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교 일 자 : 2023년 05월 21일
▶ 말씀 선포자 : 임 용 주 목사님
▶ 설 교 제 목 : 변명의 시간에 복음을(연속강해77번)
▶ 성 경 구 절 : 사도행전 26 : 1 ~ 18
▶ 성 경 본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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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
시기를 바라나이다
4-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
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
이다
8-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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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땅을 살다보면 억울하고 힘든 일들이 우리 가운데 많이 찾아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이런 고통스럽고 힘든 일은 없었는지요?
그런데 과연 이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길일까요.
오늘 본문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도 바울의 얘기가 나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그립바 왕은 네 유익을 위해 억울함을 마음껏 얘기하라고변명의 시간을 줍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변명을 하긴 하되 자신을 위한 변명이 아닌 예수그리스도를 간증하는
시간으로 사용합니다.
저는 오늘 이로 인해 “변명의 시간에 복음을”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도바울은 자기를 어떤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본문 5절을 보면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별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리새인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구분된 자”, “분리된 자”로 거룩한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책망했지만 그들의 외식하는 것을 책망한 것이지 그들의 경건한
생활을 책망햇던 것은 아닙니다. 이렇듯 사실 바리새인은 철저히 말씀을 따라 살고 가르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중에서도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믿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마땅히 예수를 믿는 자가 되어 대적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본문 10절과 12절을 보면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사실 성도들에게 많은 박해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예수를 믿을 자격이 없는 자이지만 구원을 통해 주님의 사랑으로 바꾸어
주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5장 8절(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에 얘기 했듯이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아직 예수를 믿은 마음이 없었을 때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격이 없는 바울을 사랑하는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찾아오셨을까요?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찾아 오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14절을 보면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가 농사일 중 뒷발을 차는 것처럼 네가 나를 핍박한다고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5절을 보면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예수를 박해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단지 성도와 교인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교회안에 있고 믿는 자의
마음에 있기에 주님은 나를 박해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데 초자연적으로 빛 가운데로 오시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럼 어떤 말씀일까요? 기록된 성경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말씀은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사실 처음에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뛰어놀며 “집어 들어라, 집어 들어라”라는 노래를 듣고 성경을 집어 들고
읽게 된 것이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이었습니다.
(롬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는 이 말씀 가운데 은혜를 받아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문 16절과 17절을 보면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울을 주님이 구원하여 보냈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18절을 보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탄을 이기는 권세, 죄를 이기는 권세는 구원에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우리의 죄도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안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영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자신을 변명 할 기회가 있었지만 예수를 증거한 것처럼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며 성장, 성숙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