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고(苦)는 나를 정화시키는 손길
인생은 ‘고(苦)’가 아니다. 생사가 있다고 하나
생사를 여의는 불생불멸이 있으니 고(苦)가 아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슬픔이 있다고 하나,
만나고 헤어짐의 근본이 텅 비어 고요하니 고(苦)가 아니다.
삶에 있어서의 온갖 고통과 번뇌도 깊이 생각해 보면
누구든지 스스로 그것을 견디거나 극복해 갈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가족, 벗, 이웃들이 덜어 주고 함께 나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자기 짐일 수밖에 없다.
삶이 곧 고(苦)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고(苦)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
삶은 고(苦)가 아니라 완전 자유이고, 영원한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사실 고(苦)가 아니다.
다만 고(苦)라고 느끼며 속박되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인생의 목표는 그 고(苦)로부터 벗어나
부처를 이루어서 완전한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고(苦)에서 벗어나려고만 하지
그 고(苦)의 참된 원인을 살피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 가지 고(苦)에서 벗어난다 해도
또 다른 고가 닥쳐오는 것을 면할 길이 없다.
나라는 존재는 따지고 보면
쉴 새 없이 고락을 만들어 내는 생산 공장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생산해 낸 것은 내가 수집해 들여야 한다.
고(苦)의 경계들이 다가오는 원인을 모른다면 만방으로 끄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원인들을 안다면 수억겁의 업고로부터 단숨에 벗어날 수도 있다.
평생을 고(苦)에 시달리느냐, 벗어나느냐는 한 생각의 차이로 판가름 난다.
내가 인연 따라 태어난 것부터가 인과의 산물이니 그대로 고이다.
이전에 살던 업이 쌓이고 뭉쳐 오늘의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업보라고 괴로워한다면 한없이 괴롭겠지만
그 모든 것을 수련 과정이라고 생각을 돌린다면
오직 참 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을 돌리는 것은 모처럼 나온 새싹에 물을 주는 격이고,
그냥 업보라 해서 괴로워함은
물을 주지 않고 말라 죽게 만드는 격이다.
그래서 모르면 지옥고이고 알면 천당과 극락인 것이다.
과거에 입력된 것이 현실의 과보로 다시 나오기에
살다 보니까 고초가 따르고
서로 쫓기고 쫓는 고통이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니까 계발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산 교훈이요 산 진리이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지금 내게 닥치는 고의 경계들은
사실 언제인가 내가 벌레로 살다가, 새로 살다가,
짐승으로 살다가, 혹은 인간으로 살면서 지었던 모든 행위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고의 경계가 다가왔다 해서
이를 피하려거나 나쁜 생각을 하지 말고
‘나를 일깨워 수행하게 하고 다지는 것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라.
그런 마음이라면 고(苦)는 이미 고(苦)가 아니니,
절로 놓고 돌아가는데 고집멸도는 어디 있겠는가.
현실의 고통이란 알고 보면
순간, 순간 자기를 밝음으로 인도하는 과정이요 밑거름이다.
본래로 밝아 있음을 모르는 나를 일깨워
성숙시키고 종내는 깨달음으로 이끌려는 수련의 과정인 셈이다.
그러므로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혹은 아무리 즐겁다 하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라고 하지만 동시에 제도의 과정이니
고(苦)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을 고라 한 것은 그것을 넘어서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
실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흙탕물에 빠져 본 사람은 자기가 해 보았으니까
다시 빠지지 않고 남도 건질 수 있지만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그때를 알 수도 없거니와
남을 건져 주지도 못한다.
고(苦) 속에서 굴러 본 사람이라야
굴러 보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감응할 수 있는 것이다.
고(苦)라는 것도 나를 성장하게 하기 위해 닥치는 것이니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첫째는 인간으로 형성시킨 게 고마운 것이요,
둘째는 그렇게 분별해서 모든 것을 알게 만들어 주니 고마운 것이다.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부딪힘도 오는 것이지
자기가 나지 않는다면 무슨 부딪힘이 있겠으며 무슨 상대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고(苦)다, 업보(業報)다 하기 이전에
참 나에다 일체 경계를 맡겨 놓고 관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람이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모든 것을 ‘내 주인공이 나를 성숙되게
둥글게 이끌어 주는 과정이로구나’ 하고 믿고 놓아라.
그때는 고에서 그냥 타파해 버렸기에 집도, 멸도, 도도 없다.
고(苦)라는 것을 잘 요리해서 맛볼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맛이 되고 감사할 일이다.
현실의 자기 모습을 보면 과거에 어떻게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고,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래의 자기 꼴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자기를 돌아보라 하는 것이니
현실의 고나 인과 등은 그대로 수련 과정인 셈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치면 오히려 나쁜 공기와 먼지
그리고 불결한 것들을 다 청소시켜 주니,
현실의 고(苦)는 오히려 자기를 정화시켜 주는 근기인 것이다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