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 문정희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꽃 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 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 / 용혜원
차가운 세파에 얼음처럼 굳어져서 어찌할 바 몰라 하다가도
당신의 미소 앞에 눈 녹듯 녹아 내리는 내 가슴은 어찌 보면 너무도 철없는 아이 같지만
한세상 살아가는 길목에서 서로 만나 화를 낸들 무얼 하며 속절없이 고집한들 무얼 하겠소
하늘 연분으로 맺어져 한 지붕 아래 살아가면 속정까지 다 들어 어찌 보면 먼 듯 느껴지는데
당신도 고운 얼굴 주름살지고 내 검은머리 하나 둘 잔설이 내리기 시작하고 자식들도 우리들만큼 커가고 어찌 보면 우리는 닮고 또 닮았소이다
너와 나는 / 이해인 수녀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 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숙명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부부란 / 오영록
나로 사는 것이 아닌 너로 살아서 나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낯을 살리는 옷매무새로 찬바람을 막기도 부끄러움을 가려주기도 하는 방패막이로 사는 앞단추처럼
그렇게 그렇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