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입니다 양해바랍니다
지난 번 상원계혜를 말씀드리며 환웅 단군의 曆이라 글을 올렸습니다.
요약하면, 4갑자(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는 과학적으로 있을 수없다.
그러므로 단군때 상원계혜로 계산하면 올해가 병오년이고 작년이 을사년입니다.
그런데 상원갑자를 쓴 중국에 천명이 내려졌기 때문데 이를 따라야 합니다.
이를 미리 아시고 4방에 단군시대 문자로 비석을 세기라 명하셨는데 그분이 12세 단군
아한-52년제위-입니다===>아래 단기고사 아한단군편을 올림
◐ 第一篇(제1편) 前檀君朝鮮(전단군조선)
第12世 阿漢(아한) 檀帝(단제=檀君): 52년간 재위
* 첫 해에 맏아들 屹達(흘달)을 태자로 삼고 둘째 아들을 安平王(안평왕)으로 삼았다
* 2년 여름에 발이 하나인 짐승[一足獸(일족수)]이 松花江(송화강)가에 와서 놀며 슬피
울었는데 임금께서 有爲子(유위자)에게 묻기를 이것은 알지 못하는 짐승인데 발 하나로
뛰어다니며 슬피 우는구나 하시니
유위자가 대답하기를
나라가 장차 흥하려면 반드시 좋은 징조가 있고 망하려면 반드시 요사스러운 일이 생겨서
神物(신물)이 나타나 여러 사태를 일으키고 화와 복이 장차 이르게 되면 착한 것도 알게
되며 착하지 못한 것도 알게 될 것이니 이것은 천지조화의 징조입니다
이 짐승은 하나라 남쪽의 陽獸(양수)인데 神明(신명)한 동물입니다
하나라가 장차 어지러울 것을 미리 알고 그 난을 피하여 이 곳에 와서 슬피 울고 있습니다
다만 이 짐승만 보아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천도의 운행을 살피면 만세의 일도 능히 미리 알 수가 있습니다 하니
임금께서 하나라를 대신하여 天子(천자)될 사람이 누구냐 하였다
유위자가 대답하길
신이 하나라의 인물을 살피니 하나라에는 그런 인물이 없고 다음가는 사람으로는
天乙(천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진 보좌관 伊尹(이윤)을 얻어 덕행을 길러
그 이름이 세상에 높아졌으니 하나라를 쳐서 천자가 된다면
그 자손이 600여년은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그 다음은 누구냐 하시니
유위자 아뢰기를
西夷(서이)에 聖人(성인)이 나서 덕을 닦고 은혜를 베풀면 민심이 다시 돌아와
그 어진 분의 보필이 생기게 될 것이니
그 자손이 왕위를 계승한다면 800여년은 이어갈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내 후손의 盛衰(성쇠)시기는 과연 어느 때인지 그 대략을 묻노라 하시니
유위자 대답하기를
國家盛衰(국가성쇠)의 운수는 하늘이 정하게 되어있는 것이므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백성을 선하게 다스리시어 덕이 만방에 넘치니
나라의 문명 정도가 하나라를 훨씬 초월합니다
그러나 하나라는 다음 조에 이르러서는 禮樂法度(예악법도)가 찬연히 구비될 것이며
聖賢(성현)이 배출되어 經典(경전)을 저술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 여러 학자들이 각각 그 理想(이상)을 말하리니
문화의 향상이 전무후무하여 천하를 휩쓸 것이므로
만국이 그 문화를 仰慕(앙모)하여 다투어 그 나라에 와서 배우고 익혀
학문의 전성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폐하의 聖子神孫(성자신손)이 혹 북방에서 터를 보전하며 혹 동방으로 도읍을
옮기며 혹 남방에서 건국하는 자가 있겠으나
큰 자는 땅이 수 천리 될 것이며 작은 자는 수 백리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후손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여 상대를 침략하는 전쟁만 일삼고
문화는 점점 퇴보하여 祖國文字(조국문자)는 돌보지 않고
남을 흠모하는 사상이 날로 높아져 수천년 후에는 그 나라 문물을 사모하여
이에 미친 사람이 나라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문자는 다 없애고 그들의 문자만 專用(전용)할 것이며
그 문자로 우리나라 國名(국명)과 王號(왕호)와 官名(관명)과 地名(지명)과 모든 물건의
이름을 번역할 것이며 이름까지 그들의 이름과 같아
우리를 그 나라 사람으로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손들이 그 先祖(선조)를 잃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장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심히 원통한 일입니다
엎드려 비옵기는
오직 폐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고 염려하시어 뒷일을 미리 준비 하시옵소서 하였다
임금께서 선생은 참으로 천고의 神人(신인)이로다
능히 반만년 후의 일을 추측 하도다 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려 비석을 나라의 사방 경계에 세우고
그 碑面(비면)에 우리나라문자로 帝王(제왕)의 이름을 새겨
영원히 國文(국문)을 보전하라 하셨다
「 九月山(구월산) 馬韓村(마한촌)에 옛 글자로 된 비석이 하나 있어
梵文(범문)과 비슷한데 후세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村名稱馬韓(촌명칭마한): 마을 이름은 마한이라 하는데
別有殊常石(별유수상석): 특별히 구별되는 범상한 돌이 있네
臺荒躑躅紅(대황척촉홍): 누각은 황폐하고 철쭉은 붉게 피었는데
字沒苺苔碧(자몰매태벽): 글자는 파묻히고 산딸기와 이끼만 푸르구나
生於剖判初(생어부판초): 천지가 처음 열릴 때 만들어서
立了興亡夕(입요흥망석): 나라가 흥하고 망하고 기우는 것을 세우기를 다 하였네
文獻俱無徵(문헌구무징): 문헌으로 다 고증할 수는 없으나
徜非奇氏跡(상비기씨적): 이것이 기씨의 즉 기자조선의 발자취가 아니겠는가
[상자가 없어서 같은 글자인 徜(상)자를 씀]
長白山(장백산) 安興嶺(안흥령)에도 비석이 있다 」
* 5년 봄에 조서를 내려 어질고 착하며 곧고 바르며 윗사람에게 끝까지 바른 말을 서슴치
않는 선비를 등용하였다
* 10년에 開基波(개기파)를 首相(수상)으로 삼고 馬干得(마간득)을 上將(상장)으로 삼았으며
弘景(홍경)을 諫官(간관)으로 삼았다
* 11년에 임금께서 더욱 국정을 밝게 살피실 대에 朝會(조회)를 마치시고
諫官(간관) 弘景(홍경)에게 물으시기를
나는 어떤 임금인가 하시니
홍경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질지 못한 임금입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무슨 일로 내가 어질지 못한가 하시니
홍경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친아우를 봉하지 않으시고 맏아들을 봉하셨으니 어찌 어진 임금이 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께서 기뻐하지 않다가 홍경이 나가고 有爲子(유위자)가 들어왔는데
임금께서 또 묻기를 나는 어떤 임금인가 하시니
유위자가 대답하기를
어진 임금입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무엇으로 나를 어질다 하는가 하시니
유위자 대답하기를
제가 묻사오니 임금이 어질면 신하도 바르다 하였는데
아까 홍경의 말이 바르니
이것으로 아나이다 하였다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어 홍경을 불러 諫議大夫(간의대부)로 삼았다
이때부터 바른 말을 서슴치 않는 선비가 많이 나왔다
* 22년 龍加(용가) 來良(래양)을 보내어 夏(하)나라 桀(걸)을 도와 商 湯(상 탕)을 치다가
湯(탕)이 사죄하니 來良(래양)이 회군할 때에 厭夷(염이) 때문에 關中鄕西岐周(관중향서기주)
에 살았다
* 29년에 처음으로 菁莪大夫(청아대부) 韓不倍(한불배)와 沃沮大夫(옥저대부) 高士深(고사심)
과 貊大夫(맥대부) 申突盖(신돌개)에게 명하여 제후로 삼아 토지를 주니
이것이 馬韓[마한: 莫(막)]과 辰韓[진한: 眞(진)]과 弁韓[변한: 番(번)]이 되었다
* 30년에 유위자를 國太師(국태사)로 삼았다 太學館(태학관)을 세워 어진 선비를 양성하였다
* 36년에 사람이 중화로부터 들어와 夏(하)나라 임금이 무도하여 스스로 망할 것을 전하니
임금께서 하나라가 망할 것을 나도 이미 알았노라 하셨는데 몇 해 못가서 과연 商湯(상탕)
에게 망하였다
* 38년에 임금께서 夏(하)나라 桀(걸)이 포악하고 무도하여 스스로 멸망하는 것을 보시고
더욱 근면하여 국정을 바로 살피시며 백성을 사랑하니 나라 안이 잘 다스려져
하나라 신하와 백성으로 商(상)나라 조정의 신하되기를 마다하는 자들이 많이 몰려왔다
임금께서 불상히 여겨 후하게 사랑하였다
伊尹(이윤)은 일찍이 有爲子(유위자)에게 배워 재주와 덕을 함께 갖춘 사람이다
이 사람이 商(상)나라 湯(탕)의 재상이 되어 湯(탕)을 도와 桀(걸)을 치니
유위자가 듣고 이것도 사람을 사랑하고 하늘을 따르는 일이니
伊尹(이윤)이 아니면 할 수 없다 하였다
* 52년에 商(상)나라 사절이 처음으로 입조했다
7월에 임금께서 승하하시니 모든 백성이 부모의 상을 당한 것 같이 울었다
태자 屹達(흘달)이 보위에 오르니 제13세 檀帝(단제)시다
[檀君世紀(단군세기)에 戊寅五十二年 帝崩(무인52년 제붕=BC 1783년) 牛加 屹達立(우가 흘달립)]
◐ 有爲子(유위자): 그는 妙香山(묘향산)에 은둔하면서 紫府先生(자부선생)의 학문을 닦았다
유위자는 천문지리와 인도 등 모두를 달통한 단군조선 2천년 사이에 보기
드문 대학자이다
제11세 檀帝(단제) 때 太子太傅(태자태부)가 되었으며
제12세 阿漢(아한) 檀帝(단제) 때에 國太師(국태사)가 되었다
◐ 祖國文字(조국문자): 우리의 옛 글을 말함
한글의 전신 제3세 嘉勒(가륵) 단제님께서 乙普勒(을보륵)박사에게
명하여 正音(정음) 38자를 만들었다
이 문자는 동북아시아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어 왔다
天符經(천부경) 三一神誥(삼일신고) 參佺戒經(참전계경)도 원래는
이 글로 전해졌다
◐ 厭夷(염이): 九夷(구이)의 한 족속
=> 이때가 하나라에서 은나라로 바뀌는 때입니다.
중국에는 물이 귀합니다. 요순때 농사를 짓고 살아가려면 물이 필요한데 비내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아주 큰 홍수가 나서 이를 치수할 사람을 우임금에 맡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을 다루어 본적이
없으므로 우임금은 단군 부루태자에게 배워 치수에 성공하였습니다. 여기서 요순우(하나라)때까지는 단군조선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즉 상원계해를 썼을 거라 추측됩니다. 12세 단군 아한은 천명이 중국에 넘어 갈 것을 미리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방에 국문으로 세긴 비석을 세우라 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묘향산 천부경 석벽본이 아닌가 합니다.
가림토(원조 한글)문자를 쓰다가 한자를 썼는데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입니다. 묘향산 석벽본의 문자는 ?일까?
은나라때 처음 한자가 쓰였고 甲骨文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자 문자가 보급사용되며 이후 문왕은 죽간에
주역을 세겨 후대에 남기셨고 易은 曆이라 했듯이 상원갑자로 자리매김 즉 하늘이 聖人을 통해 천명을 내리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래는 천부경 묘향산 석벽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