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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유튜브로 명상지도하는
혜안스님
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
태국 왓바나나차 사원
혜안스님
혜안스님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통도사 청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한국과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그리고 호주의 보디댜나와 사원에서 정진하였다. 현재 한국의 보디야마 선원에서 정진중이다.
기자: 미주 현대 불교 기자입니다.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매우 고맙고 스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스님께서 명상 지도를 하신다구요?
스님: 예.
기자: 한국 스님들께선 거의 한국에서 출가하셔서 간화선 위주이실 텐데 어떤 계기로 명상, 그리고 어떤 명상을 주로 하시는지요?
스님: 원래 저는 일찍부터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생에 관한문제 의식이 별다른 계기 없이 생겨나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이런 저런 걸 찾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불교를 알게 되었어요. 불교 중에서도 저는 불교 수행, 선 수행 관련된 책을 읽게 되면서...
기자: 학교생활의 어려움이라도?
스님: 그냥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모범적으로 학교 생활하는 학생이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문득 마음을 돌이켜보게 되었어요.
기자: 고등학교때 인생에 관심을 그리고 마음! 마음을 돌이켜 보셨다고요?
스님: 네
기자: 대단하십니다.
스님: 갑자기 그냥 내 마음을 돌이키게 되면서 든 생각이 어떤 거냐면 제가 봐도 특이한데 내가 이 생각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생각을 믿을 수가 있나? 내가 기존에 믿고 있던 기존의 도덕이랄까 나름의 삶의 철학 같은 게 있잖아요, 어리지만. 이런 것들도 내가 당연히 따라왔는데 이런 것들을 내가 믿을 수가 있나? 그리고 이런 것은 어디서 왔지?
기자: 고등학교때요?
스님: 네, 고 2 초반이었는데 그 전에는 내면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어느 날 내면을 비춰보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해서 주욱 탐구를 해보니까 내가 그 동안 믿어왔던 신념 체계가 사실은 단순히 여러 가지 사회에 의해 조건 지어지고 형성되어진 것이지 정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 그러면 그 탐구 도구는 무엇이었습니까.
스님: 마음을 돌이켜보는 거죠.
일종의 역관 비슷한 것입니다. 계속 근거를 찾아가는 거죠, 내면으로. 수학자들도 그렇잖아요. 이 근거의 근거의 근거가 뭔가. 이런 식이죠. 일종의 연역적인 방식으로 내면을 찾아들어가다 보니까 너무 이상한 거예요. 내가 믿었던 것들이 다들 확실하지 않은 게 되는 거예요. 하다 못해 나의 어떤 생각이나 감각조차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이런 데까지 막 뻗치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지금은 믿음이 생겼습니까.
스님: 그것은 믿음의 것이 아닌 상황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몸과 마음에서의 경험들임을 확실히 알게는 되었습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평범하게 살던 학생이었는데 갑자기 인생에 폭풍우가 난데없이 몰아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굉장한 갈등에 빠지면서 찾을 수 있는 건 이런 저런 철학책이나 종교의 책을 읽어보고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찾아봐도 이 사람들이 그동안 내가 대단하다고 했던 그런 철학자나 사상가들도 보면 결국 뿌리는 자신의 생각과 도그마, 또는 감각에 의지해서 거기서 자기 철학의 구조물, 사상의 구조물을 세우는 것이더군요. 대단하고 복잡하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도 확실한 걸 근거로 해서 자기 사상이나 철학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다보니 의지할 데가 없어진 거예요.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가 왜 학교를 다녀야 하고 왜 성공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고 왜 내가 도덕을 지켜야 하고 왜 내가 친구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모든 것들에 의문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기자: 어려움을 잘 지내오셨습니다. 그런데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의지할 곳이 필요한 것일까요?
스님: 그 당신엔 의지 할 곳이 필요했고 어찌보면 우리들은 당연이 의지 할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지요. 아, 내가 삶을 이렇게 살면, 도덕율이면 도덕율이고 사회에서 제시된 기준이라면 기준인 것이고 그런 것을 의지 삼고 또 강하게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지하며 나름의 확신을 갖는데 송두리째 흔들린 것이지요.
기자: 스님! 그런 것이 없다면 살기가 어렵습니까?
스님: 그 당신엔 그랬지요.
기자: 지금은 어떻습니까.
스님: 지금은 다르죠. 불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나니까. 이제 관점이 완전히 다르게 되었지요.
기자: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님의 의지처로 되셨습니까?
스님: 그렇지요. 그 당시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확실함이 없다보니 회의적일때가 많았지요. 결국엔 아무 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람의 의식 세계가 완전히 회색빛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항상 밝았는데 갑자기 이런 인식이 생기니까 회색빛이 되어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자주 이런 생각이 들고 있었는데 우연히 불교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불법 교리서도 아니고 소설책이었습니다. 최인호씨의 길없는 길이라고. 그분이 한 때 불교를 공부해서 경허 스님의 수행 일대기와 부처님의 삶과 소설적인 이야기를 같이 녹여서 소설로 썼어요. 그 내용보다 저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이 뭐냐면 그 전에 생각해 본 것은 인생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유의 방법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 사유에 한계가 있잖아요. 사유를 믿지 못하니까. 회의에 빠졌었는데 경허 스님이 수행하는 과정을 보니까 사유가 아니라 사유를 초월한 직관적인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사유의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것인데 만약에 직관적인 수행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을 이룬다면 내가 고민했던 해결되지 않는 의식의 차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 불교가 이런 것이라면 나는 오늘부터 불자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지요. 그 책을 보고 저 스스로 불자가 되었습니다.
기자: 사유 체계에 의존했을 때 그것이 오히려 옳아 맬 수도 그 사유체계가 자유를 억압 할 수도 있는데 무너진 것이 왜 회색빛이고 막힘이라거나 길 잃음이 될까요?
스님: 왜냐면 우리가 살아갈 동력이 필요하잖아요. 이 쪽 길이 맞는 것 같아 하면서 그러면서 나름의 길이 보여야 사람이 그 쪽을 좇아가잖아요. 달려가잖아요. 그런데 더 이상 빛이 안 보이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가는 게 제대로 사는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으니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 저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가 이런 것들이 기준이 다 무너져버리니까요. 적당한 사유체계는 그 사유 조차도 뛰어 넘는 경지로 사는 것이 아닌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사유가 아닌 직관을 통한 깨달음으로는 길이 되겠다 라고 할 때 그 직관은 사유와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하십니까?
스님: 다릅니다. 왜냐면 언어를 떠난, 사고를 떠난 것이거든요.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은 수행에 대해서 모를 때에는 사유를 통해서만 지혜가 생기고 이해가 생긴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책을 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사유와 논리를 벗어난, 초월한 어떤 수행을 통한 직관적인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파악하고서 이것이야 말로 내 길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이다라고 알게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많이 공부해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척보고서 내가 계속 고민했던 게 아! 저것이구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기자: “이것이구나”라고 앎이 생긴 것은 사유로 하셨겠네요.
스님: 그렇지요. 비록 사유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그러한 앎은 사유에만 머물지는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직관적 성찰이셨나요?
스님: 어느정도 직관에 의한 지적 깨달음이라 할까요!
기자: 그러셨군요. 그 오래전에요.
기자: 스님의 수행입문 과정을 말씀해 주신다면..
스님: 제 스스로 불자가 되었고. 절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스님 한분 뵌 적도 없는 제가 대학교에 가서도 불교 동아리를 바로 찾았죠.
기자: 대학교에 불교 동아리가 있었습니까?
스님: 불교 수행하는 동아리를 찾았습니다. 왜냐면 저는 거기에 완전히 꽂혀있었기 때문에. 수행을 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서울대에서 여러 학생들이 함께 출가하신 그 팀이십니까?
스님: 저는 그 스님들의 후배입니다. 서울대에서 찾아보니 불교 동아리가 있어서 거기 들어가서 전통적인 선수행 쪽을 공부하다가 당시에는 출가했습니다. 졸업하고 바로 출가를 했습니다. 수행의 길을 알고서 출가는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습니다.
기자: 선 수행을 하셨겠습니다.
스님: 처음엔 선 수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탐구를 해보니까 원래의 부처님 가르침과 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자: 간화선 수행을 하시는 중에 스스로 터득하셨습니까?
스님: 그렇습니다. 그리고 초기 불교의 번역서를 접하면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니까야 같은 경우 각묵 스님이나 대림스님의 번역을 보면서 초기불교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경전도 읽어보고 연구를 좀 하게 되었죠. 연구를 하면서 기존에 내가 해왔던 선불교, 대승 쪽의 수행 자체가 원래 원음하고는 좀 많이 다르다는 것을 파악했고 초기 불교 쪽 경전을 연구를 하다 보니 수행의 길에서의 가야 할 길을 찾았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기자: 초기불교의 수행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스님: 그 당시에 소개된 전통들이 대부분 미얀마에서 들어온 수행법들이었습니다.
미얀마를 다녀오신 스님들께 여쭈어보니 수행법은 다른데 공통으로 하시는 얘기들은 “아비담마를 공부해야 한다”. 고들 하시기에 아비담마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생겨진 견해는 팔정도를 갖추고 있으면 제대로 된 불교 수행이고 팔정도가 아니면 제대로 된 불교 수행이 아니다 라는 것은 명백한 기준입니다. 그리고 수행법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마하시, 쉐우민, 이런 것들이 처음에 딱 걸렸던 게 수행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순수 위빠사나의 전통이란 말이죠, 거기는. 계정혜 중에 정, 선정이 수행하는 데 필요없다고 얘기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오히려 이게 수행하는 데 해가 된다고.
기자: 그런 가르침에 대한 스님의 의견은 어떠셨어요?
스님: 저는 기준이 팔정도 중의 정정이 사선정이거든요. 초기 경전상에서도 선정에 관한 얘기가 무수히 나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팔정도 중에서 정정이 무엇이냐 초선에서 삼선, 사선이라고 얘기해요. 그래서 그 기준으로 보니까 순수 위빠사나 전통은 기본적으로 계정혜 삼학으로 얘기할 때 정. 바른 선정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해서 저는 그 수행에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파욱 수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자: 파욱 수행은 어떠셨는지요?
스님: 파욱수행은 기본 구도가 맞아요. 이론적으로 보면, 거기는 사선정에 대한 얘기도 있고. 계는 기본적으로 삼고 정, 그 다음 삼매, 혜. 정혜 부분이 아주 핵심적인데, 정혜에 대해서 얘기해요. 사선정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이론적으로 보면 이게 그래도 아귀가 맞아요.
그래서 가려고 했어요, 거기에. 아나빠나사띠를 해보니까 너무 잘 맞더라고요. 수행도 잘 되고요.
기자: 한국에서 해보셨습니까?
스님: 해봤죠. 해보니까 너무 나와 잘 맞더라고요. 아나빠나사띠를 처음 시작했는데 수행도 잘 되고 마음도 평화로워지고. 이게 내 길인가 할 정도로 그랬는데, 그래서 제가 미얀마 파욱으로 가려고 준비를 했죠. 준비를 했었는데 실재 수행했을 때 나타나는 깊이와는 수행자들의 말과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상태들을 접하게 되니 여기서 문제가 생긴 거예요. 왜냐면 경전을 읽어봤을 때는, 흐름을 볼 때는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로 가면 될 것 같다 하는데 방법론을 찾아야 하잖아요. 경전에 그게 자세히 안나와있으니까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동안 내가 한국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게 기본적으로 미얀마 전통의 불교란 말이죠. 그런데 순수 위빠사나의 전통 같은 경우에는 이론적으로도 안맞고 순수 위빠사나는 파욱밖에 없죠. 이쪽에서는 이론적 구조는 맞는데 현실적으로 거기서 주장하는 그 경지의 깊이가 너무 얕은 거예요. 둘 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초기 불교 수행법은 한국에서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경전에서는 존재하는데 실질적으로는 뭔가 오류가 있는, 내가 가진 확실한 기준에서 볼 때는 오류가 있는 것이예요.
아잔 브라흐마 스님(맨 오른쪽)
기자: 스님께서 확신 할 수 있는 수행법을 가르치는 곳을 찾기가 어려우셨군요.
스님: 부처님 가르침으로 제가 한 수행이 있고, 수행했던 나름의 경험이 있지요. 경험을 통해서 들어보면 나름대로 파악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으로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수준이 어느 정도 보이는데 제가 더 수행을 배우고 체험 할 곳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번쯤은 남방에 가봐야겠다 생각하여 가게 됩니다. 태국, 미얀마를요. 태국에서는 아잔 차 스님 절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잔 차 스님이 외국인 제자가 많았는데 와바나나차 라고 외국인 제자를 위한 절이 있어요. 아잔 차 스님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서 아주 인상적이었거든요. 상좌부 스님이시면서도 다른 스님분들과 다르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외국인 스님들을 위한 절을 갔다가 그곳 도서관에 영문 수행서가 많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제가 번역한 아잔 브람 스님의 책을 발견합니다.
기자: ‘놓아 버리기’를 스님께서 번역을 하셨어요?
스님: 예. 놓아버리기 인데. 원제가 mindfulness, bliss and beyond 예요.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게 되었어요. 별 생각 없이 봤는데 그 책을 보고서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면 그 책을 읽고서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경전에서 선정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보니까 말은 선정이라고 하는데 전혀 경전과 다른 것입니다. 경전에서 쓰인 선정은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이런 수행을 가르치는 데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책을 보고서 경전에서 보던 것이 여기 있네!!! 수행의 방향에 있어서 그 책을 저는 제목을 ‘놓아버리기’로 썼는데 그 이유가 핵심이 놓아버리기이기 때문입니다.
letting go이지요. 수행의 길이라는 게 결국은 letting go하는 길이다 라는 그런 수행의 방향성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수행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거든요. 마음의 원리에 대해서 체험적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하여 그 책을 보고 갖고 있던 의문들이 풀리면서 수행에 대한 이해가 확고해졌습니다.
기자: 수행의 이해가 확고해지셨다면 아잔브람스님의 호주 센터에 가셔서 수행을 하실 필요가 있으셨나요?
스님: 아니죠. 그렇게 풀리는 거하고 다르죠. 체득이 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해와 체득은 다르지요.
기자: 수행을 하셨겠습니다. 스님!
스님: 그렇죠. 미얀마는 어차피 알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그대로더라고요. 태국하고 미얀마를 다녀와서 한국에 와서 선원에 들어갔어요. 선원에 들어가서 그때 아잔 브람 스님의 법문 MP3가 있어서 그것을 들으면서 수행을 하기 시작했어요. 수행을 하는데 이해가 깊어졌지요. 3개월 하안거 동안 정진하면서 법문도 들으면서 하루 종일 수행하면서 체험도 깊어졌고. 체험이 깊어지니 이해도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완전하다고는 확신 할 수 없는, 하여 수행한 분께 물어 확인이 필요한 2프로 확신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여 아잔브람스님을 직접 한 번 찾아 봐야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수행경험을 바탕으로 편지를 쓰면서 그곳 명상센터에서 수행하고 싶다는 것을 덧 붙였는데 초대를 받았습니다.
기자: 호주에서 얼마동안 수행 하셨는지요?
스님: 한 6개월 정도 있었지요. 비자 문제 때문에 더 머물 수가....
기자: 수행이 잘되셨겠네요. 스님!
스님: 네. 그때 제가 모든 의문들을 다 풀었습니다.
기자: 언제입니까?
스님: 2005년도입니다.
기자: 아, 정말 일찍 다녀오셨네요.
기자: 유튜브 동영상으로 스님의 명상법회를 보니 참 좋았습니다. 유튜브 시대라지만 하시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요?
스님: 저는 약간 실용주의자입니다. 출가한 이유도 굉장히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출가했습니다. ‘진리를 찾자’는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해야 해서 출가를 결정했습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사회에서 노력을 해서....
성공해서 좋은 가정, 행복한 가정 꾸리고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고 하는 것을 최대치로 하잖아요. 저는 삶이라는 것이 결국은 고통 속에서 빠질 수 밖에 없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가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자: 스님! 대단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위에 아프거나 죽은 사람을 보고도 못 깨닫는데요.
스님: 불교를 일찍 접했으니까요. 불교의 가르침을 계속 공부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진 거죠.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는 내 갈 길 모르고 내 삶의 지표가 없어지고 방향성이 없어지고 동력이 없어져서 진리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불교 수행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생기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바뀌었느냐면 진리 모르면 어때? 문제는 탐, 진, 치 때문에 고통 속에 빠져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불교 수행을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출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운이 좋아서 최대한 성공을 하더라도 불교수행을 하는 것만큼 행복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은 금생에는 물론 다음 생에도 그럴 것이니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출가하는 게 너무 당연했던 거죠. 아주 실용적인 접근방식이었죠.
이런 관점으로 어떻게 수행을 원하는 분들께 수행법을 공유하나 생각해보니 이 또한 당연하다 할 정도로 유튜브를 하게 된 것입니다. 법을 보시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도합니다. 불교 명상을 통해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보면 많은 일들을 한단 말이죠. 좋은 음식을 먹기도 하고 또는 운동을 하기도 하고 필라테스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노력을 많이 한단 말이죠.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행복의 조건들을 갖출 수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내 삶의 질을 정말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불교 명상이예요. 잠시라도, 하루에 30분이라도 이런 불교 명상을 꾸준히 실천하면 30분의 노력으로 엄청난 내 삶의 변화랄까 또는 내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이런 변화가 생깁니다.
기자: 번역하신 책도 여러 권 있으시다고요?
스님: 번역으로는 아잔 차 스님의 ‘반조, 마음을 비추다’ 1, 2와 아잔브람 스님의 ‘놓아버리기 (Mindfulness, bliss, beyond)’ 지은 책은 ‘마음 다루기 수업’이 있습니다.
기자: 고등학교 때부터 삶의 의미를 찾으셨다는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님: 혜안 스님입니다.
날짜: 4월 8일
장소: 부산 해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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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