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여수 여행 날짜를 잡아놓고 나니 그렇게 빠르던 하루 하루가 여삼추다.
10월 말 끝나는 '순천만 국제 정원 박람회'도 함께 들르자는 취지에 따라
단풍이 고울 때 떠나는 가을 여행을 10월 11일로 앞당겼다.
‘인선생’ , ‘검색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서울 친구가 팔이 아파 캐리어를 끌 수가 없어서
차표를 끊어놓고도 못 온단다. 벌써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이번에 나에게 베푼 뜨거운 우정으로 감동을 준 친구인데 못 온다니 너무 서운하다.
교통편으로 보면 단양이 오지다.
제천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오송역에 도착했다.
1시간을 기다려서 친구들이 타고 있는 KTX산천호로 환승, 서울에서 오는 친구들과 합류했다.
여수에 도착해서 우리의 여행을 자가용으로 책임질 김천 사는 친구와 만났다.
지난 4월과 6월에 이어 올해 세번째 만나는 여행이다.
만나면 조건없이 반갑고, 살맛나는 행복한 친구들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맛집을 찾아가니 점심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임에도 사람이 많다.
주차할 공간도 마땅치가 않다.
숙소 가까운 식당 찾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겨우 겨우 찾은 곳이 갈치조림과 갈치구이 집이다.
아침도 못먹고 새벽에 출발해 배가 고프다는 우리끼리 말에 식당 주인은
음식을 넉넉하게 챙겨주고 시루떡까지 서비스한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3시, 숙소 체크인 시간이다.
이번에는 콘도가 아닌 여수 소노캄 호텔이다.
콘도와는 다른 아주 특이한 건축양식이 고급 호텔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오동도와 오션뷰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21층 객실을 배정 받았다.
오동도와 해상 케이블카 등 여러 볼거리들을 도보로 갈 수 있는 편리한 위치다.
여장을 풀고 오동도가 보이는 바다 길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수십 년 전 와서 봤던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여수는 죽은 관광지였는데 가수 장범준이 <여수밤바다>를 부르고 나서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고 한다.
오동도는 겨울에 와야 제 맛이다.
딸들이 어릴 때 함께 여행 온 적이 있다. 눈발이 날리는 겨울 동백섬에 핀 빨간 동백꽃이
그 어디에도서도 볼 수 없는 환상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신비롭기까지 했다.
당시 딸들과 바다를 가르는 쾌속정을 타는데, 그 스피드의 스릴과 함께 물에 빠질 것 같아
무서웠던 추억이 떠오른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바다를 낀 산책로를 걷고 조각공원에 있는 이순신장군의 거북선도 둘러봤다.
우리는 노래하는 아름다운 무지개 빛 분수대 앞에서 한참을 멍 때리고 서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관람열차도, 모터보트도 탈 수가 없었다. 곱게 노을이 물들더니 잠시후
네온사인이 하나 둘 들어온다.
여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핫 플레이스 낭만포차. 도보로 가능한 거리지만 밤길이라 택시를 탔다.
네온사인이 번쩍번쩍 화려하게 빛났고, 여러 군상들로 북적이는 야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의 머리 위로 여수의 밤바다 야경을 보기 위한 해상 케이블카의 행렬이 이채롭다.
계절 음식에 다양한 음식도 많았지만 이곳의 대표 메뉴는 돌문어 삼합이다.
잘 하는 집이 어딘가 몇바퀴 돌면서 분위기를 파악하고 맛으로 승부하는 집을 찾아서 자리를 잡았다.
낭만포차의 돌문어 삼합에 거한 식사는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홍콩의 야경이 무색 할 판이다.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밤바다를 구경하면 여수를 다 본 거라고 하던데
굳이 돈 들여가면서 케이블카를 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21층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이렇게 충분히 황홀하고 아름다우니 말이다.
친구들 만나면 괜히 신바람나고 살맛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릴적 친구들과의 추억 얘기로 밤이 깊도록 하하 호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둘째 날!
호텔이 수중에 떠있다고 착각할 만큼 삼면이 바다라 붉게 올라오는 일출은
감탄사를 연발 할 만큼 장관이었다.
오션뷰도 좋고 손에 물 한방울 안묻히고 밥도 사먹는 호사스런 여행이지만
어딘지모르게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한 구석도 있다.
일일이 밥을 사 먹는 것도, 맛집 찾는 게 힘들어, 어쩌면 해 먹는 것 만큼 귀찮다.
빵과 우유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의 여행지를 선택해서 호텔을 나섰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여행가면 명소 10선 중 6~7곳은 봤는데
이번에는 여수의 대표적인 명소 두서너 곳만 보고 더는 욕심을 안내기로 했다.
향일암은 나이든 우리 기준으로 볼때 걷기엔 좀 힘든 코스다.
친구들이 여수의 유명한 돌산 갓김치를 주문하는 바람에 사장님이
향일암 절반 이상을 차로 데려다줬다. 우리는 지옥계단이라고 칭하는
어마어마한 계단을 피해 흙길로 갈수 있었다.
오르막 울창한 숲길은 피톤치드가 쏟아져 자연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요즘 수명이 하도 길어져서 유엔에서 66~79세까지를 중년이라고 정해도
오르막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정부에서 한 살 줄여주고
유엔에서 중년이라고 인정해주어도 나이는 못 속인다.
가는 곳마다 엉덩이 붙일 의자만 찾는 것만 봐도 중년이 아닌 틀림없는 노인이다.
향일암은 신라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란 절로 창건했고 이후 여러 번 개칭하여 향일암이 되었단다.
암자 주위에 큼지막한 바위 두개 사이로 난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해탈문은 한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데 그 바위틈을 지나니 대웅보전이다.
관음전 옆에 해수관음 입상이 전국 4대 관음 기도처 중 한곳이다.
암자에서 올려다본 기암괴석의 위용은 경건한 마음을 들게한다.
암자 바로 아래 평평한 바위인 원효대사 좌선대에 앉아서 소원을 빌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향일암에서 내려다본 탁트인 에메랄드 빛 바다는 마음속 찌꺼기까지 다 쏟아내는듯 시원하다.
미로처럼 연결된 비밀스런 바위들 틈으로 빠져나오는 묘미도 대단하다.
내려오는데 가마솥에 칡을 달이는 향이 진하다. 점심 먹을 시간인데
카페에 들어가서 칡차 한잔으로 피로를 달랜다.
점심은 게장 정식을 먹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꽃게장이지만,
칡차 때문에 입맛이 평소 같지 않았다. 시장이 최고의 반찬인데 말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