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간부 간호사들의 월급 담보로 대한민국 주식회사 출발-
-순수로 무장한 40,000여명의 회원들이 워너비를 위너비로 -
지금은 시총 기준 조 단위의 기업들이 대한민국에 즐비하지만 50년전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어느나라도 차관을 빌려줄 수 없는 저 신용국가였다.
대한민국이 하나의 주식회사가 되어 최초의 투자유치를 할 때 그 선두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관객 1500만 명을 돌파했다. 미국에서도 이미 상영이 시작되어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이렇듯 세계적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구성된 드라마로서 그 스토리의 주안점이 한 국가의 발전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 또한 현재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한 후 국정 전반을 검토한 결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시작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외환 보유라는 장벽에 부딪친다.
우리도 한 때는 기아국이었다!
박정희는 생각이 달랐다. 국가와 민족의 존망이 자본의 확보였다. 실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독일에서 온 초청을 계산했다.
정래혁 상공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차관단)까지 구성하고서는 또 한 번 벽에 부딪친 것이 한국에는 독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당시 국제사회에서 본 우리의 현주소였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으면 의사가 전달될 수 없다. 그것도 개인과 개인 간이 아니라 정부와 정부 간에 돈을 빌리는 차관이라는 큰 문제를 갖고 협상을 하여야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정부는 독일 대사관에 긴급훈령을 내려 현지 교포 중에라도 찾아보라 하였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하였다.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등장한 인물이 ‘백영훈 박사’였다.
백영훈 박사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 시험에 합격하여 독일 뉘른베르크대학에서 26세에 한국인 최초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영재였다.
그는 귀국 후 중앙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 병역미필이라 하여 영장을 받고 논산훈련소에서 훈련 중이었다.
정부는 그에게 특별조치를 취하여 상공부에 파견 근무를 명하였고, 이어 상공부장관 특별보좌관으로 1962년 10월 20일, 경제사절단(차관단) 과 함께 출발하게 된다.
그러나 현지사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제일 큰 난관은 차관에서 제3국의 보증이 필요한데, 당시 한국을 위해 보증서 줄 국가는 이 지구상에 한 나라도 없었다. 결국 돌아와야 했다.
그때 백 박사는 모교의 은사였던 포크트 교수가 ‘본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간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였다.
전후사정을 들은 은사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포기를 종용하였으나 백 박사는 매일 아침 찾아가서 사모님을 치마를 붙잡고. 매달렸다.
백 박사의 끈기에 손을 든 은사는 많은 인맥을 동원하여 교섭한 결과 당시 장관이었던 에르하르트 경제상을 공식적으로 만나게 주선하였다.
이날 미팅에서 유창한 독일어, 뉘른베르크대학 출신의 박사가 시작한 브리핑은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목말라하던 차관의 성공이 시작된 순간이다.
초기에 도운 그들이 역사를 이룬다
경제학 박사 1호로서, 독일에서 유학했다는 이유로 대표단이 되어 떠났지만 차관을 얻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매일 밤잠을 설치며 연구하고 눈물로 호소한 끝에 3천만 달러의 차관을 받기로 했지만, 이를 보증해 줄 은행이 없어 또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5,000명의 광부와 2,000명의 간호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극적인 돌파구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워너비를 돕자. 그가 우리를 도울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 덕분에 오늘의 풍요로움이 있었다.
지금 워너비는 다시 우리에게 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꿈을 워너비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수년간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의 담보처럼 기꺼이 마중물이요 씨드머니가 되어 주었던 회원들 덕분이었다.
독일파견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고향에 송금할 피같은 돈을 담보해 주지 않았다면 5000배의 결실을 이룬 오늘의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워너비의 위대한 실험
워너비 그룹은 신개념 무료프랫폼 사업을 중심으로 소비자 친화적 자영업 소상공인 친화적 프랫폼을 개발하였다. 초기 구축단계를 거쳐 이제 곧 런칭에 들어간다.
무료 동영상 유튜버, 무료 배달의 민족, 중고매매, 당근마켓 등에 무료 이벤트 행사를 하는 플랫폼을 개발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상공인들이 아이들을 도와주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사업시작단계부터 캥거루 재단을 만들어 이를 통해 그룹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용인의 에버랜드가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듯이 말이다.
엔젤들의 투자를 받아 또 투자지주회사로 커가는 워너비 그룹
그간 기업에 300억을 투자하면서 집행과정에서 오는 스릴이 있었다고 한다. 마블 영화의 그래픽 담당회사의 지분 51%를 확보했다. 또 아이언플리거 회사에 170억을 투자했다. 캥거루 온천랜드 글램핑 수영장 돔하우스도 7월 말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향후 모든 개발을 마치게 되면 동학사 주변은 이제 중부권 최고의 글램핑 온천랜드가 될 것이다.
메타버스 기업인 바스(baas)도 기술이전을 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블록체인 엔진에 투자한 것이다.
객관화 교육시스템을 학교에 임대해 주고, 주민들의 아파트 관리비도 투명하게 관리해준다. 국방부의 해킹방지 블로그와 공장 스마트팜 블로그, 요소수, 금융 시스템, 비트코인, 블록체인 등을 통한 모든 수입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목표다.
2월9일에는 대전 유성구 워너비그룹 본사에서 ㈜디자인셀(대표 김윤배)과 엑소좀 임상시험 300억 원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워너비그룹은 줄기세포를 활용한 난치병 세포치료제 개발 업체인 디자인셀의 엑소좀 임상시험에 300억 원을 투자 선언을 한 것이다.
얼마전에는 필리핀에서 사업 설명을 했고 곧 베트남에 가서도 계약을 할 예정이다.
워너비그룹은 공익법인 수익의 50%는 무조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할 예정으로 지금도 매일 같이 강행군을 하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믿음의 끝은 반드시 창대하리란 성구처럼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초대 회장 박정희는 우리에게 결국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 이제 워너비 그룹 전영철 회장에게 위기의 한국호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