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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답사 스크랩 [충청] 1000년지기 용두사지철당간(충북청주)
이재붕 추천 0 조회 152 09.04.03 12:1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충북 청주시는 자주 지나 다니고 있으며, 내게 있어  인연이 있는 도시이지만, 나는 육거리 부터 상당공원(충북도청 옆)에 이르는 청주의 구도심에는 자주 갈일이 없다.  

구도심의 성안길 즉 예전의 청주읍성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이다.  충북 청주시의 구도심에 가장 번화한 거리지만 주차장이 마땅 찮고 복잡하여 자주 들리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도 왜놈들 냄새가 나는 일본식 명칭 본전통(本町;혼마찌=본정통)보다 최근에 새로 만든 성안길이라는 이름이 내 마음이 든다. 

오늘은 시간내어 용두사지철당간이 있는 그 성안길을 찾기로 마음 먹고 다녀왔다.

이래 저래 이름이 바뀌어 백화점이 있고, 성안길과 청주의 중앙공원사이에 위치하여 청주사람들은 무심코 지나가지만, 근 30년만에 재회하는 1000년 넘은 쇳덩이리들이 무척 반가웠다. 지금같은 마음으로 학교 댕길때 여러가지 공부를 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며 되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시내 복판에 1000년을 넘게 지키고 있는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시 남문로 2가 용두사 터에 세운 철제 당간에 새겨진 명문. 김원(金遠)이 짓고 해서로 써서 손석(孫錫)이 새겨 962년(고려 광종 13)에 세웠다. 원래 건립한 당간이 남아 있는 드문 예로서 현재 원 위치에 보존되어 있는데 30단 중 현재 20단이 남아 있다. 명문은 아래 셋째단에 양각으로 새겼다. 당간은 국보 제41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남은 당간 전체의 높이는 12.7m이며, 당간의 둘레에 24줄로 새긴 글자의 크기는 2cm 정도이다. 내용은 당간의 의미를 설명하고 지역 유지인 김예종(金芮宗)이 병이 들어 당간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죽고 그 종형인, 역시 지역 유지 김희일(金希一)이 만들었음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사(詞)에 이어 건립에 참여한 승려와 시주 명단을 열거하고 건립일을 명기하였다. 시주들이 지방 유력자들로 구성되어 향리직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광종의 연호인 준풍(峻豊)을 명기하였다

 

 

 

 

당기(幢記)의 전면 : 남쪽

 

 

 

 당기(幢記)의 후면: 북쪽

 

 

당시에 유행해던 강직한 구양순의 해서체가 아닌

좀더 부드러운 유공권의 해서체로 되어 있는 당기(幢記) !

우리나라의 온전한 철당간은 3개 

이곳 말고 공주갑사철당간, 경기 칠장사의 철당간뿐이며,

현존하는 당간 유물 66개 중에

오직 용두사지 철당간만이 국보인이유는 제작년대등을    

위의 당기로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내용을 기술하오니 참조 바랍니다

   

 

 

 

龍頭寺幢竿記
   

 

前翰林學生金遠撰兼書 鐫者孫錫」
早聆幢竿所製?佛門之玉樓播盖由來」
粧寶殿之神?其猶也鶴翔碧空龍躍」
下?立之者旁發信心望之者心傾丹」
愿固知伏魔鐵杖挫賊霓旌頃有堂大」
等金芮宗者也州里豪族鄕閭冠族偶因染」
疾忽約」
佛天仰祈則敬造鐵幢俯擔則莊嚴玉刹然而」
難停逝水易沒黃泉已間數歲遲延隔時」
容易於時從兄堂大等正朝賜丹銀魚袋」
金介一等彼爲還願此繼頹繹令鑄」
成三十段之鐵筒連立六十尺之幢柱穿雲」
捧日貫霧倚空魯氏雲梯難攀龍盖甘」
寧錦纜永敞?繩可謂奉仁心深典亡情切」
植金剛之不朽營玉刹之無窮僕者膠柱頑」
流剋舟膚物忽蒙勸我聊表短章其詞曰」
幢竿始立天半可壓巧成物像莊嚴佛法兄」
弟兩家令脩善業鑄之植之无窮永겁劫」
當寺令釋紬大德 檀越兼令金希一正朝金守▨」
金釋同釋希▨ 金寬謙大等監司上和尙信學▨▨」
前侍郎孫熙  前兵部卿慶柱洪大 學院卿韓明」
寔柰前司倉慶 奇俊大舍學院郎中孫仁謙鑄▨▨大」
維峻豊三年太歲壬戌二月二十九日鑄成」

〔출전:『韓國金石全文』中世上(1984)〕

 

용두사(龍頭寺) 철당간기(鐵幢竿記)

전 한림학생(翰林學生) 김원(金遠)이 짓고 아울러 썼으며 새긴 이는 손석(孫錫)이다.

일찍이 듣건대 당간(幢竿 : 장대를 높이 세워 깃발을 매다는 것으로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나타내기 위해 사찰이나 법당 앞에 세움)이 만들어진 바는 불문(佛門)을 꾸미는 옥같은 표지이며 번개(幡盖 : 깃발로서 불보살의 위덕을 나타내는 장엄 도구)의 유래는 법당을 장엄하는 신령스런 깃발이라 하였다. 그 모양은 학이 푸른 창공을 날아 오르고 용이 푸른 하늘을 뛰쳐 오르는 것과 같다. 세운 사람은 크게 신심(信心)을 일으키고 바라보는 사람은 반드시 충정의 정성을 기울일 것이니 진실로 마귀를 항복받는 쇠지팡이요 도적을 물리치는 무지개 깃발임을 알겠다.
근래에 당대등(堂大等 : 고려 향리 중의 최고위 직함. 983년에 戶長으로 바뀜) 김예종(金芮宗)이라는 이가 있으니 고을의 큰 가문이요 지방의 손꼽히는 집안이다. 우연히 병에 걸려 문득 부처와 하늘에 약속하기를, 우러러 철당간을 삼가 만들기를 빌고, 엎드려 훌륭한 사찰을 장엄할 것을 맹서하였다. 그러나 세월은 멈추기 어렵고 죽음에 빠지기는 쉬워 그 사이에 몇 년이 늦어지고 때는 쉽게 멀어졌다. 이때에 종형인 당대등 김희일(金希一) 등이 저쪽에서 돌이킨 서원이 되게 하고 이쪽에서 끊어진 인연을 이어 마침내 30단의 철통을 주조하게 하고 이어 60척의 당주(幢柱)를 세웠다.
구름을 뚫고 해를 받들고 안개를 관통하여 공중에 기대어, 노반(盧班 : 수레에 사다리를 달아 성을 공격하는 도구를 만든 사람)의 사다리로도 용개(龍盖)에 오르기 어렵고 감녕(甘寧 : 오나라 사람으로 호사를 즐겨 비단으로 배를 묶음)의 비단 밧줄로도 옥돌줄을 당하기 어렵겠다. 죽은 이를 받드는 마음이 깊고 망한 이를 일으키는 정이 간절하여, 금강의 썩지 않음을 심고 옥찰(玉刹)의 무궁함을 영위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아교처럼 완고한 사람으로
어리석고 천박한데 문득 나에게 권유함을 입게 되어 겨우 짧은 글을 나타낸다. 사(詞)에 이르기를, 당간이 처음 서서 하늘 가운데에 미치니 공교롭게 물건의 모양을 이루어 불법을 장엄하도다
형제간의 두 집이 합쳐 선업을 닦아 주조하고 세우니 영겁토록 무궁하리라

이 절(용두사)의 영(令)은 석주(釋紬) 대덕(大德)
단월(檀越) 겸 영(令)은 김희일(金希一) 정조(正朝), 김수▨(金守▨), 김석희(金釋希) 대등(大等 : 고려 향리의 유력자 직임으로 당대등에 이은 둘째 직책. 성종 때 副戶長으로 이름이 바뀜), 김관겸(金寬謙)
감사(監司)는 상화상(上和尙) 신학(信學), ▨▨, 전시랑(前侍郎) 손희(孫熙) 대등, 전병부경(前兵部卿) 경주흥(慶柱洪) 대등, 학원경(學院卿) 한명식(韓明寔) 나말(柰末 : 나마(奈麻), 신라의 17관등의 11관등), 전사창(前司倉) 경기준(慶奇俊) 대사(大舍 : 신라 17관등의 12관등), 학원낭중(學院郎中) 손인겸(孫仁謙) 주대▨▨(鑄大▨▨) 준풍(峻豊 : 고려 광종의 연호, 960~963) 3년(962, 광종 13) 임술년 2월 29일에 주조하여 완성함.

자료출처  :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 http://gsm.nricp.go.kr/_third/user/main.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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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4.07 10:36

    첫댓글 이재붕선생님!! 용두사지 철당간 자료 잘 보고 읽었습니다. 당간기까지 자세히 알려 주셔서 많은 공부 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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