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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 보좌의 영광을 보는 사람(김요셉)
이사야 6장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내시는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가 어느 때냐,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어떤 사람이었느냐? 이스라엘 유대 나라의 왕 중에서도 훌륭한 왕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경은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귀한 도우심을 받았던 사람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웃시야는 전쟁의 이김으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높임을 받았었는데,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되니까 사람은 자꾸 변하죠. 그래서 교만이 들어옵니다. 교만이 들어와서 제사장만이 분양하고 이렇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 걸 자기가 하겠다고 설치고 나섰다가 무섭게 책망을 받고 그만 문둥병에 걸려가지고 왕궁에 살지 못하고 별궁에 따로 갇혀가지고 쓸쓸하게 이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 갔습니다.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할 때에 특별히 웃시야 왕이 죽은 것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면서 <하나님 훌륭한 왕이 이렇게 세상을 떠났는데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나님 우리나라를 구해 주시옵소서. 이 주변에 강한 나라들이 많아가지고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하나님 이런 위협 속에서 우리를 구해주시옵소서> 하면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을 거예요. 이렇게 기도하는데 갑자기 환상이 보입니다. 어떤 환상이 보였습니까? 하나님 보좌에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 보좌에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모습은 물론 안 보이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데 그 주변을 스랍, 천사들이 종류가 여러 가지가 나오죠.
그래서 이 수랍 천사들이 있는데 그 모습을 봤더니 날개가 6개가 있더래요. 그래서 앞에 있는 두 날개로는 눈을 가렸고 뒤에 있는 두 날개로는 발을 가렸고 가운데 있는 두 날개를 가지고 날아다니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했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천사를 안 믿어요. 옛날 예수님 당시에 이 사두개인들은 천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어도 천사도 귀신도 믿지 못하겠다 이렇게 하면서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믿고 그러겠다고 하니까 우리 신앙생활이 잘못되어 가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 우리 신앙은 절대로 바르게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영적인 세계를 사모하면서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고 살아야 합니다. 옛날 요셉은, 또 다니엘은 꿈을 잘 꾸었고 꿈을 해석하는 거를 잘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 이런 환상을 봐야 돼요. 꿈 비전,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거를 따라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기도할 때에 환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상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지시하시기도 하시고 그에게 하늘의 신령한 것을 깨우쳐 주시기도 이렇게 했는데 우리도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중요하게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이 돼야 된다, 그러니까 선지자는 누구냐, 하나님 보좌의 영광만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 또 되어야지 하겠다 하는 거죠. 예수님 말씀하셨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우리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청결해지면 영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느냐, 그러면 진짜로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느냐 우리가 그렇게 쉽게 생각하기 이제 쉽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하신 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워 씨름하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을 받죠. 그러고 나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브니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말이죠. <내가 하나님을 만나보았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얼굴로 찾아오셨습니다. 또 민수기 6장 20절 이하에 보면 구약에서 말하는 우리가 보통 구약의 축도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명령하시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이렇게 축복을 해주라> 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는 네에게 복을 주시고 너에게 평강을, 너에게 행복을 주시기를 원한다> 이제 이렇게 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이 얼굴을 너에게 얼굴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얼굴을 너에게 향하여 드셔서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 이렇게 축복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세 가지로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옷자락기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성소에 가보면은 하나님의 언약궤 위에 두 천사의 형상을 만들어 놨는데 두 천사가 날개를 쫙 펴고 그 두 천사의 날개의 끝과 끝이 딱 이렇게 맞닿아 있게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호한다고 하는 이제 그런 뜻이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호한다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언약을 이렇게 지켜나가도록 보호한다. 하나님의 언약이 깨지지 않도록 지켜준다. 이제 그런 말씀이고 동시에 우리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언약을 모시고 살면 거기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렇게 우리를 지켜준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옷자락이라고 하는 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어요. 그랬더니 능력이 나가서 이 여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옷자락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하나님의 옷자락에 대한 찬송가가 있죠. 참 얼마나 아름다운 찬송입니까? 정말 우리 주님 입으신 그 옷은 너무너무 아름다운 옷이고 주님의 옷자락이 우리를 덮어서 우리를 강건하게 만들고 새롭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이 옷자락에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야지 하겠습니다.
둘째는 이 스랍 천사들의 모습을 좀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는 분들이 이 서랍 천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6개의 날개가 있었어요. 그런데 여섯 날개를 가졌지만 여섯 날개를 가지고 날아가는 데 쓰는 게 아니고 두 앞에 있는 두 날개는 얼굴을 가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짜로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은 자기의 얼굴을 가리는 사람이다.
이 스랍 천사들의 모습이 보여주는 첫째 모습인 것입니다. 둘째의 모습은 뒤에 있는 두 날개를 가지고는 자기의 발을 가리더라 하는 것입니다. 발에 뭐가 나쁜 게 묻었습니까? 더러운 게 묻었나요? 여하간 우리의 발을 가려야 된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발 가지고 함부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지 말고 아무 데나 불쑥불쑥 얼굴 내밀지 말고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곳, 가지 말아야 할 곳 잘 분별해서 꼭 필요한 곳에 가는 사람이 돼야 한다 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어디를 가야 되느냐 하나님의 성전에 가는 일에 힘쓰고 이 세상 나의 영광 받을 곳, 나를 높여주는 곳 이런 데는 되도록 찾아가지 말아야죠.
그다음에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설명하기를 <연기가 가득했다> 그랬습니다. 이거는 향기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구름이 빽빽하더라 이렇게 가득 차서 어두워졌어요. 그래서 이런 거를 이렇게 부름으로도 표현하고 연기로도 표현하고 이렇게 했는데 그 연기는 향기입니다. 그리고 이 연기에는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를 금대접을 받아가지고 하나님께 가지고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도 역시 향기를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은 향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면 그의 기도가 다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 이사야는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놀라가지고 이렇게 5절에 말씀하지 않습니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참 이런 고백은 이게 쉽게 나오는 거 아니죠? 어떻게 <망하게 되었도다> 그런 얘기를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우리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추하고 악하고 더러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너무너무 거룩하시니까 나의 추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자기의 모습을 깨닫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고 탄식하고 괴로워 몸부림칠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고,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고 말씀하잖아요. 그때에 이사야는 약하고 추해도 무능하고 못난 인간이지만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시옵소서> 하고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와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마지막 때 이사야와 같은 일꾼들로 우리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멸망 직전으로 달려가는 저들의 방향을 복된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힘주시고 용기를 주시옵소서. 환난날에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누가 능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요
[대하 2:1-6]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2 솔로몬이 이에 짐꾼 칠만 명과 산에서 돌을 떠낼 자 팔만 명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 육백 명을 뽑고 3 솔로몬이 사절을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아버지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가 거주하실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 같이 내게도 그리 하소서
4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차려 놓으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5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 6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가장 자랑하고 영광스럽게 여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이 다윗이 가장 소원했던 게 있어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는 하나님의 전을 짓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죠. <너는 전쟁을 해서 피를 많이 흘렸다. 그러므로, 너는 성전을 짓지 못한다. 그러면 누가 성전을 지을 것이냐 너의 다음에 너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될 그 사람, 그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다> 그래서 아들 이름도 솔로몬, 솔로몬은 샬롬이잖아요. 샬롬, 평안할지어다 하는 또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가 예루살렘 이것도 샬롬이 들어있죠. 이렇게 해서 평화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여기에 항구적인 평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믿고 그는 성전을 지으려고 애를 썼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을 짓게 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다음 왕인 솔로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짖게 하시더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와서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이시고 그래서 계시록 21장에 보면 <하나님의 천성 천국에 가봤더니 거기에는 성전이 없더라> 왜 성전이 없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친히 성전이시니까, 하나님이 성전이세요.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성전이라고 하잖아요.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오늘 이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가 첫째로, 생각해야 될 것은 이 평화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신다,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평화의 사람이 될 것인가?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해서 피를 흘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솔로몬을 평화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솔로몬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을 이렇게 세우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도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는데 첫째, 자격을 갖추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껏 얘기했지만,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성전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성전을 솔로몬은 화려하게 크고 아름답게 지었지만, 나중에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불태워버리고 다 무너뜨려져 없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우리는 먼저 마음의 성전을 짓고 마음에서부터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이 훈련을 잘 받아야지만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지어놔야 하나님 앞에 첫째,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으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죠. 성전이 지어져 있는 사람은 기도할 줄 압니다. 마음의 성전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늘 찬양하는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찬양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하나님께 늘 감사한다는 거죠. 어려운 일이 생겼어도 찬양해요.
솔로몬은 어떻게 평화를 만들 것인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만들었어요. 하나님 앞에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니까 이전에는 원수였던 나라들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 나라와는 원수나라 쳐들어오려고 하고 전쟁을 할려고만 했는데 솔로몬이 지혜를 받아 가지고 있으니까 전쟁을 하려고 하던 나라의 왕들이 마음이 바뀌어요. 솔로몬은 우리에게 평화를 지키는 방법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 사람이 되었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도 하나님 앞에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만 하겠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면 평화가 옵니다. 자 이제 우리나라는 조국 통일이라고 하는 큰 목표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통일되면 이 통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데 우리는 전쟁하지 않고 통일이 돼야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이 이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를 받으시고 여기에 예배를 받아주시고 이 땅 위에 어마어마한 평화를 내려주신다. 그래서 평화를 이루는 그 다음 방법, 이 세상은 전쟁, 한국은 동방예의지국, 그리고 솔로몬은 지혜를 얻어서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한 것 성전을 지으면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성전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땅에 참 평화가 온다. 그 평화의 왕이 누구시냐?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예수, 주님이 오셔서 이 땅에 참 평화를 주시고 주님 자신이 친히 하나님의 성전이 되셨어요. 요한복음 2장에도 보면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동안에 다시 일으키리라> 하신 말씀을 놓고 유대인들은 비방을 하고 쑥덕거리고 했지만, 성경은 설명하지 않아요. 자기의 몸 된 성전을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라고 하는 이것을 예수님이 이렇게 비유로 설명을 하신 것이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 마음의 성전을 지어 가지고 살게 되면 거기에 주님이 계십니다. 성령이 계십니다. 거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두려울 게 없어요. 하나님의 성전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거짓된 성전 지으면 다 망하는 것이고 참된 성전을 우리 마음속에 세워가지고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아름다운 생명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야지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충만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 충만해서 주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기도의 사람 성령의 사람들이 다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선지자란 누구냐
[왕하5:20-27]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26절에 엘리사가 게하시를 책망하면서 그랬어요.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게하시는 불만이 좀 생겼어요.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자가 와가지고 깨끗하게 다 고쳐서 가고 그 값비싼 귀한 예물들을 가지고 와서 그걸 다 바치는데 엘리사가 그것을 안 받고 다 돌려주잖아요. 오늘 읽은 말씀 중 20절 중반에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그걸 놓고 자기가 맹세를 한 대요. 기어코 쫓아가서 뭐든지 받아와야 되겠다는 게하시의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엘리사가 이 나아만 장군을 그냥 아무것도 받지 않고 보낸 거는 그것은 분명히 잘못한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저 사람이 와서 갖다 바치면 돼. 그냥 받으면 되는 거지 그걸 왜 안 받습니까?
오늘은 게하시의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느냐? 첫째로 이 사람의 죄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의 결정적이 죄는 탐심이다. 성경에서는 탐심을 뭐라고 말하죠? 탐심을 첫째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 에베소서 5장 5절에서 예수님은 탐심을 뭐라고 설명하세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두 주인입니까? 하나는 하나님이고 또 하나는 재물입니다. 재물은 (돈) 하나님과 맞먹으려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 탐심을 물리쳐라 명령하셨어요.
둘째로 이 게하시의 죄는 뭐냐, 스승을 볼라 봤다. 아주 훌륭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인정했어요. 그렇지만 훌륭한 스승이래도 가까이 오래 지내다 보면 그분에게서 인간적인 냄새가 나잖아요. 흠이 발견되니까 내 마음에 안 맞는 것이 자꾸 들어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속으로 불만을 가지고 불평을 하기도 하고, 또 스승을 얕보는 생각이 생겨 멸시합니다.
게하시가 만약 이때에 <하나님 이 사람이 주는 거 안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왜 우리 스승 엘리사는 안 받았습니까?> 이러면서 진지하게 하나님께 여쭈어봤다면 하나님께서 혹시 가르쳐주셨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되는데 이 사람은 자기의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스승을 함부로 얕잡아보고 비판했다. 이게 큰 잘못입니다. 이런 잘못을 가지게 되니까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다음에는 스승 앞에 거짓말을 했어요. <너 어디 갔다 오느냐?> <아니요. 나 아무 데도 안 갔다 왔습니다. 나 여기 있었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거짓말이 나옵니까? 어디 갔다 오느냐 그러면은 솔직하게 좀 얘기를 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해도 괜찮을 줄로 생각을 했던 거죠.
그다음에 되는 얘기기는 하지만 아랍 나라 군사들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찾아와서 도단성을 뺑뺑 포위하고 있을 때 엘리사가 이 종이 그건 게하시인지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하여간 사환이 와가지고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가 다 죽게 생겼습니다. 보세요. 적군이 뺑뺑 포위하고 가득 찼습니다> 그럴 때 엘리사가 얘기하죠.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들보다 많으니라> 그 말을 듣고 <아니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어디가 있습니까?> 그런데 엘리사 스승은 게하시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분입니다. 아랍 나라 군사가 쳐들어오려고 할 때 언제 어디로 어떻게 온다는 것을 환하게 알고 있어서 왕에게 이야기해서 나라를 지켰지 않습니까? 그런데 게하시는 스승 밑에서 배우면서 좀 더 잘 배우려고 하고 우리 스승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알고 더 복종하고 잘 섬기려고 하지 않고 불만을 품고 비판을 하고 심지어 거짓말까지 했다고 하는 것이 결정적인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자세가 어떠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게하시를 통해서 교훈하고 계십니다.
둘째로 이 사람의 죄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하는 거죠. 회개할 기회를 줘서 <너 어디 갔다 오느냐> 물었을 때에 얼른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가지고 <선생님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내가 아까 내 인간적인 생각에 선생님께 불만을 품고 나아만을 쫓아가서 이렇게 이렇게 물건을 받아왔습니다. 선생님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러면서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오늘 본문은 이 설교의 핵심은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게하시는 때를 알지 못했기에 모든 복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그를 책망하는 거 <이 앙큼한 놈 같으니 감히 나를 속여> 그러면서 호되게 야단을 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고 엘리사의 말은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나무원이나 포도원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냐 이런 것들을 받을 때냐> 받을 때냐라고 물었다고 하는 말씀에 우리가 정신이 번쩍 들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어느 때냐? 때를 몰랐다. 우리 말에 철 들었다는 말이 있죠. 무엇을 보고 철 들었다고 말하죠?
전도서 3장에는 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잖아요.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그러면 농사를 지어야 할 때가 있고 쉬어야 될 때가 있고 추수할 때가 있는가 하면 씨뿌리는 때가 있고 그래서 이 때를 잘 알아야 된다. 그래서 때를 아는 사람을 철든 사람, 그래서 이렇게 때를 알아야 성인이 되는 거예요. 때를 모르면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하죠. 그래서 우리가 이 철를 알아야 되는데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배워야 되는 게 이 때를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금이 어떤 때냐? 로마서 13장 11절에서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지금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된다.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된다. 하나님 말씀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 의를 행하는 사람이 돼야 된다. 불의와 싸우는 사람이 돼야 된다. 죄를 미워하는 사람이 돼야 된다. 이것이 깨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첫째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둘째는 요한복음 4장 23절 24절 하나님께 예배할 때가 되는데 바로 이때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성령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은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은혜 받아야 합니다. 구원받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그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하십니다. 바로 지금이래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어야 한 대요.
우리가 어떻게 때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첫째 참 선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 이겁니다. 참 선지자들은 우리를 깨워줘요. 거짓 선지자들은 우리를 잠재워요. 기도해야 됩니다. 성경 읽어야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읽고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셋째로 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적인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끼리끼리 모여요. 불평 많은 사람은 불평 많은 사람끼리 모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끼리 모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과 가깝게 사귑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믿음 좋은 사람을 사귑니다. 은혜 있는 사람은 은혜 있는 교회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은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 해주는 대로 찾아가고 사람 많이 모이는 대로 찾아가고 그냥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기 좋은 데로 찾아가요.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 교회에 다니다가 술 담배 하고 싶어가지고 천주교로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요.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가 좋은 신앙의 친구들을 사귀고 좋은 믿음의 사람을 만나보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야지만 하겠습니다.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렘 1장 11절~ 14절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여졌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불러서 일을 시키시고 쓰실 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는 예레미야에게 두 가지의 이상을 이렇게 한꺼번에 보여주십니다. 이상을 보여주시는 시간적인 차이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에 이상, 또 하나는 끓는 가마의 이상, 이 두 가지를 이렇게 보여주셨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이 말씀을 조금 유의해서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레미아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랬더니 첫째는 살구나무 가지를 봅니다. 그랬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니가 잘 보았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근데 우리말로는 이게 도무지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살구나뭇가지를 보여주시고 <내가 내 말을 지켜 행한다> 아니 대관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살구나무하고 이 말씀 지킨다는 게 무슨 뜻이냐 이 살구나무라고 하는 거는 수학 캐드라는 말이 살구나무인데 샤케드라고 하는 말이 지킨다는 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이 똑같은 이 어휘를 가지고 두 가지 의미를 말씀을 하신 거죠. <살구나무 가지를 본다> 그랬는데 이 말은 <내가 내 말 나를 지킨다>고 하는 뜻이다. <내가 내 말을 지켜주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깨어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에게는 이 고난, 칠흙 같은 어둠의 날이 있고, 겨울철 같은 무서운 추운 날이 있고, 정말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양식도 다 떨어지고, 고생스러운 날이 있지만, 요것을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새싹을 키워주시듯이 너희에게도 이렇게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은 첫째로,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될 것은 이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첫째 이 살구나무 가지는 권고하는 말씀이니까 <너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라. 소망을 가지고 있어라> 하는 것이죠.
자 이것이 첫째, 에 환상에 대한 얘기고요. 둘째, 환상을 하나님께서 바로 이제 이렇게 또 보여주시는데 13절과 14절이죠. <또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런데 끓는 가마를 봅니다.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재앙이 북방에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을 합니다.
근데 이것은 다니엘서에도 북방왕과 남방왕이 싸우면 이야기가 나와요. 그래서 북방에서부터 재앙이 내려온다. 자 그런데 끓는 가마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북방에서부터는 재앙이 끓는 이 샘물처럼 이렇게 해서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렇게 해서 내려오지만, 우리도 거기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열치열입니다. 끓는 가마에는 우리도 끓는 가마로 대항을 해야 되겠다. 어떤 게 우리가 원하는 끌름가마는 뭐냐, 우리 마음속에 마음이 이게 불가마 아니에요. 용광로입니다. 여기에서 끓어올라야 되겠다. 뭐가 끓어올라야 돼요?
하나님의 은혜가 끓어올라야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끓어올라 불타올라야 되고, 또 우리의 사명감이 불타올라야 되고, 이렇게 해서 이 마지막 때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용사들이 많이 일어나서 북방 땅을 녹여놓을 뿐 아니라 세계의 만방에 복음전하고 이 세상을 주님께로 돌이키게 만드는 큰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러나 눈물의 선지자, 평생토록 좋은 꼴을 못 보고 고생고생만 하고 눈물로 살다가 세상을 마친 사람이지만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그것은 지금도 살아 있어서 그는 자기 나라 조국을 위해서 유대 나라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이것이 유태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는 버림받은 백성이 되는 거고. 하나님께 새롭게 택하심 받은 거룩한 백성 우리 한국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이렇게 이루어져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약속을 받아 가지고. 이제 이 세상을 새로운 일들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사도들에게 또 오늘날도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 이렇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성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신령한 꿈을 꾸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먼저 계시해 주시는 것이 없으면 우리 인간은 자기의 지식이나 자기의 재능 가지고 절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마귀도 환상을 보여줍니다. 꿈을 줍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사람들도 나도 이상을 보았다. 나도 꿈을 꾸었다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렇게 해 가면서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대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그렇고 모든 선지자들의 경우가 다 그렇지만 이 거짓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제일 큰 고통을 당합니다. 일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너무 좋아하고 말을 다 따라가요. 참 선지자들은 많은 고난을 당했고 돌로 쳐 죽임을 당했고, 이렇게 참수를 당하기도 하고, 얼마나 어려운 일을 많이 했습니까?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종들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깨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중장치를 해 놓으셨는데 첫째, 장치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을 듣는다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회개하고 기도하고, 더 깊은 은혜의 세계 속에 들어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살아가게 만드시는 역사가 첫째 역사. 둘째로, 가장 중요한 장치는 바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돼요.
수백 번을 읽고 수천 번을 읽고 수만 번을 읽는다고 해도 성경의 내용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이렇게 어려운 책, 그런가 하면 동시에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어린애들이 읽어봐도 다 알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해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신비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상을 주시고 음성을 주시고 꿈을 주시는 이 신비 체험을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의 역사고 또 하나는 말씀을 통해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새롭게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깊이 나아가게 만드시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만드시고 주님 잘 섬기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은혜가 충만할수록 더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 깊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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