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처럼
코로나 19로 민들레국수집은 지난 2월 하순부터 손님들에게 도시락을 드렸습니다.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오전 11시에 준비된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두세 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다른 곳과 달리 줄을 서지 않아도 됩니다만 그래도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줄을 서지 않으니 기다리면서 다투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시간 여유가 있을 때면 손님들에게 커피믹스 한 잔 타 드리기도 합니다. 담배와 사탕을 들고 다니면서 구름사탕 또는 진짜 사탕을 하나씩 나누기도 합니다. 줄을 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 손님들은 선해집니다. 새치기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손님들의 신원을 파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시락을 나누면서부터는 코로나 19 때문에 이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내일 도시락을 몇 개를 준비해야 하는지 참고도 하고 혹시 감염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렇습니다. 주소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이름과 나이만 확인합니다. 이름을 확인하면서 체온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손 세정제로 손을 닦게 합니다. 그런데 이름과 나이가 계속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모른 척합니다. 처음 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할 때 이름을 확인한다면 오지 않겠다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기소중지가 되어 있거나 숨어 사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전 11시가 되어서 도시락을 나눌 때는 여성과 노인들에게 먼저 드립니다.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도시락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서 때문에 다투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도시락을 받으러 오는 손님은 여성은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노인이 찾아오시는 경우에는 이곳은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도 노인의 사정이 거절하기 어려우면 오시도록 합니다. 가장 연세가 많은 손님은 97세입니다. 여든이 넘는 노인도 몇 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오륙십 대입니다.
"코로나 19가 언제 끝날 것 같아요?" 노숙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힘들어 합니다. 겨우 사십대 초반인 성민(가명)씨가 당뇨가 너무 심해서 진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내일 서울 동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차비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전에는 무료 진료소에서 당뇨 약 타서 먹었는데 코로나 19로 약을 구할 수가 없어서 그냥 살았더니 당뇨가 아주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은 찜질방에서 자고 내일 병원에 가라고 만 삼천 원을 줬습니다.
부평에서 온 노인께서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하십니다. 매일 도시락을 가지러 오셔도 좋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좋아하십니다.
오늘 손님들께 드리는 도시락 꾸러미는 내용이 이렇습니다. 도시락, 김, 사발면, 된장국, 빵, 사탕 몇 개, 사과즙입니다. 생수도 한 병. 도시락 꾸러미를 받자마자 배가 아주 고픈 분들은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급히 먹습니다. 빵과 사탕 그리고 사발면은 나중에 먹기 위해 남겨 둡니다.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우고 사과즙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 최대한 많이 담기 위해 꼭꼭 눌러서 담습니다. 반찬도 최대한 많이 눌러서 담습니다.
트럭에 두부와 반찬거리를 싣고 장사를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민들레국수집 후원자십니다. 오늘도 민들레국수집에 들러 순두부를 한 통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트럭이 다시 국수집 앞에 섰습니다. 다리 밑에서 배고파서 어쩔 줄 모르는 노숙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먼저 순두부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주었는데 잘 먹지 못해서, 민들레국수집에 데리고 가면 도시락을 먹일 수 있을 것 같아서 트럭 옆자리에 태워서 왔습니다. 냄새가 대단할텐데.... 잘 견디셨습니다. 도시락을 줬습니다. 정말 게눈 감추듯 먹었습니다. 빵도 몇 개 더 줬습니다. 그런데 국수집 근처를 떠나질 않습니다. 민들레 식구들이 걱정이 되어서 컵라면과 빵을 몇 개 가져다 주었습니다.
5월 11일부터 20일까지 도든아트갤러리에서 고제민 화가의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전시회를 시작하자마자 모든 전시 그림 밑에 빨간 점이 붙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후원하는 나눔의 전시회입니다. 고맙습니다.
글로벌게임사 IGG에서 재미난 연구소에 마스크를 기증했고요. 재미난 연구소에서 민들레국수집에 육천장의 마스크를 나눠주셨습니다. 제가 할 일은 부지런히 우리 손님들에게 마스크를 나누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초코바 300개도 함께 선물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초코렛을 제일 좋아하는 필리핀 엄마들 그리고 아이들 모임 때 내어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천에도 코로나 19 확진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불안합니다.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손세정제로 소독도 아주 잘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아주 잘 하고요. 체온도 잘 잽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집니다. 도시락 음식이 상할까 걱정입니다. 손님들께 도시락을 받으면 한 시간 내에 드시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계속 확진자가 200~1,000명이나 늘어나고 있습니다. 3월 15일부터 강력한 봉쇄로 지금껏 있다가 다시 6월 15일까지 약간 완화된 봉쇄가 계속됩니다. 도시간 이동을 할 수 없고, 대중교통도 중단되었고요. 미장원과 이발소는 문을 열지 못하고, 집회나 모임은 10명 미만만 모일 수 있으니 이번에도 아이들 급식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학교도 계속 휴교라고 합니다. 이제 필리핀은 우기가 시작될 텐데... 굶어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하루 굶고 하루 조금 먹고 그렇게 연명하고 있다는데... 필리핀 입국 금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6월에 들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장학금도 나누어야 하고, 쌀도 나누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이들 중에는 아주 조그만 도움만 있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펌프에 마중물 조금 넣고 펌프질을 하면 콸콸 물을 뿜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도움을 줄 기회를 잘 찾아내어야 가능합니다. 어느 쉬는 날 민들레국수집에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손님에게 밥은 먹었는지 물어봤더니 먹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나도 때를 놓쳤다고 하고 함께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국밥을 먹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민석(가명)씨는 57세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왔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돈은 떨어지고 그래서 노숙을 하게 된지 삼 년이나 되었답니다. 모친이 치매여서 막내인 자신이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 어느 시골 집에서 살았답니다. 모친의 치매가 점점 심해져서 다행스럽게도 요양원에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친이 안 계신 집에 형편이 어려워진 작은 형님 가족이 내려와서 함께 살게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홑몸인 자기가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인천으로 왔다고 합니다. 밤에는 이곳저곳 걸어다니다가 새벽에야 도서관이 문을 열면 들어가서 눈을 붙이고 그렇게 지낸다고 합니다. 노숙에서 벗어나 살 수 있도록 조금 돕겠다 했습니다. 크게 돕는 것 아니고 우선 여인숙 쪽방에서나마 지낼 수 있도록 방을 얻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문을 여는 토요일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담배 한 갑 챙겨줬습니다. 토요일에 정말 민들레국수집에 찾아왔습니다. 식사를 한 다음에 민들레 희망센터에 가서 씻고 새 옷으로 갈아 입게 한 다음에 동네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했습니다. 사람이 훤하게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며칠간은 찜질방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밥은 국수집에서 먹고 민들레희망센터에 가서 책을 보면서 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거나 아니면 자활센타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석(가명)씨의 주소를 만들기 위해 여인숙에 방 하나를 얻고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두세 달 후에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노숙을 할 때는 찜질방에서 자는 것만도 참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을 찜질방에서 지내면 점점 힘들어집니다.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찜질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럴 때 여인숙 쪽방을 구하면 참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인숙도 지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보통 여인숙 쪽방은 한 달 선불을 냅니다. 20만원 정도입니다. 빈털털이 신세인 사람에게는 살림살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면도구만 있으면 그런대로 지낼 만 하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의 동네 할머니가 어느 날 찾아왔습니다. 월세방이 필요한 사람에게 방을 소개해 달라고 합니다. 요즘은 lh공사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저렴한 조건의 방을 임대해 줍니다. 그래서 할머니처럼 옛날부터 월세를 받고 사는 할머니들은 이제는 세입자를 구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덕분에 할머니 집의 문간방을 얻기로 하고 민석(가명)씨가 살기로 했습니다.
여인숙에서 한 달을 산 다음에 할머니 댁 문간방으로 이사했습니다. 살림살이도 장만했습니다. 아직도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에 적응이 잘 안된다고 합니다. 하루에 밥을 세 끼니 꼬박꼬박 먹는 것도 적응이 잘 안된다고 합니다. 지난 3월달에 드디어 자활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상담을 받고 일자리가 배치되면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최저 생활비로 매달 50만 원 정도가 지원된다고 합니다. 민석(가명)씨가 행정복지센터에 기초생활수급 신청한지 3개월이 되는 날 석달치 기초생활수급비 154만원이 민석씨의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자활대상자의 구직상담이 중단되었습니다. 아직 언제 다시 재개될지 모릅니다만 매달 수급비가 50만원 정도 차곡차곡 통장에 입금되고 있습니다. 이제 민석씨는 노숙에서 벗어났습니다. 얼굴도 편안해졌습니다. 이제는 LH공사에서 제공하는 장기 임대주택만 배정받으면 좋겠습니다. 삼백만원 정도의 보증금만 마련하면 참 좋겠습니다. 현재는 민들레국수집에서 도시락 싸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