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박 인순 (自草)
천상에 선녀가
석양에 낙조를 넋 놓고
바라보다 바라보다가
잃어버린 머리핀
물떼새 깃털처럼 매끄럽고
찰랑거린 흑 청색 머릿결에 꽂았을
초승달 핀
세세연년 변함없이
초사흘 서쪽 하늘가에
임자를 찾으나
아직도 임자가 누구인지
기다리다 지쳤나
하늘이 너무 넓었나
단 하룻밤이 짧았나
선녀를 기다리는
은 빛살 단아한 실눈썹
진실의 온도
박인순 (自草)
불경에 일부러 지은 업(業)은 금생에 받게 되거나, 다음 생애에 받는다는 말이다. 자기가 뿌린 업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의 차이만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은 있되 실행하지 못하고 매번 기회를 놓치고 후회를 하며 아쉬운 미련을 가슴에 품고 막차를 탈 수 있다.
때에 맞는 유류복 (有類福)과 무류복(無類福)의 덕행을 베푼 사연이다. 그분도 4남매의 가장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없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낸 공무원이었다.
일찍이 부모님이 작고하시자, 큰누나가 살림을 맡아 했으나 사업에 경험이 없어 하는 일은 부모가 물려준 전 재산을 축내는 결과만 초래했다. 그는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가난한 둘째 누나 집에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대는 공군에 지원 하였고 제대 후 평생직장으로 직업군인을 택하고자. 육군 경력직에 응시했다. 9명 중에 선발되었으나 ‘어머님이 (여성동맹위원장)직함에 등재되는 바람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여성동맹위원장은 본인은 물론, 가족들 모두가 전혀 모른 일이었다. 그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 공무원시험을 봐서 충남에서 첫발을 딛고. 고향 가까운 곳으로 전보를 하여 근무를 했으나 직장은 자기에 몸에 맞지 않은 옷이었다. 체신청으로 옮겼어도 단순하고 변화가 없는 일에 흥미가 없었다. 그때 국세청에서 주산과 부기 자격증 소지자는 경력직에 응시할 수 있어서 4번 만에야 평생직장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작은 누나는 슬하에 아이가 없었고 그나마 매형이 작고하여 외로운 처지였다. 누나는 재혼하였으나 자식과는 인연이 없어 외로움은 여전하여 동생을 아들같이 생각하라며 위로해드렸다. 그는 매달 10만 원을 송금해드렸다. 누나는 한두 번 보내다 말겠지 했다. 동생도 4남매를 둔 가장이고 공무원의 급여로 매달 꼬박꼬박 보내준다는 건 어려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남동생은 꾸준히 보내왔다. 동생의 마음은 고마움으로 살이 쪄가고 자신에게도 든든한 울타리가 있음에 행복했다. 동생이 정년의 되자 퇴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누나는 동생 집을 방문하였다. 어느 세월에 같이 늙어가는 동생 앞에 누나는 묵직한 가방을 전달한다. 누나가 무조건들이 미는 가방을 받아들면서 내용물이 궁금했다. 누나는 동생과 올캐를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동생이 20년 넘게 보내준 10만 원이 6천만으로 불려 놨지. 나야 동생! 고마웠다. 그 세월 동안 든든했고 따뜻한 정에 큰 위로가 되었다네…!”
이 돈은 오직 동생이 필요한 용돈으로만 사용해야지, 다른 곳에는 써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이 돈을 탐내 서는 안돼! 누나의 큰 목소리는 격양되었고 강력한 조건을 붙였다. 두 남매의 마음자리에서 번지는 진실한 온도는 한겨울 뜨거운 난로보다 더 따뜻했다.
그는 퇴직할 때 모아둔 적금 3천만 원을 찾았다. 자식들을 불러모아 공평하게 나눠 주겠노라고 의향 물었다. 자식들은 한결같이 아버지가 모은 것이니 당신 필요한 곳에 쓰시라며 사양했다. 한편으론 자식들 생각이 고맙기도 하고 마음 한편은 잘 자란 자식들에게 매우 흡족했다.
좋은 곳에 쓰리라 맘먹고 여러 궁리를 하던 차에 고향마을에 누나처럼 홀로되어 형제를 키우는 친구 누이의 처지가 곤궁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학 등록금에 절박한 처지를 알고 학자금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학자금을 전해 받은 그녀가 도리어 화를 내었다. 그는 그녀가 왜 화를 내는지 알지를 못하고 몇 년이 흘렀다. 고향에 성묘차 들렸는데 그녀의 배다른 오빠를 만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 여동생과 함께 자리를 동석하게 되었다.
그녀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억제된 슬픔이 쏟아졌고 오빠를 주시하며 원망이 흘러나왔다.
“오빠는 한방병원을 경영하며 해마다 서울에 집을 산다고 돈 자랑 늘어놓았지만, 남보다 못했다!”
그녀가 울면서 고단함을 털어놓자 어색한 자리가 되고 말았었다. 그때 그 자리를 떠나 오면서 왜 그녀가 화를 내었는지를 생각 해보았다.
사람은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웃고 어처구니가 없어도 울고 웃을 때도 있다. 여성의 감정은 이성보다 감성에 민감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인이 절박한 시기에 조건 없이 등록금을 보태준 오빠의 친구에게 그녀는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고.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화를 내고 그 고마운 자리를 벗어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속에 간직한 진실한 가슴속 온도가 세월이 가도 식지 않는 것이다. 힘든 세월 동안 이겨내며 무뚝뚝한 여인의 눈물이 그녀가 보여준 진실한 가슴을 열어 보인 것이다.
인류의 성인들 가르침도 돌려받을 수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시와 사랑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분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으리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