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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추구할 삶의 태도4:8~9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상반된 환경에 적응하는 비결 4:10~13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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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자신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한편 빌립보 성도들에게 바울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시 싹이 남으로 인해 그가 기뻐합니다. 어떤 형편에 처하든 자족하는 비결을 배운 바울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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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QT
경건을 추구하며 자족하는 삶 [빌립보서 4:8~13]
오늘의 말씀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본문 해설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에 자신을 도울 마음이 다시 일어난 것을 크게 기뻐하는 바울의 모습에서 섬김이 끊겼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말합니다. 곧 성도들의 섬김이 끊긴 계기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그 결과 풍부와 궁핍이라는 상반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곧 하나님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오늘의 기도
능력 주시는 하나님! 풍족할 때도 부족할 때도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게 하소서.
이미 많은 것을 받았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아직 갖지 못한 것에 주목하며 불평했던 입술을 용서 하소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만으로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을 갖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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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0-13절
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의 후원금에 감사하고 기뻐하면서도, 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바울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인해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바울은 전에 자랑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내다버렸습니다. 거기에는 부와 안락한 삶도 포함됩니다. 대신에 그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셨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노숙을 하며 나그네처럼 살아도 마음은 늘 하나님의 평화로 가득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내가 사는 그 어디나 다 하늘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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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마음가짐(4:8~9)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성도는 명예롭고 덕이 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평강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두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 거룩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곧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의롭고 정결하고 사랑받고 칭찬받을 만한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그의 성품과 인생이 결정됩니다.
둘째, 거룩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서 배우고 듣고 본 것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성도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본을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갈 때,
교회 공동체와 우리 삶에 하나님의 평강이 깃들게 됩니다. 평강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빌립보 성도가 바울에게서 배우고 듣고 본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생각과 행동은 무엇인가요?
성도의 생활 태도(4:10~13)
성령 충만한 성도는 어떤 처지에 있어도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며 크게 기뻐합니다.
그들이 감옥에 있는 바울을 돕고자 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이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 왔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물질적 도움을 언급한 것은 궁핍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떤 형편에서든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비천해져도 낙심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부할 때도 자만하지 않습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환경에서도 올바로 처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십자가를 감당하신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힘 주시는 주님 안에 있기만 하면
어떤 형편에 처해도 자족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문맥을 볼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라는 말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가난할 때와 부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의 모습은 각각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의 기도
삶의 탁월성은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서 나옴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 내며 모든 상황에 감사하고 자족할 때,
주님과 동행하는 참된 성도의 모습에 세상이 놀라고 감동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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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4장 8-9절
8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통제 아래 두어 그의 다스림을 받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자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여적 예배니라” 성도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자입니다. 거짓된 것을 버리고 참된 것을 생각하는 자입니다.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사모하며 바라보는 자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존재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시는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복을 누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0-14절
10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사도 바울이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빌립보 교회의 헌금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경이나 조건에 상관 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족한다고 고백합니다. 자족한다는 것은 처해진 환경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생각을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중하며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성도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자들입니다. 배운다는 표현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처음부터 항상 자족한 삶을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장성한 모습으로 성장하면서 하나님 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성령하나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채우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족하는 삶은 얼마나 많이 내려 놓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느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능치 못하는 일이 있습니까?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족한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옮기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며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경험하며 모든 일에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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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주 안에서 매우 기뻐합니다. 빌립보 생각하는 마음이 이제 다시 싹튼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항상 바울 사도를 돕기 위한 헌금을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에게 선한 마음을 주시고, 섬김을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신 것에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빌 4:10).
바울 사도는 자신의 궁핍함에 대해 불평하려고 빌립보 교회에 편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달으면서, 비천하게 살 수도 있고, 풍족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능력을 주시는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 사도는 어떤 처지에서든 모두 살아갈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빌립보 교회가 바울 사도의 고난에 동참한 것, 곧 바울이 핍박을 받으며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헌금을 보내준 일은 잘 한 일이라고 칭찬합니다. 바울 사도는 경제적 후원을 받으면서 사람들을 가르쳤던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들과 구분되도록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천막을 만드는 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메시지>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가 핍박과 가난 속에서도 헌금을 보내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한 것을 기뻐합니다. 바울 사도는 의도적으로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선교 방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며, 궁핍한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단지 돈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요, 더 많은 후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를 알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를 섬기는 빌립보 교회의 모습을 기뻐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키시고 자신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나의 하나님’을 신뢰하듯, 빌립보 교회를 칭찬하시고 그들의 필요도 채우실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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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3 능력의 비결을 배우십시오
주옥같은 말씀들이 몇번이고 말씀을 읽게한다.
사실 바울의 상황을 생각하면 언제 처형을 받을 지도 모르는
감옥에 갖힌 상황에서 기뻐하라고 하시는 것 만도 놀라운데
몇 가지 놀라운 교훈을 주신다.
먼저는 생각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있다.
무엇에 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8)
사랑할 만하며,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8)
이것들을 생각하라 하신다.
두번째 행하라고 하시는 것이 있다.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하신다.(9) 아멘.
나를 본 받으라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던 바울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하신다.
세번째 배우라고 하시는 말씀이 있다.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함을 배우라 하신다.(11)
바울이 배운 자족함은 어떤 것인가?
비천할 때, 풍부할 때, 배부를 때, 배고플 때, 궁핍할 때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한다.(12)
이것이 어떻해서 가능한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13)
주님 그렇습니다.
자족하는 첫 걸음은
모든 형편을 주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믿음이요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내 인생도 주관하시며 다스리시고 계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이요.
내가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분 또한 내 안에 계심을 확신하는 믿음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 .
환경의 지배를 초월한 자족을 배우길 원합니다.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는 비결을 배우길 원합니다.
그 일체의 비결이 내 삶 가운데 있는
내 삶을 통하여 나타나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임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능력을 받고 일체의 비결을 배운 것 처럼
나도 예수 그리스도 당신을 통하여 능력과 비결을 배우길 원합니다.
당신 안에 능력이 있음을 찬양합니다.
내 안에 그 능력을 주셨음에 찬양합니다.
아버지
말씀을 통하여
생각하라고 하신것,
행하라고 하신 것,
배우라고 하신 것,
말씀대로 하길 원합니다.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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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에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을 보냄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그를 전심으로 도왔던 그 일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다한 그들의 실천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잠시 중단되었던 그들의 자원함이 다시 싹이 트고 사도바울이 처했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 가운데 풍성함을 주었습니다.
이미 사도 바울은 자신의 궁핍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이미 자족하며 모든 상황을 이겨 내는 일체의 비결을 깨달았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인들이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따라 죽음 가운데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분의 능력 가운데 전심으로 내어드리는 헌신이 사도바울에게 허락하신 온전한 기쁨을 그들도 함께 소유하고 평강의 길로 인도받는 축복의 마중물이 될 것임을 확신하기에 감사함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