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의 방법과 유익(엡6:1-3)
2025.5.11, 어버이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어버이주일이다. 모든 날이 다 그래야겠지만, 어버이날이나 어버이주일에는 효(孝)라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효라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으로 느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부모님 생전에 충분히 섬기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이나 지금 살아 계셔도 잘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또는 자녀들의 문제로 인해서 마음이 불편하신 분들 등이다.
어버이주일을 앞두고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효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묵상해 보았다. 부모님께도 효를 해야 하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도 효를 다하는 것이 태초부터 하나님이 주신 사람의 본분이다. 그러면서 효가 무엇인지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란 다른 것이 아니다. 효는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효에 대해서 “부모를 봉양하고 마음 편히 모시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고, 용돈을 많이 드려도 부모의 마음을 괴롭게 하면, 그것은 효가 아니다. 반대로 아무리 반찬이 없고, 용돈을 풍족하게 못 드려도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면, 그것은 효도다. 이것은 육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도 마찬가지이다(찬양 -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1. 효의 방법
그러면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孝(효)'라는 한자는 '老(늙은 노)+子(아들 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이 글자는 자식이 늙은 부모를 업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글자는 부모를 업어드리는 것만 효라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모님을 업어 드려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면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과 인생에 대한 보람이 있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의 순종과 공경을 통해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음(=업어드림, 효를 실천함)을 강조했다. 다 같이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여기서 쓰인 “순종하라”(휘파쿠에테, ὑπακούετε)는 말씀은 ‘귀를 기울이라’, ‘경청하여 복종하라’는 명령어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단, 부모님의 말씀에 가볍게 여기는 것이나 경청하지 않는 것 또한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공경하라”(티마,τίμα)는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차원에서 가치를 높이 평가하라’, ‘경의를 표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공경이라는 것을 먹을 것이나 용돈만 두둑이 주면 되는 것 정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차원에서 부모님을 가치를 높이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의 말이나 존재 자체를 우습게 아는 풍조들이 많다.
그러나 믿음의 자녀들은 이러한 세상의 풍조를 쫓아가면 안 된다. 이처럼 부모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귀히 여길 때, 부모의 마음이 행복해지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이것이 효이다. 우리교회에서는 지난 주중에 어버이날을 앞두고 75세 이상이 되신 분들을 위한 사랑의 교제시간을 가졌다. 점심을 나눈 후에 교회 카페에서 어버이날 노래도 부르고, 찬송도 불렀다.
그런데 중간에 강옥자 권사님이 어머니 오기생 집사님을 생각하면서 이런 말씀을 나누었다.
“저희 어머니가 올해로 102세 이십니다. 그런데 올 2월 24일부터 치매가 오셨는데, 숟가락질을 잘 못해서 제가 밥을 떠드리는데... 입을 벌리고 받아 잡수십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좋아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어머니께 잘해드리고 싶습니다…….”
102세의 어르신이 딸이 떠주는 밥을 드시기 위해서 입을 벌리는 장면이 충분히 상상이 되어졌다. 그리고 기꺼이 그 입에 밥을 떠서 넣어드린다는 말에 모두 분들이 숙연해지면서 감동을 받았다. 강권사님은 평소에도 어머니에게 친절하게 대하신다. 이런 일들이 말은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정말 쉽지 않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모습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효(孝)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우리들 모두에게도 동일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지난 어린이 주일에 설교를 하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일단 자녀에게 “욕설을 금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이것은 자녀가 부모를 향해서 또는 주변의 어르신들을 행해서 더 나아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가까운 사람들 일수록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에 인색하기 쉽다. 몇 년 전에 국립국어원에서 600여명을 대상으로 배우자, 부모, 자녀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조사결과에 의하면, 부모 중 71%는 자녀에게 '수고에 대한 감사'를 듣고 싶다고 밝혔다. '자녀들도 이와 유사하게 부모에게 '노력에 대한 칭찬'(52%)을 가장 듣고 싶어 했다.
반대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부모, 부부, 자녀들의 대답들이 거의 비슷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하는 말이었다. 특히 부모들은 '내 말을 잔소리로 받는 말'(47%)과 '다른 부모와 비교하고 불평하는 말'(32%)을 듣고 싶어 하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통계들은 우리들이 부모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또한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쉽게 효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2. 효의 유익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처럼 효를 실천하는 사람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고 했다(엡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그런데 효도하는 사람이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는 말씀이, 단지 큰 부자가 되거나 명예가 높아지거나 오래 사는 것만을 뜻할까? 물론 그런 것들도 포함될 수는 있지만, 그것들만이 전부는 아니다. 만약 ‘잘된다’는 말을 세상적인 물질의 유무나 명예 같은 것들로만 생각하다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부모를 섬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하게 살거나, 몸이 아프거나, 일찍 세상을 떠난 자녀는 효를 제대로 안해서 저주받은 것인가? 이런 방식의 생각이나 가치관들이 위험한 것이다(=기복적이고, 미신적이며, 율법적인 생각들).
그래서 이 시간 마지막으로, 이처럼 효를 실천할 때 주시는 축복들 중에 간과하기 쉬운(이미 간과하고 있는) 숨어있는 한 가지를 강조하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축복이다. 한글성경에는 “이것이 옳으니라”(디카이온, δίκαιον, ‘의롭다’는 뜻)라는 말만 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 성경에는 이 말 앞에 ‘가르(γάρ, 왜냐하면~때문에)’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1절을 직역하면 이런 말씀이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경청)하라 왜냐하면 이것이 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의로움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함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의로운(또는 거룩한) 성품을 닮아간다는 말씀이다. 우리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설령 여전히 가난하고, 어렵다 해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더 깊이 알아가는) 유익을 준다. 이것이 효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축복과 유익이 아닐까? 이처럼 주님을 닮아가는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효(孝)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효란 부모를 기쁘시게 해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오늘 주신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육신의 부모님과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동네와 교회에서 어르신들을 잘 섬기자. 부모님의 수고를 칭찬하고, 격려해 드리자.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성품을 더 닮아가고, 알아가는 축복을 누리자.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각 사람의 필요에 맞게 가장 좋은 것들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