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설 or 지동설?>
[1] 사람들에게 ‘중세 시대가 어떤 시대였을까?’라고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도 대다수가 ‘마녀사냥을 했던 시대?’, ‘교회의 마음에 안 들면 화형 당하던 시대?’라 답할 것이다. 좀 더 섬세한 표현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과학 등의 이성이 종교에 의해 억압받고, 교회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시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질문을 살짝 바꿔보자. ‘중세 시대의 천문학은 어땠을까?’
[2]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점성술과의 결합 시대’, ‘천동설을 믿고 지동설을 배격하던 시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대’ 등등의 대답들이 나올 것이다.
오랜 옛날, 인류는 땅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이 돈다고 생각했다. 그 패러다임에 철학적 해석을 입히고, 신학적 권위를 더해 만들어진 것이 ‘천동설’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행성이 돈다고 본 것이다.
[3] 그러나 천동설로는 다른 행성들의 움직임과 주기를 명확히 설명해낼 수 없었기에, 지구 중심 패러다임에 의문을 갖는 천문학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16세기에 이르러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지동설’을 주장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 새로운 우주관은 당시 교회의 지배층들과 철학자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아왔다.
[4] 대표적인 공격의 내용은 이렇다. ‘이렇게 큰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과 공전을 한다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지구 위의 우리가 어떻게 멀쩡하게 발붙이고 땅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빠른 속도로 원운동을 한다면 분명 모두 다 튕겨 나갈 텐데 어떻게 지구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
누가 들어도 일리 있는 의문제기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5] 지동설의 허무맹랑함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반박할 근거가 또 있겠는가?
하지만 이 주장을 잠재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위로 물건을 던지면 어뗳게 되겠는가?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므로 그 물건은 저 뒷사람에게 떨어지리라 생각하는가? 천만에다. 내 손 위로 떨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열차 속에 있는 모든 대상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내가 던진 물건 역시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6] 다시 말해서, 모든 사물은 같은 운동 상태를 공유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지구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면 지구가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순식간에 지구에서 튕겨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지구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고정된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것과 같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교회가 천동설의 근거로 제시한 구절은 어떤 것들일까? 하나씩 살펴보자.
[7] 첫째 구절은 시 19:5-6절이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둘째는 수 10:12절이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 할지어다 하매.”
[8] 셋째는 시 104:5절이다.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이 구절들만 보면 정말 성경은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땅이 고정되어서 돌지 않는다고 표현한 반면, 해나 달은 움직이거나 멈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 성경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9] 위의 내용은 객관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해를 의인화한 비유법이다. 이 내용을 객관적 사실이나 문자적으로 본다면 시 104:2-3절의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란 내용은 어찌 봐야 하나?
여호와께서 실제로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신단 뜻인가?
[10] 모두가 비유다. 그렇다면 5절에서 말한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란 구절도 비유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지구가 고정되어 돌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기초를 세워 만든 집과 같이 지구를 튼튼하게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해나 달을 비유로 해서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했다면, 어째서 땅은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11] JMS가 가르치는 ‘30개론’ 가운데 ‘태양아 멈추어라!’란 제목의 한 가지 내용이 나온다. 대학교 시절 성령을 체험한 후 전도에 불이 붙어 전도하다가, 역시 전도에 열심인 이단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니 성경을 너무 잘못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단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단 집회에 참석해서 강사와 논쟁을 벌여 거기 모인 사람들을 갈라져나가게 하고, 이단에 빠진 이들을 다수 건져내기도 했다.
[12] 한번은 후배가 빠져있는 대구 JMS 교회를 찾아가서 여자 목사와 논쟁을 벌였다. 그녀가 내게 따지듯이 말했다. “왜 목사들은 여호수아의 사건을 가지고 태양이 멈춘 것으로 말하느냐? 천동설이 아니라 지동설이 과학적인 사실도 모르고 설교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목사들이 지어내서 말하는 게 아니고 성경의 기록대로 가르치고 전하는 것인데, 어째서 목사들한테 틀렸다고 말하느냐?
[13] 당신 말이 맞다면 성경이 틀렸다고 얘기해야 옳지 않느냐? 그러면 성경이 틀렸느냐? 아니질 않느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처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지 않느냐?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땅에 몸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한계 상황의 인간들 아니던가!
아침에 일어나서 동쪽에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당신은 뭐라고 말하는가?
[14] ‘야, 오늘도 동쪽에서 붉은 해가 떠올랐구나!’ ‘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있구나!’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말하는 일상의 대화이자 표현법이 아니더냐? 만일 이런 표현을 거부한다면 지구를 떠나라!”며 호통을 치고 나왔다.
성경이 기록된, 태양과 달이 멈추어진 역사적 사건 역시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당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그걸 목격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사고와 생활적 대화에 맞게 표현한 것이다.
[15] 과학을 몰라서 그리 표현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만일 우리가 과학적으로 표현한다고, ‘오늘 지구가 또 자전했네!’라거나 ‘지구가 회전함으로 동녘이 밝아지기 시작했군!’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너무 복잡하고 괴상하고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위에 표현된 내용들이 비유도 맞지만 우주와 천체를 내다보시는 하나님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고정되어 보이는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우리 인간들의 일상적 사고와 표현에 맞춰서 기록하신 말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16] 개미와 대화를 하려면 개미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성경엔 지동설을 지지하는 구절들은 없는가? 우선 창 1:1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seasons)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우리말은 ‘계절’로 되어 있지만 영어는 원어에 맞게 복수형인 ‘seasons’, 즉 ‘계절들’이다. 4계절을 뜻한다.
[17] 과학적으로 볼 때,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매일 동일하게 도는 게 맞다면 어떻게 사계절이 생길 수 있겠는가? 불가능이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거리의 변화로 인해 사계절이 나타난다는 것이 과학적 연구의 결과이다. 성경은 분명 사계절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하는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성경이 지동설을 말하고 있음이 참인 첫 번째 이유가 된다.
[18] 다음으로는 욥기 26:7절 말씀이다. 욥은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에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지구가 어떤 것에 고정되어 태양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떠있는 것임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 말씀이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19] 물론 그렇다고 성경이 비과학적이란 말도 아니다. 처음부터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시적으로나 비유로,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일상 언어로 묘사했음을 기억하자.
성경이 한 치의 오류나 비상식적이거나 몰상식적인 내용이 없는 진리의 말씀임이 오늘 내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