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님의 댓글을 읽다가 칼라 챠트를 만들어 쓰신다는 글을 보고 소재를 하나 얻었습니다.
이글에서는 색의 표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테리어 업자가 어떤 건물의 벽칠을 수주했다고 가정해 보죠.
색채 감각이 특별하지 않은 대부분의 일반인 처럼 건물주는 벽채의
색깔을 이렇게 주문할겁니다.
벽은 '약간 진한 회색'으로 창틀은 '하늘색'으로 칠해 주세요.
이럴때 인테리어 업자는 팬톤사의 칼라 챠트북을 건물주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컬러 챠트북을 본 건물주가 지정한 PANTONE Cool Grey 8U인 회색과, PANTONE 3125U인 하늘색을
페인트 공장에 주문한 인테리어 업자는 주문한 물건들이 올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겁니다.
이렇게 표준화된 칼라작업은 일의 능률도 향상 시키고 사후 법적인 소송도 불러 일으키지 않으며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도 부여하는 합리적인 일입니다.
알콜로 손상된 간의 변화과정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의사들은 손상된 간의 상태를 간단히 알아보기 위한 방법중의 하나로
역시 칼라 챠트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수백가지의 칼라챠트를 간의 색과 비교해 보면서 현재 간의 건강상태를
즉시 알아 볼수 있는 것이죠.(특히 간의 지방함유 상태 파악에 결정적으로 이용됩니다)
이렇게 색의 표준화는 상업적 용도외에도 귀중한 생명을 유지하는데도 사용됩니다.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RA (23 April 1775[1] – 19 December 1851)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painted 1839.
영국의 위대한 화가 터너의 "선박 해체장으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호"라는 작품입니다.
테메레르 호는 넬슨 제독의 기함 빅토리아호와 함께 프랑스-에스파니아 연합 함대를 격파
하는데 큰활약을 한 전함입니다. 30년 이상 전장에서 활약하다가 노후되어 결국 선박 해체장
으로 예인되는 모습을 터너는 강렬한 노을이 지는 변화많은 하늘을 배경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터너는 여러가지 새로운 재료(안료)를 사용하는데 주저 하지 않아서 그의 작품에 여러가지 새로운
물감들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중에는 검증되지 않은 재료들도 있었을 뿐 아니라 불행히도 터너는
화학자들이 대단히 안정적인 물감 재료(아닐린: 추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가 나오기 8년전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위의 전함 테메레르호는 터너가 특히 애정을 지녔던 작품인데 터너는 이그림을 "마이 달링"이라고 불렀을 정도 입니다.
그의 그림이 진열된지 3년이 지난 어느날 어느 미술관 큐레이터는 다음과 같은 메모를 끄적입니다.
"증기선을 칠한 암갈색이 약간 갈라져 있다, 석양 주위에도 색이 변해 있다."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으로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터너가 석양에 물들은 주홍빛 그림을 그릴때 사용했던 요오드 스칼렛이 바로 변색의 주범이었던 겁니다.
위의 색상표에 간단히 나와있는 레드계열의 색상표만 있었다면 그리고 그가 칠한 색상번호만 일수 있었다면
현대의 복원 기술자들은 터너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완성한후 마이 달링~을 외치며 황홀해 했던 그림의
감동을 온전하게 느낄수 있었을 것입니다.
(위의 색상표는 대표적인 붉은계열 색만 나타낸것이고 다시 각 색상 별로 수십가지의 색으로 세분화 됩니다)
'색의 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로렌스 허버트 Lawrence Herbert는
뉴저지 턴파이크에 있는 팬톤사의 창업자 입니다.
그는 1956년 부실한 인쇄업체를 인수해서 6년간 운영하다가 색의 표준 체계를 정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지에 있는 사람이 전화통화 한번으로 자기가 원하는 정확한 색상의 물감을 주문해서 받아보게 하기위해
이작업을 시작 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초창기에 검정과 흰색을 포함한 15가지의 기본색으로 부터 이작업을 출발했습니다.
다음에는 한가지 색상에서 천가지의 표준색을 구분해 내고 그후 더 체계적이고 정교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러한 표준색들을 과학적으로 분류한 색표집을 만들어 내게 된겁니다.
이러한 표준화작업은 물감과 인쇄용 잉크색의 표준화작업부터 시작해서 점점 영역을 확재해 나가면서
현재는 섬유, 플라스틱, 유리등 수많은 분야의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팬튼의 표준화 작업은 베네치아 대성당의 모자이크 타일색을 혁신적으로 바꾸었고
여러나라의 국기에 사용되는 색을 공식화 하기도 하며 준보석의 색상과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위에서 말한것 처럼 의학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로렌스 허버트는 그의 색상표에 더이상 색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색은 고유의 번호로 호칭 됩니다.
디지털 시대에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이해 되는바가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색들이 가지고 있는 색의 기원이되는 전통적인 이름들이 없어 진다는것은 서운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좋아하는 가을 하늘색을 하늘색이라고 하지않고 블루 7491번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너무 삭막해 보이지 않을까요?
팬톤의 색상표는 한국에서도 규모가 있는 화방에 가면 볼수 있습니다.
물론 구매할수 있구요.
전통적으로 감각을 중요시 하는 그리고 스스로 자유롭게 자신의
색을 만들어 사용할수 있는 회화분야에서는 자주 이용하지 않지만 상업 디자인이나 패션, 인쇄업계 쪽에서는
그 의존도가 아주 높습니다.
팬톤사는 매해 올해의 색상을 발표 합니다.
살펴보니 지난 2009년의 색은 노랑색 계열인 Mimosa였군요.
2007년은 우리나라의 붉은 고추색인 Chilli Pepper색이었구요.
선정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팬톤은 이제 단순히 색상표를 만들어 내는
인쇄업체가 아닙니다. 새로은 색을 만들어 내고 색을 주도하는 문화적 구심체의 역할도 담당하는듯 합니다.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으로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볼수있는 여러가지 색의 향연들.
샤갈의 진한 보르도 레드와인같은 붉은색 과 러시아의 푸른밤을 연상 시키는 청녹색.
모딜리아니의 우울한 청회색 과 부드러운 여인의 살색
클림트의 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옐로우 와 농염한 피부색
박수근의 고향같은 따스하고 어머니 같은 회색
이중섭의 불타는듯한 노을의 붉은색
전혁림의 파랑 통영바다 같은 파랑색
이러한 색들을 숫자로 부르기는 싫지만
나중에 영구한 색의 보존과 오랜 세월이 지난후 발생할 그림의 변색이나 훼손등에 대비하여
색의 연구와 체계적인 관리는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