식물도감에는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식물이 없다는 이야기다. ‘라일락’은 영어 문화권의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라일락의 공식적인 우리말 이름은 ‘서양수수꽃다리Syringa vulgaris L.’다. 수수꽃다리와 같은 종류인데 서양에서 들어온 나무임을 밝히기 위해 수식을 붙였다.
수수꽃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자라던 토종 나무의 예쁜 이름이다. 따뜻한 기후를 싫어하는 수수꽃다리는 우리나라의 중북부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옛 선비들이 정원에 심어 가꾸기를 좋아했다. 옛 사람들은 우리 산과 들에서 자라는 수수꽃다리를 구해 와서 자기 집 정원에 심어 키웠다. 대부분은 휴전선 이북 지역에서 자라던 나무였다고 한다. 수수꽃다리가 지금은 휴전선 이남 지역에서 자라기야 하지만, 자생지를 찾을 수 없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293~294쪽
칠엽수를 알기 위해 먼저 세밀하게 나눠서 이야기할 게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자라는 마로니에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칠엽수가 서로 다른 나무라는 사실이다. 물론 두 나무는 구별이 쉽지 않을 정도로 생김새가 닮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심어 키우는 칠엽수는 일본을 고향으로 하는 나무이고, 프랑스 파리의 마로니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을 고향으로 하는 나무다.
수수꽃다리와 서양수수꽃다리가 그랬던 것처럼 칠엽수와 마로니에 역시 워낙 닮아서 일본에서도 칠엽수를 보통 마로니에로 부른다. 우리도 일본에서 이 나무를 처음 들여올 때, 일본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르면서 마로니에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부르자면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는 그냥 ‘칠엽수’이고, 프랑스의 가로수로 유명한 나무는 ‘서양칠엽수’라 해야 정확하다. 마로니에는 당연히 ‘칠엽수’가 아니라 ‘서양칠엽수’의 다른 이름이라는 이야기다.
-298쪽
한 그루의 나무를 온전히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해 혹은 세 해가 걸린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일테면 나무에서 새잎 나고 꽃 피는 봄, 열매 익어가는 여름, 단풍 들고 낙엽하는 가을, 잎 진 뒤 묵묵히 지내는 겨울, 철마다 나무는 다른 생김새, 다른 표정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나무에 따라서는 꽃이나 열매 맺는 일에서 해걸이를 하기도 한다. 해걸이가 아니라 해도 나무의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올해 잘 맺은 열매가 이듬해에는 어떻게 변하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두 해 이상의 긴 관찰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이 같은 관찰까지는 아니라 해도 주변의 나무를 살펴보고, 그와 교감하는 일은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된다. 사람보다 오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은 언제나 천천히 다른 생명체들을 자기 곁으로 끌어들인다. 가만가만 나무를 바라보아야 나무는 비로소 제 안에 담은 이야기를 표정으로 들려준다.
-303~304쪽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나무가 있다. 그의 존재를 알아주든 말든 나무는 도시인들 곁에서 여느 숲에서와 마찬가지로 광합성도 하고, 미세먼지도 빨아들이며 싱그럽게 살고 있다. 마흔 종류 가까이 되는 나무들을 순서 없이 소개했다. 내가 사는 수도권 도시 아파트를 중심으로 반경 1킬로미터 안에서 늘 만나는 흔하디흔한 나무들이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정도의 나무는 쉽게 주위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뿐 아니라 이 책에 소개한 나무들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