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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무덤에 묻히신 예수
2014, 9, 14
요19 ; 31-42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믿으시죠?
나는 이 생각만하면 언제나 놀랍고 감격스럽습니다.
내 영혼이 언제나 맑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큰 사랑과 큰 은혜와 축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은혜를 진실로 깨닫고 받는 이가 적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로다.” 사도 바울이 온 세상을 향하여 한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외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을 진실로 믿는 이들은 믿지 않는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살며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애쓰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진실로 믿는 이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 와서 내세대한 모든 비밀과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주께서 자신이 전하신 그 천국복음대로 자기를 믿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들의 죄 값으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요한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희생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주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3장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역 초기부터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3년의 사역기간 중에 그 중간 지점인 누가복음 12장 50절에서도 “나는 받은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항상 주께서 져야할 그 십자가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을 보면 16장에서 20장까지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3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는 같은 말씀을 3번이나 반복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성찬을 가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시고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시며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그 몸과 언약의 피라 하시며 이제 그 때가 되었다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밤에 잡히시고 심문 받으시고 등이 밭고랑처럼 패일만큼 심한 채찍질과 온갖 조롱과 침 뱉음과 능욕을 받으시고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운명하시기 직전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지막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하고 외치시는 것을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그 뜻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요한복음 6장 40절에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만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신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주로 세상에 오신 것을 믿는 자마다, 그들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피로 그들의 모든 죄 값을 대신 갚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 받게 하심으로 아들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주께서 숨을 거두시면서 마지막으로 외치신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믿음으로 받는 그것이 여러분이 죄 사함을 받는 그 믿음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믿는 자의 구원을 위해 그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사실을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과 지혜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지혜로 판단하신다면 십인십색으로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이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주께서 못 박히신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참된 믿음은 주님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운명하시면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마음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은 참 되신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 진실하신 주님의 마음을 믿음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그 외치심은 거짓이 없는 주님의 진실하신 마음이라고 믿으신다면 그 주님의 마음을 그대로 여러분의 믿음으로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참 되신 마음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디서 주님의 진실하신 마음을 만나시겠습니까?
나는 성지순례 가서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따라 갈보리 산언덕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이 새 삼 내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서 주님의 마음을 인격적으로 만나냐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참 된 마음을 만날 곳이 바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는 그 말씀 가운데 주님의 마음을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참되고 여러분의 영혼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에 들어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축복에 참여하는 복된 영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을 장사하기까지의 내용입니다.
31절에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하니”
율법에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시고 또 안식일까지 시체를 나무에 달아 놓지 말라 하셨고 안식일까지 시체를 방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해가지면 바로 그 다음날로 하루가 시작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그 날 해가 지면 바로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다리를 꺾어 십자가에 달려 있는 사람들을 죽여서 시체를 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은 보통 3일은 숨을 거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사람들의 다시를 꺾어 죽여 그들은 장사지내고 율법대로 안식일을 지키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의 위선을 보십시오.
가장 하찮은 일에는 마음을 크게 쓰고 가장 무서운 죄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이 넘어가는 그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시기와 질투로 죄 없는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이 충격적인 죄에 대해서는 대담하게 행하는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외형적인 죄를 피하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의 위선과 죄악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유대인들에 대해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하루살이 같은 하찮은 죄는 야단법석을 떨면서 지키고 큰 죄 낙타만큼이나 큰 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행하는 그들의 위선 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이들은 위선자들이요 가증스러운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자들이라면 결코 그런 위선과 죄를 지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이들의 위선과 죄를 통해서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를 쏟게 하신 것입니다.
32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는 꺾고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에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율법에 안식일에는 사람을 나무에 달아 두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와서 로마군병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사람들의 다리를 꺾어 죽여달라고 한 것입니다.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양옆에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다리를 꺾어 숨을 거두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이미 운명하셨기 때문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그에게 담당 시키시고 찔리고 상하신다고 기록된 이사야 53장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뼈도 하나도 상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출애급에서 유례된 것입니다.
출애급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하지 않는 애급의 바로 왕과 애급백성에게 내리는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애급의 모든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까지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으로 인해 애급의 바로 왕과 그 대신들과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에서 해방하여 보내 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급백성들에게 이 10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서 모세에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아서 그 양의 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고 그 방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며 잡은 양고기는 구어 먹되 뼈는 하나도 꺾지 말고 상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이셨습니다.
바로 그 밤에 죽음의 사자가 전 애급 백성의 집에는 들어가서 장자를 쳐서 죽게 하셨지만 문 인방과 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그냥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급의 모든 가정은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까지 죽는 엄청난 재앙을 만났지만 이스라엘 가정은 한 가정도 장자를 잃은 가정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 때 하나님께서 애급의 모든 가정에 죽음의 사자를 보내실 때 양의 피를 그 집의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가게 하시며 그 집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심으로 그 가정은 구원하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번째의 큰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잡은 양은 예수님을 의미하고 그 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의미하며 그 양의 뼈는 예수님의 뼈를 의미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사자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 피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의 뼈는 하나도 꺾지 말라고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뼈는 하나도 상한 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20절에도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도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하시는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35절에 보면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여러분 사도 중에서 누가 유일하게 예수께서 못 박히신 그 십자가 밑에 있었습니까?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그가 본 것을 증언하고 있으며, 그의 증언은 참된 것으로 믿으라 하십니다.
여러분도 사도 요한이 증언이 참된 것임을 믿으실 것입니다.
요한 사도의 증언을 진실로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38절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한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사도 요한은 누가 어떻게 예수님의 장사를 치렀는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을 무덤에 안치한 사람 둘을 말하고 있는데 요셉과 니고데모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에 대해서는 마태는 그를 부자로 말하고 있고, 누가는 그를 공회원 즉 당시 유대인들의 국회의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인물로 그는 요셉과 같은 공회원이요, 유대인들 가운데 명성이 있는 선생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를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백 리트라는 큰 액수의 돈이었습니다.
요한 사도는 말하기를 요셉은 그의 명성과 그의 재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공공연하게 예수님의 제자임을 고백하지 못했었고 니고데모 역시 밤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었다는 점을 다시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지내는 이 일을 통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공공연하게 들어냈습니다.
이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두려워서 예수님에게 마땅한 존경을 드리지 못했던 그들이 이제는 마치 새사람이라도 된 듯이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거리가 된 예수님의 장례를 그 두 사람이 치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조차도 그들의 죽음을 두려워해서 나서지 못한 예수님의 장례를 그 둘이 치렀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의 믿음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바로 앞에 닥칠 위험을 개의치 않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릴 뿐 아니라 용감하게 그리스도를 무덤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들은 돈과 명성을 버리고 이제 주님을 섬기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듯합니다.
그들이 필요할 때 하나님께 자신들을 드린 것입니다.
이들이 유대인들에게 받게 될 위협과 박해와 모든 적대를 생각한다면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들을 충동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들은 하늘의 충동을 받고 곧 바로 자기 안위와 명성을 버리고 위험을 무릎 쓰고 제자들조차 나서지 못한 예수님의 장례를 이들이 행하여 오늘날 성경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이 예수님을 장례를 치르므로 이사야 53장 9절의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하시는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부자 요셉과 니고데모가 주님의 장례를 치를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놀랍게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과 니고데모가 주님에 대한 마음의 충동을 느낀 대로 행하여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충동을 주신대로 순종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 요셉과 니고데모가 “그리스도께서 죽은 후에 부자들과 함께 있었도다.” 하시는 이사야 53장 9절 말씀을 이룬 것을 우리가 크게 느끼지 않습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역사로 성경에 이미 기록된 말씀에 우리 자신을 드려 순종하여 이루는 것도 이에 못지않을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깨닫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충동하실 때 곧 바로 순종해야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분명히 믿음이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4절에는 “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니.” 라고 하셨습니다.
두 말씀 다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버려야, 내 생명까지 버려야 위선에서 벗어나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버리지 않는 다면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안위를 생각하고 내 유익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고, 유대인들처럼 작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 같은 큰 죄는 꿀꺽 삼키는 위선자가 될 뿐 아니라 내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 고백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상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자신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행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 요셉과 니고데모의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을 진솔하게 성경에 기록하여 그들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충동하시고 역사하시면 즉시 그 충동대로 헌신하십시오,
오직 그 헌신만이 내세에 들어가서 여러분의 좋은 터가 되실 것입니다.
41절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이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에 두니라.”
그날이 안식일의 예비일이요 바로 해가 지면 안식일이 되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동산에 있는 요셉의 새 묘지에 안치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태에 의하면 요셉이 자기 가족을 위하여 바위를 파서 만든 새 무덤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굴을 파서 죽은 자들을 하나씩 그 굴에 안치해 두고 굴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아 두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요셉이 준비한 바위로 된 새 무덤에 안치 되시고 이 무덤에서 약속하신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시게 됩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보겠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