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상과 판결
우리나라에서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 이제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이 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일 테고, 우리나라 최고 법원은 대법원이다. 그곳에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여인상이 있다. 유럽은 시청 청사 건물 중앙 높은 곳이면 거의 다 세워져 있어 관광 길에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설령 있더라도 관심 밖이고, 또 눈여겨보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여인상이다.
바로 그 여인상은 한 손에 저울, 다른 손에 칼을 거머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다. 이 라틴어는 영어 ‘저스티스(Justice)’의 어원이며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이다. 또 칼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로마 시대에는 다른 손에 저울을 들었고, 또 이도 부족해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도 있다. 저울은 공정한 형평, 칼은 강력한 집행, 눈가리개는 편견 없는 판단의 상징이기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과 정의 실천의 의지 표명이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의의 여신상은 오른손 칼, 왼손 법전에 눈가리개가 있다. 또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은 한복을 입고 칼 대신 ‘법전’에 ‘눈가리개’ 없이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다. 그러니까 ‘법’의 ‘공정’과 ‘판결’ 의지란다. 그러나 정의와 공정의 잣대가 결코 눈을 뜨거나 감고에 달라져서는 안 된다. 또 칼, 저울, 법전, 눈가리개와도 절대 상관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평범한 시민도 알아보는 김학의 얼굴을 눈 뜨고도 못 알아보는 검사, 판사에, ‘유권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같은 말이 횡행하니 판검사의 법과 시민의 법 기준이 다르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내란 1심 재판부 판사 지귀연은 내란죄로는 가벼운 형인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계몽령이네, 호소형 계엄이네 떠벌이며 윤 어게인을 외치는 추종자에게 두 주먹 불끈 흔들며 당당히 미소 짓고, 책임은 부하에게 전가, 한 번도 뉘우치는 말도 없고, 재판 출석도 입맛 따라 참석해도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이 당연함은 무권, 무전 시민에게는 분노와 한탄이고, 유권, 유전의 법조인에게는 우이독경, 마이동풍이다. 그저 시민에게 남는 건 체념, 포기이고 속앓이가 끝일 뿐이다.
과연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뜬 건가. 감은 것인가? 무엇 하러 법과대학원에 세우고, 대법원은 고운 한복까지 입혔단 말인가? 그렇게 정의의 여신상 뒤에 숨어서, 법과 원칙이란 말 뒤에 눈 내리깔고 거만하게 앉아서, 겉은 엄중하고 뒤로는 희희낙락이다. 형량 계산의 의뭉 음흉한 보여주기식 판결에 지난 2024년 12월 4일의 내란 척결이 아직도 요원하다. 해방 뒤 친일파 척결에 실패한 이승만 정권의 되풀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오죽하면 판사 지귀연이 내란수괴 윤석열을 공소기각으로 풀어주지 않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더욱 시일이 흐르며 적반하장으로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의 국민의 힘당 대표 장동혁은 이재명 대통령이 독재자라며 탄핵까지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내란 척결은 그만두고 그들 내란정당의 힘에 깔려 숨쉬기조차 힘드니, 국민의 짐이요 국민의 암은 필시 이를 말함이다. 이뿐인가? 지난 9월 22일이다. 이제명 대통령이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 제청을 반려한 지 25일 만에 대법원장 조희대는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재제청 요청을 거부했다. 이에 민주당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조 대법원장에게 ‘12·3 비상계엄 당시 대법관 긴급회의 이유, 서부지법 난동에 침묵한 이유, 대선 전 이재명 대통령 유죄취지 파기환송 목적, 정치세력과의 공모 여부’ 등을 따지고 있다.
참으로 답답하다. 이를 보며 정의의 여신이 왜 칼과 법전, 눈가리개까지 하며, 더욱 대법원 여신상은 눈을 뜨고 한복까지 입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의의 여신상이 개그의 여신상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정의와 공정은 어디에서, 무엇에서 찾고, 도대체 정의로운 판결은 누구에게 받아야 하나? 대법원장이든 누구든 법을 내세워 정의의 여신상을 더는 모독하지 말자.
정의의 여신상과 판결 – 호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