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
임병식 rbs1144@daum.net
과학적으로 보면 바람은 기압의 변화로 인하여 생기는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지만 은유적으로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즉, 바람 든 무는 아무래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사람이 바람이 나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사람은 살아가며 바람을 피기도 하고 바람을 맞기도 한다. 그러다가 태풍 같은 강한 바람에 휩쓸리면 정신 차릴 새 없이 대책 없이 휘말리게 된다.
예전에 바람단지는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자연스레 접근을 기피하였다. 그런데 지나친 화석연료 사용으로 화력발전소가 환경오염을 시키는 주범으로 여겨지고, 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소 또한 자원적인 한계가 드러나자 다른 대체재를 찾게 되었다. 그것이 태양광과 풍력이다.
그 중에서 풍력은 태양광과 달리 2차로 가공되지 않는 순수에너지에 속한다. 바람자체가 원동력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기계음인데 이것은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바람은 맞서는 장애물이 없으면 한 방향 직선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기압과 기상상태에 따라서 강약의 정도가 달라진다. 크게 보면 대류현상에 따라 계절풍이 불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체로 봄에는 남풍, 여름에는 동풍, 가을에는 서풍, 겨울에는 북풍이 불어온다.
그러한 변화가 아니면 바람은 대부분 일정하게 한 방향으로 분다. 나는 어렸을 적에 바람 골, 혹은 바람 길이라는 말을 흔히 돋고 자랐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동구 밖 있는 당산나무가 서 있는 어느 언저리였다.
그곳은 늘상 바람이 불어서 곡식 반 검불반인 것들을 가지고 나와 알곡을 고르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그것을 머리위로 들어 올려 바람에 날리면 풍구를 이용할 때처럼 깨끗하게 알곡이 가려졌다. 또 다른 장소는 풍치고개인데, 그곳은 지명이 바람풍(風)자가 들어갈 만큼 늘 바람이 부는 곳이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철이라도 그곳에만 이르면 불어오는 바람에 금방 땀이 말랐다. 불어오는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흔히 제주도를 말할 때 돌과 여자와 바람이 많다고 한다. 언젠가 제주도를 둘러보는데 돌담에 흙이 채워져 있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냥 사람의 얼굴이 내다보이도록 해둔 것이 특이했다. 그것을 보면서 그때는 제주도는 화산암 지대여서 흙의 점성이 높지 않아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밖에 다른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전북 진안 마이산의 듬성한 돌탑을 돌아보고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뚫린 구멍이 바람 길이라는 것을 거니챘다. 바람이 많은 고장에 돌담을 쌓으면서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터주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주도의 돌담을 볼 때는 얼굴이 얼비친다는 것만 의식했는데, 마이산 돌탑을 보고서는 느낌이 왔던 것이다. 돌탑의 층계는 1.5미터에서 2미터에 이르는데 그것은 적잖이 스무개도 넘었다. 작은 것이라도 8,9개가 쌓였는데 자연 상태로 쌓인 돌탑은 낌 돌만 몇 개씩 끼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 돌탑이 지지대도 없이 우뚝하니 신기해 보이기만 했다.
그 형상은 금방 시선을 사로잡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돌탑이 이미 100년이 지났음에도 하나도 무너지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그 광경은 말의 두 귀를 닮은 빼어난 경관과 합쳐져서 더욱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어마어마한 두 바위 사이에 누가 이토록 많은 돌탑을 쌓았단 말인가.
현황판을 보니 주인공은 도사(道師) 이갑용(李甲龍.1860-1957)옹이라고 한다. 40대에 입산하여 혼자서 30여 년간 생식을 하면서 모든 탑을 다 쌓았단다. 그것이 모두 80기가 넘는데 특이한 것은 돌탑마다 전국 팔도에서 가져온 막돌을 한 개씩 끼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보기에 특이한 것은 이런 ‘막돌 허튼식’이 아무렇게나 쌓은듯 해도 기막히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보기에는 금방 무너질 듯 위태롭게 보이는데도 몰아친 태풍에 끄떡 않고 버티고 있는 점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버틸 수 있게 했을까. 살펴보았지만 균형을 잡은 건 끼어 넣은 굄돌이 전부였다. 그것을 보니 문득 깨달아졌다. 한 줄로 쌓아올린 돌탑 사이가 숭숭 구멍이 뚫려 보이는데 그것이 ‘바람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제주도의 돌담도 당시는 건성으로 보아서 몰랐지만 그 엉성해 보이는 그것이 바로 바람구멍이었던 것이다. 돌담을 쌓아 짐승이나 사람의 접근은 막지만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이 빠져나가도록 한 것임이 분명했다.
마이산 골짜기의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것을 감안하여 도사는 사전에 치밀한 계산을 한 것임이 분명하다. 모든 자연현상에 대해 무모하게 맞서는 것은 재앙을 불러온다. 바람구멍이 막히면 문제가 생긴다. 그럼으로 숨구멍은 터주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체에는 혈맥과 기맥, 인파선이 흐르는데 이것이 막히면 병이 생긴다. 입으로 먹은 것은 소화가 되어 배출되고, 피와 기는 원활하게 신체 구석구석을 돌아야한다.
뇌에 피가 막히면 뇌경변을 일으키고 기가 막히면 기절(氣絶 )을 하게 되고 호흡니 막히면 질식(窒息)을 하게 된다. 그런 것을 이미 깨닫고 엣날 사람이 이런 기막힌 자연의 이치를 돌탑쌓기에 적용하다니. 치밀한 계산을 하여 돌탑 쌓기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 사실을 뒤늦게 내가 끼어 넣은 굄돌을 보고 알아낸 것이 스스로 돌아보아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돌탑사이로 수많은 바람이 지나갔을 것이다. 더러는 밖으로 돌아나가기도 하고 돌 틈 사이를 꿰어서 지나쳐갔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혜안을 보았다. 외양으로 드러낸 신비함도 신비함이지만 바람구멍을 내어 온전히 탑을 보존한 지혜가 새삼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높은 탑이 바람이 불면 조금씩 흔들리기는 하지만 넘어지지 않는 것은 그런 역학관계까지도 감안한 것이어서 그저 경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이 구조물이야말로 앞으로 누가 일부로 해체하지 않는 한 천년이고 만년이고 온전히 보존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럼으로 이날 내가 둘러 본 돌탑은 단순이 어느 한 도인이 만들어놓은 빼어난 조형물이 아니라 바람과도 함께 소통하며 조성해 놓은 놀라운 걸작 품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2025)
첫댓글 바람길, 동구 밖에 있는 당산나무가 서 있는 언저리, 알곡을 고르는 장소는 풍구였고, 풍치고개에서는 바람에 땀이 말랐으니 일찍 부터 바람길에서 그 정체를 경험하셨습니다. 제주도 돌담의 바람길도 읽으셨고, 드디어 진안 마이산 돌탑에서 '바람길'이 그 대단원의 해답을 해 준 것 같습니다. '바람길'에 대하여 이 토록 정제되고 솜털과 같이 부드러운 글은 임작가님의 그간 작가의 면모를 새로 읽은 것 같아 감동입니다.^^♡
마이산의 돌탑은 시기함 자체였습니다.
굄돌 몇개만이 끼어넣어 균형을 잡아놓은 것은 신인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터득한 선인들의 지혜가 새롭습니다 물길처럼 바람도 길 따라 불어오는 것같습니다 제주의 돌담과 마이산의 돌탑이 바람을 순화시키는 이치에 탄복합니다 인간세상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평화롭겠습니까 바람을 막아서면서도 결코 대적하지 않는 오묘한 자세를 배웁니다
모처럼 좋은 구경을 했네요.
안가본 곳이 너무 많아 보는것 마다 신비하여 경탄을 하면서
즐기고 있습니다.
특히 마이산 돌탑은 시비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