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토요漫筆/ 그날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김용원
오래전부터 텔레비전 뉴스 시청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 왔다. 뉴스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정치 영역이다. 정치가와 이른바 정치평론가들이 그 화려한 입담을 풀어놓는 걸 보면 공연히 나도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라다 보면 금세 흑과 백 이분법적으로 갈라지면서 어느 한편에 선 나를 보게 된다.
일단 한편에 서 있으면 그 맞은편은 내게 적으로 존재한다. 그제부터는 그 적을 증오하게 되고, 제발 실수라도 하여 손가락질받는 꼴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내 편이 된 쪽에서 상대방에 대한 전망을 좋지 않게 말하면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가도 내가 편드는 쪽이 상대편으로부터 몰린다 싶으면 그때는 화가 난다.
“때려쳐! 때려치우라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외칠 때도 있다. 그러면서 어느 새 나는 세계평화와 대한민국의 장래를 내가 다 떠맡고 있는 듯한 감정증폭현상에 함몰되고 만다. 내 머릿속은 세계정세를 좌지우지하고 대한민국의 장래를 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게감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소비하게 된다. 따라서 UFC 격투기를 볼 때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어떤 선수가 어떤 점이 다른 선수보다 나와 감정적으로 더 가까워져 일단 ‘내 편’으로 정해지면 그제는 내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이왕이면 잔인하게 이기도록 응원하는 꼴로 변하는데 꼭 그런 현상에 직면한다.
이기더라도 판정승으로 이기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이왕이면 상대방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팬 후 발차기 한 방으로 쭉 뻗어버리게 하든지 주먹 한 방에 나무토막처럼 폭 고꾸라지길 원한다. 그런 ‘악마성’ 관전태도가 정치계에도 이루어지길 바라게 된다. ‘내 편’을 함부로 하던 ‘내 적’이 어느 날 커다란 실수를 하여 만신창이가 되고, 마침내 수갑을 차고 교도소 호송차에서 끌려 내려오는 꼴을 보면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아보는 계제를 만나면서 참 한심한 자가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다. 정치가를 싫어한다. 그런데다 나는 늙었다. 곧 죽는다. (많이 살아봤자 30년? ㅋ) 새벽마다 12킬로씩 뛰던 몸이 아니다. 근육은 퇴화하고 한 시간만 책을 읽어도 눈알이 뻑뻑해서 돌아가질 않는다. 밤새워 책을 읽고 밤새워 ‘개똥철학’, ‘개똥문학’을 놓고 아는 체 떠들어대던 내가 아니다. 결국 내 자신은 물론 내 가정, 내 이웃, 내 지인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주제에 세계평화를 논하고 대한민국의 정세에 대해 ‘편을 먹고’ 까불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하다 못해 가엾기까지 한지.
그렇다. 할 일 없으면 낮잠을 자자.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조금이라도 나와 남을 위해 이바지될 수 있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나이는 지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도 벅차다. 내게 주어진 정치적 권리는 투표행사뿐이다. 멀리서 지켜보다가 내 뜻에 맞게 한 표 행사하면 그것만으로 족해야 한다. 굿을 구경하다가 신이 나면 얼씨구 추임새를 넣는 것까지는 나에게 허용해도 좋다. 그러나 폼새 나지도 않는 주제에 무당이 춤춘다고 따라 춤추다 옆의 사람 콧잔등이나 때려 화나게 하거나 그 엉성하고 볼품없는 춤솜씨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거나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저들의 행태를 두고 내가 왈부왈가할 까닭이 나에겐 없다. 원래 또라이가 성문(城門)을 부수면 ‘야코잽이’가 뒤따라 들어가 재물을 챙기는 게 정치계다. 나는 또라이도 못되고 야코잽이도 못된다. 나와는 질이 다르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 내가 뒤따라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꼴불견이고, 그 도뗴기시장 같은 곳이 궁금하여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것은 더더욱 팔불출꼴불견이 아니겠는가. 그래, 지금은 할 일이 없으니 낮잠이나 자자.
첨언: 하지만, ‘이채양명주’ 문제만큼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윗글은 3년 전 10위권 무역흑자국에 자고 일어났더니 선진국에 들어서 있었을 때 쓰였던 글이다. 윗글이 부담없이 익힐 그때가 돌아오길 염원하며.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