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도주님·도전님과 관련한 지명소개
호남, 전라북도, 고창 편
글 종단역사연구팀
연재를 시작하며
사람에게 이름이 있는 것과 같이 땅에도 이름이 있다.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붙여진 것도 있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붙인 것도 있지만 모두 사람의 편리를 위해 생겨났다. 현재 우리나라 지명 관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준은 『지명표준화편람(地名標準化便覽)』에 잘 나타나 있다. 지명 분류 기준은 4가지인데, 행정지명은 행정의 편의를 위해 국토를 분할 구획한 경계를 일컫는 지명으로 행정단위 지명을 의미한다. 자연지명은 개별법에서 특별히 정하지 않은 지명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이나 지역에 붙여졌다. 예를 들면 산, 계곡, 고개, 곶, 나루, 바위 등이다. 해양지명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양, 해협, 만, 포, 수로 등의 이름과 초, 퇴, 해저협곡, 해저분지, 해저산, 해저산맥, 해구 등의 해저지형 이름이다. 인공지명은 공원, 고적, 광산, 도로, 역 지명 등으로 분류된다.
옛 조상이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그 곳에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서 써오는 동안 지명이 변천되어 왔다. 지명이 변천되는 과정을 통해 당시 해당 지역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기에 상제님·도주님·도전님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깨닫고자 지명을 통해 당시의 역사와 자취를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전경』과 인터뷰를 참고로 세 분의 주유(周遊)01하신 곳의 지명 유래는 물론 변천사, 위치도, 해당 지역에 살았던 종도나 공사 보신 곳에 대해 지역별로 정리하였다. 타국(他國), 특별시(特別市), 광역시(廣域市), 도(道), 특별자치도(特別自治道), 시(市), 군(郡), 구(區), 읍(邑), 면(面), 리(里), 동(洞)으로 나눠 구분하였으며, 상제님·도주님·도전님의 각 해당 지역과 해당 장소가 겹치는 지역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타국, 특별시, 광역시, 도 또는 특별자치도를 기준으로 조사할 지명이 많은 순으로 정하고 각 지역의 군, 구, 읍, 면, 리, 동은 ‘가나다’ 순으로 나열하여 발자취의 흔적이 제일 많은 전라북도를 먼저 연재하고자 한다. 단, 지명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므로 수정 또는 추가가 있을 수도 있다.
호남, 전라북도, 고창 편
1. 호남(湖南)
◎ 해당 『전경』 구절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 일순 호남 서신 사명(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 姜一淳湖南西神司命)”이라 쓰게 하고 그것을 불사르게 하시니라. 이때에 신 원일이 상제께 “천하를 속히 평정하시기 바라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내가 천하사를 도모하고자 지금 떠나려 하노라” 하셨도다. (행록 5장 33절)
천도교 손 병희(孫秉熙)가 호남 일대를 순회하고자 전주에 내려와서 머물렀도다. 상제께서 공우에게 “네가 전주에 가서 손 병희를 돌려보내고 오라. 그는 사설로 교도를 유혹하여 그 피폐가 커지니 그의 순회가 옳지 않다”고 분부를 내리셨도다. 이에 그가 복명하였으되 이튿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계시지 않으므로 이상히 여겼느니라. 며칠 후에 손 병희는 예정한 순회를 중지하고 경성으로 되돌아갔도다. (권지 1장 33절)
◎ 호남: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총칭
◎ 지명 유래와 변천사: 호남의 명칭은 호수 남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 이 호수는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호라고 하기도 하고, 금강(錦江)02이라고도 한다.
호남지역은 삼한(三韓)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하였고 삼국(三國)시대에는 백제(百濟)의 영토가 되었다. 후삼국(後三國)시대 견훤은 완산주[完山州: 지금의 전주(全州)]에 후백제(後百濟)를 창건하였으며, 고려(高麗)시대 993년(성종 14)에 전라북도는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는 해양도(海陽道)라 불렀다. 그 뒤 현종 9년에 전주(全州)의 전(全) 자와 나주(羅州)의 나(羅) 자를 따서 전라주도(全羅州道)라고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전라도를 호남이라고 불렀으며, 그 뒤 1896년(고종 32)에 전국을 13개 도(道)로 개편하는 과정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6년 제주도(濟州道)가 도(道)로 승격되면서 제외되어 이 지방의 실질적 범위는 반도부(半島部)와 연안도서(沿岸島嶼)에 이르고 있다.
호남의 인구는 3,603,832명(2005년 조사)이고 지리적으로는 동쪽의 소백산맥, 북쪽의 금강을 경계로 하는 그 이남지방을 가리킨다.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서해와 남해로 몰입하면서 동고서저(東高西低)지형을 형성하고, 도서지대에는 진도(珍島)·완도(莞島)·지도(智島)·신안군도(新安群島)등을 비롯한 약 400여 개 섬들이 있다.
◎ 문화 유산: 불교의 문화 지역이었던 호남은 백제의 멸망과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그 유산이 많이 소실되었다. 내장사(內藏寺), 금산사(金山寺), 선운사(禪雲寺), 송광사(松廣寺), 화엄사(華嚴寺) 등 많은 사찰이 곳곳에 산재하고 불전, 불상, 사탑 등 국보로 지정된 불교문화의 유물 및 유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다.
2. 전라북도(全羅北道: 전북)
◎ 해당 『전경』구절
하루는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수련케 하시고 그들에게 “일곱 고을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고 물으시니 종도들이 말하기를 “쓰기에 달렸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가라사대 “그렇다 할지라도 곡간이 찼다 비었다 하면 안 될 것이니 용지불갈(用之不渴)하여야 하리라.” 종도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상제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시면서 가르치셨도다. “이곳이 운산(雲山)이라. 운암강(雲岩江) 물은 김제 만경(金提萬頃)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강 태공(姜太公)은 제(齊) 나라 한 고을에 흉년을 없앴다고 하나 나는 전북(全北) 칠읍(七邑)에 흉년을 없애리라” 하셨도다. (공사 1장 28절)
◎ 지명 유래와 변천사: ‘전라도(全羅道)’ 지명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며, 전라북도 지명은 1896년(고종 33) 전국이 13도로 개편되면서 이전의 전라도를 분리하여 남북도로 나누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1897년 구례군(求禮郡)을 전라남도에 이관하고, 무장(茂長), 흥덕(興德), 고창(高敞) 3개 군을 전라남도에서 편입하였다. 1963년에는 금산군(錦山郡)과 익산군(益山郡) 황화면(皇華面)이 충청남도(忠淸南道)로 이관되었고,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위도면(蝟島面)을 부안군(扶安郡)에 편입하였다.
동쪽은 경상남도(慶尙南道) 산청군(山淸郡)과 거창군(居昌郡), 경상북도(慶尙北道)의 김천(金泉)과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주 능선으로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전라남도(全羅南道)의 영광(靈光)·장성(長城)·담양(潭陽)·곡성(谷城)·구례군(求禮郡)과 접해 있다. 그리고 북쪽은 충청남도(忠淸南道)의 금산(錦山)·논산(論山)·부여(扶餘)·서천군(舒川郡), 충청북도(忠淸北道)의 영동군(永同郡)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황해에 면한다. 1979년에 6개 읍이 승격되고, 1981년에 정읍군(井邑郡) 정주읍(井州邑), 남원군(南原郡) 남원읍(南原邑)이 각각 정주시(井州市), 남원시(南原市)로 승격되어 5시 13군 14읍 145면이 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는 도농통폐합으로 군산시(群山市)와 옥구군(沃溝郡)이 군산시,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 남원시와 남원군이 남원시, 김제시(金堤市)와 김제군(金提郡)이 김제시(金堤市)로 개편되어 6시 9군 14읍 147면이 되었다. 같은 해 5월 10일에도 도농통폐합으로 익산군(益山郡)과 이리시(裡里市)가 익산시(益山市)로 개편되면서 행정구역은 6시 8군 14읍 145면이 되었다.
3. 고창(高敞)
◎ 해당 『전경』구절
상제께서 열 세살 되시던 어느 날 모친께서 짜 놓은 모시베를 파시려고 이웃사람 유 덕안(兪德安)과 함께 정읍(井邑) 장에 가셨도다. 그는 볼 일이 있어 가고 상제께서 잠시 다른 곳을 살피시는 사이에 옆에 놓았던 모시베가 없어진지라. 유 덕안이 곧 돌아와서 상제와 함께 온 장판을 찾아 헤매었으나 날이 저물어 찾지를 못한지라. 상제께서 덕안의 귀가 권유를 물리치고 덕안에게 일러 돌려보내고 그 길로 다음날이 고창(高敞) 장날임을 아시고 고창에 행하셨도다. 포목전을 두루 살피시는데 마침 잃으신 모시베를 팔러 나온 자가 있는지라. 상제께서 다시 그것을 찾아 파시고 집에 돌아오셨도다. (행록 1장 14절)
◎ 고창군: 전북 남서 해안 지역에 있는 군
◎ 지명 유래와 변천사: 삼한(三韓)시대에는 마한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모이부곡현(牟伊部曲縣)이었고, 백제 때에는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 또는 모량현이라 불렸다. 신라 경덕왕 때 4개의 현으로 분리되면서 무송현(茂松縣), 장사현(長沙縣), 상질현(尙質縣), 고창현(高敞縣)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에는 장사현과 무송현은 영광군(靈光郡)에 속하였고, 고창현과 상질현은 고부군(古阜郡)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고창현으로 바뀌고, 조선말기에 고창군이 되었다. 지금의 고창군은 조선시대의 고창현(高敞縣)·무장현(茂長縣)·흥덕현(興德縣) 등 3개의 독립된 현이 있었던 곳이다. 대체로 지금의 고창읍과 고수면(古水面)·아산면(雅山面) 일대는 옛 고창현 지역이며, 무장(茂長)·성동(星洞)·대산(大山)·공음(孔音)·상하(上下)·해리(海里)·심원면(心元面) 일대는 옛 무장현 지역이고, 흥덕(興德)·성내(星內)·신림면(新林面) 일대는 옛 흥덕현 지역에 해당한다. 3개현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고창군·무장군·흥덕군이 되어 전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의 지방제도 재개편으로 전라남도에 속했다. 이는 나주·영광 등과 지역적 연계가 많아 동일한 문화권과 생활권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로교통의 약화와 육로교통의 변화 등으로 1906년 3개 군이 전라북도로 편입되었으며, 지방구역 정리에 의해 고부군의 비입지(飛入地)인 부안면이 흥덕군에 이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3개 군 중 가장 작은 곳이었던 고창에 나머지 2군이 합병되어 고창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5년 고창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고창이라는 지명은 높고 넓은 들(보리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 자연환경: 동쪽은 노령산맥 줄기의 방문산(方文山: 640m)·방장산(方丈山: 734m)·문수산(文殊山: 621m)·고산(高山: 527m) 등이 뻗어 있으며, 북서부에는 소요산(消遙山: 444m)·경수산(鏡水山: 444m) 등 높이 300~400m의 산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에는 100m 미만의 넓은 구릉지가 발달하여 일부 지역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노령산맥(蘆嶺山脈: 소백산맥의 지맥) 서사면(西斜面)에서 발원하는 인천강(仁川江)은 고창읍을 양분하며 아산면의 중앙협곡을 지나 곰소만03으로 유입된다. 인천강은 고창군의 관개용수 공급원이며, 그 연안은 도로와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그밖에 문수산(文殊山)에서 발원하여 고수면을 지나 인천강으로 흘러가는 고수천(古水川)과 선운사(禪雲寺) 옆을 지나 서해로 유입하는 주진천(舟津川) 등이 있다. 동림·궁산·운곡·신림 등의 저수지가 관개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롭다. 기후는 위도상 남쪽에 위치하고 바다에 면해 있어 비교적 온난하다. 연평균기온 12.9℃ 내외로 전국 평균보다 높으며, 1월 평균기온 -1.6℃ 내외, 8월 평균기온 26.5℃ 내외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150㎜ 정도이며, 동부의 노령산맥 서사면은 지형적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 식생으로는 난대성 식물인 동백나무·이팝나무 등이 군락(群落)하고 있다.
◎ 문화 유산: 군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5, 사적 5, 천연기념물 4, 중요무형문화재 1, 중요민속자료 2)와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9, 기념물 3, 민속자료 2)가 있다. 월곡리(月谷里)·죽정리(竹亭里)·도산리(道山里) 등 곳곳에 400여 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선운사(禪雲寺)·문수사(文殊寺)·흥덕사(興德寺)·상원사(上院寺)·몽불사(夢佛寺)·용화사(龍華寺) 등의 사찰이 있다. 577년에 창건된 선운사에는 선운사금동보살좌상(禪雲寺金銅菩薩坐像, 보물 제279호)이 있다. 산성으로는 1417년 축조된 무장남문(茂長南門, 전북 기념물 제11호)과 토성 및 1453년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창읍성(高敞邑城, 사적 제145호)이 있으며,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한다. 유교 문화재로는 고창향교(高敞鄕校)·무장향교(茂長鄕校)·흥덕향교(興德鄕校)와 현곡정사(玄谷精舍, 전북 유형문화재 제57호), 용오정사(龍塢精舍, 전북 유형문화재 제91호) 등이 있다. 그 밖에 고려청자에서 조선 분청사기로 옮아가는 과도기의 도요지인 수동(水東)분청사기요지(사적 제205호)·와촌(瓦村)마을요지·동촌(東村)마을요지·사내(沙乃)마을요지·지석(支石)마을요지 등이 있으며, 조선 말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申在孝)의 고택, 인촌 선생 생가(仁村先生生家)가 있다.
◎ 『전경』과 관련된 곳: 방장산(方丈山)04은 전북 고창, 정읍 그리고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방장산 등산로입구가 전남 장성군 북이면 죽청리(竹靑里)로 되어 있으므로 방장산에 대해서는 전남 장성군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참고문헌
『전경』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뿌리깊은 나무, 1988.
『두산세계대백과사전』, EnCyber, 200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CD GX,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2002.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동서문화, 2002.
한글학회,『한국지명총람 11』(전북편 上), 한글학회, 2003.
이기화, 『고창의 마을유래』, 고창문화원, 2003.
이병운, 『한국 행정지명 변천사』, 이회, 2004.
송호열, 『한국의 지명 변천』, 성지문화사, 2006.
01 온갖 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하는 것을 의미함.
『전경』 행록 2장 1절(…인심과 속정을 살피고자 주유의 길을 떠나셨도다.), 행록 2장 3절[…경기(京畿)ㆍ황해(黃海)ㆍ평안(平安)ㆍ함경(咸鏡)ㆍ경상(慶尙)도의 각지에로 두루 유력하셨느니라. 어느 날 상제께서 전주부에 이르시니 부중 사람들이 상제를 신인으로 우러러 모시니라], 교운 2장 44절[…도주께서는 회문리(會文里)에 마련된 정사 회룡재(廻龍齋)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두루 다니시면서 수행하셨도다.), 교운 2장 60절(박 한경이 이해 八월에 충청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교화에 힘을 다하고 있던 중에….]
02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의 신무산(神舞山: 897m)에서 발원하여 군산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 우리나라 6대 하천의 하나이다. 유역 면적이 9,885㎢, 유로 연장이 401㎞로 남한에서는 낙동강ㆍ한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03 전북 부안군과 고창군 사이에 있는 만(灣)이다. 곰소라는 명칭은 지형이 곰과 같이 생긴 섬과 그 앞에 깊은 소(沼)가 있어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04 행록 1장 2절, 행록 1장 3절, 예시 4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