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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사람 갈렙(수 14:10-15)
성경에 인생의 나이를 초월해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도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든다섯의 나이에 가나안의 요새인 헤브론을 바라보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친 갈렙입니다. 그는 출애굽 1세대로,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유일한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가데스바네아에서 열두명의 정탐꾼을 보내 가나안땅을 탐지하게 하였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와서 백성들에게 정탐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열명의 정탐꾼들은 절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 땅은 우리를 삼키는 땅이고 그 땅은 철옹성과 같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강한 네피림 후손인 아낙자손의 거인들이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절대 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민 14:8,9)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45년이 지난 지금 85세가 되었지만 갈렙은 그날의 약속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갈렙이 모세에게 믿음의 보고를 전하던 그날, 모세는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수14:9절,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갈렙은 모세에게 그날의 그 약속을 지켜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40세의 정탐꾼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을 정탐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었습니다. 거대한 아낙 자손과 크고 견고한 헤브론의 성읍을 보는 순간, 하나님이 그에게 저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여 기업을 삼으라는 마음의 소원을 갖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을 보는 순간, 갈렙은 이 땅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기업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약속을 받은 날 이후 그 땅에 대한 비전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이후 긴 시간 동안 은갖 풍파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비전은 갈렙을 살게하는 힘이었습니다. 이렇게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을 갖게 되었고, 다른 정탐꾼들의 악평과 백성들의 통곡소리를 들으면서도 믿음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땅에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는 것이 개인적인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비전임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비전을 갖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기독 청년들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없이 닥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인생들도 많습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다며 가진 자들을 원망합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 직장을 구하기 힘들고 결혼하기도 힘들다며 이 시대를 원망합니다.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해서 사는 게 늘 힘들기만 하다"며 자신의 출신 성분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살기보다 자신을 '흙수저'라 생각하고 '헬조선'을 외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한 시대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 기준으로 말하면 대부분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들입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은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노년까지 선한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던 다니엘 역시 전쟁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었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갈렙도 마찬가지입니다. (6절a)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갈렙은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입니다. 그니스 사람은 팔레스타인 주변에 거주하던 에돔 족속 중 하나입니다. 그는 전쟁중에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함께 따라 나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12장 38절에 '수많은 잡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렙은 이방 족속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함께 따라 나온 잡족 출신입니다. 갈렙이라는 이름은 '케레브'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개, 매춘부, 노예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유다 지파에 영입되었고, 나중에는 유다 지파를 대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결국 그 땅을 정복하는 믿음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출신이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평생 품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출신 성분을 뛰어넘어 그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거나 누군가를 탓하지 마십시오. 가진 것이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배운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비전과 사명은 여러분의 출신을 뛰어넘습니다. 그 누구도 무익한 자가 아니라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쓰임 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갈렙을 들어 쓰신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동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동일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구약성경 중 한 권은 여호수아의 이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반면 갈렙은 어떻습니까? 모세의 후계자 자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갈렙의 이름으로 기록된 성경도 없습니다. 이쯤 되면 기분 나쁘거나 배 아프지 않겠습니까?
성숙하지 못한 인격이라면 사사건건 뒤에서 여호수아를 깎아내리거나 딴죽을 걸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경 어느 곳에도 갈렙이 이 상황을 원망하거나 불평한 장면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의 경쟁의식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거나 질투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갈렙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세우신 여호수아를 보필했습니다. 동역자로서 여호수아를 힘써 도왔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비전은 여호수아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가 아니었습니다. 헤브론의 산지를 정복해서 그 땅을 자기 기업으로 삼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때문에 갈렙은 쓸데없는 것에 감정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더 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영향력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위와 영향력은 비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중요 자리에 있다고 무조건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테레사 수녀를 보십시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주의 향기를 내는 일은 어떤 자리에 있는지가 중요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어떤 직분이나 지위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명망과 권력 있는 자리에 욕심을 냅니다. 교회 안에서도 장로나 권사가 되는 것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하나님의 일과 선한 영향력이 아닌 직분에만 집착한다면 그것은 비전이 아니라 야망입니다. 야망을 가진 사람은 지위나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진 자는 어떻게 하면 주의 일에 쓰임받을 수 있을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저마다의 비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의 소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비전과 갈렙에게 주신 비전은 달랐습니다. 비전은 다른 누군가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나답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다른 자녀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비교하는 순간 교만해지거나 비참해집니다. 비교하는 순간 시기하거나 질투합니다.
만일 갈렙이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비전을 갖지못해 여호수아와 스스로의 처지를 비교했다면 85세 전에 화병으로라도 일찍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부르심의 은혜가 다릅니다. 각자에게 주신 비전이 다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과 다른 교회에 주신 비전이 다릅니다. 여러분 안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만일 그런 이유로 괴로워하고 잠못이룬다면,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야망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한평생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그 꿈이 자신이 만든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면 어떨까요? 이 땅에서 하늘의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더 행복할까요? 나에게 그 꿈을 꾸게 하신 분과 함께 평생을 달려가는 삶은 얼마나 더 멋질까요? 여러분의 평생을 이끌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꿈 역시 꾸어지는 것입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비전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비전의 시작이 하나님인 것처럼 비전의 완성 역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고,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불덩이가 그를 지치지 않게 만드는 것일까요?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비전을 이루는 원동력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도전할 수 없고 달려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전의 사람 갈렙은 오늘 우리에게 비전의 사람이 가져야 할 믿음을 가르쳐 줍니다.
1.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믿음입니다.
갈렙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갈렙을 언급할 때마다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14장은 마침내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이 되었음을 말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4절)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기 때문에, 즉 충성했기 때문에 마침내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는 '뒤를 가득히 채우다'라는 뜻입니다. 직역하면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뒤를 가득히 채웠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 어떤 간격도 생기지 않도록 가득히 채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 마음 속에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운 것을 말합니다. 사탄이 내 안에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나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는 틈새 전략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탄이 가정과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부부 사이에 또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성도와 성도사이에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 사이에 틈이 생기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어려우면 더더욱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 미워하는 생각, 의심하는 생각을 집어 넣어서 틈을 벌어지게 하고 불신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갈렙의 마음속에는 사탄이 틈을 탈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도 침투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렙에게 약속하셨습니다.(민 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하나님은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랐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함께 정탐에 참여했던 열 명의 정탐꾼들입니다.
나아가 열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차라리 여기에서 죽게 해 달라고 울부짖었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하지만 갈렙은 그들과 마음이 달랐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말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주님을 따랐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견고한 성읍만을 보았습니다. 아낙 자손들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민 14:8a)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갈렙의 믿음은 단순히 머리로만 동의하고 인정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갈렙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습니다. 간격을 두고 좇는 것이 아니라 초강력 접착제처럼 딱 붙어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비전을 품은 그날로부터 45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간직하며 살아왔습니다. 점점 나이도 많아지고 오랜 기다림에 지칠 수도 있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고 인내하며 그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비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려 왔습니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능히 이루실 것입니다.
한때 신앙이 깊었던 사람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 신앙이 변질되는 경우를 봅니다. 솔로몬 왕도 초기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지혜를 구했지만, 나중에는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 보니 많은 처첩을 두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요아스도 초기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으나, 후에는 우상 숭배에 빠지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완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열여섯살의 나이에 왕이 된 웃시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강성한 나라를 이끌었지만, 후에는 교만해져서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 죄를 짓다가 한센병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끝까지 여호와께 충성했습니다. 환경을 보지 마십시오. 사람을 보지 마십시오. 약속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여러분의 인생을 거십시오.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도전하십시오. 비전의 사람이 가져야 할 신앙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 신앙입니다.
2. 임마누엘의 믿음입니다.
갈렙은 비전의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12절)"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세상의 '아무리'는 하나님의 '반드시' 앞에 무릎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고, 아무리 그 성이 크고 견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그분의 약속대로 반드시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갈렙은 비전만 가지고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고 도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전은 내 노력과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앞서 행하며 싸워 주셔야 합니다. 비전의 사람에게는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잊지마시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성취해야 합니다. 그저 적당히 시간만 보내고 환경에 메여서 할 수 없다고 주저 않아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할수 없지만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 하나님이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3.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함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행함을 통해 그 믿음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는 이성적으로는 행할 수가 없습니다. 계산하고 따지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의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 영적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려면 가장 큰 장애가 바로 우리속에 있는 이성입니다. 우리의 뜻과 부닥칩니다. 여러분,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바로 여기서 필요한 것입니다. 갈렙이 주님을 따를 때 무엇을 붙잡았습니까? 이성적인 계산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헤브론 땅을 정복하기에 불가능한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땅입니다. 그런데 85세가 된 갈렙이 무슨 수로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나섰습니까?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오래 전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말씀, 그 약속을 잊지 않은 것입니다. 남들은 다 잊고 편안을 꿈꿀 때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그 말씀, 즉 나에게 주신 그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그 말씀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약속의 땅이 헤브론을 정복해야 합니다. 헤브론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 땅입니다. 왜냐하면 견고한 요새입니다. 철옹성이라 누가 감히 정복할려고 하지 않은 성입니다. 그 성을 정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쟁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생각할 것은 이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이 전쟁에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무엇으로 정복했습니까?
전략과 무기입니까? 말과 전차입니까?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대한 절대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전쟁에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은 자기 희생이 따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십자가였습니다. 언제나 십자가 없이는 순종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왜 실패하고 넘어집니까? 십자가의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따라가려면 반드시 십자가의 도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희생입니다. 자기 포기입니다. 내가 없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간다고 하면서 가장 큰 장애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자신이 죽지 못해 많은 문제를 안고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얼마나 편하지 모릅니다. 내가 죽으면 주님이 내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하나님앞에 설 때까지 잊지말고 지켜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희생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생명의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거룩한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값싸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정복해야 할 산지가 있습니다. 그 산지는 내가 보며 달려가야 할 인생의 푯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비전이며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가장 먼저 주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생육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입니다(창1:28). 하나님은 우리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정복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정복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문화에 정복당하는 자가 아니라 복음으로 세상 문화를 정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갈렙에게는 인생의 나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낼 '이 산지'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정복해야 할 산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비전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정복해야 할 산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바로 그 산지를 정복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 온전히 붙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그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속에 일하기 시작하면 일상이 기적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여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