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나 좀 봐요”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심분이 어르신이 나를 부른다.
“예, 어르신.”
양 무릎 관절염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어르신이 일어나기 전에 다가가며 대답했다.
“우리 집에 봉숭아 꽃이 천지라. 새집에 이사 온 양반도 탐을 내고, 옆집서도 탐을 내”
하시며 봉숭아 꽃 얘기를 하신다.
“우리 센터 선생들하고 팀장을 먼저 줘야 주지 아즉 못 준다고 했어”라고 하신다.
이웃에서 봉숭아 모종을 달라고 어르신을 여러 번 찾아 왔었다고 한다.
며칠 전에도 우리 집은 마당이 없어 심을 곳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잊은 모양이다.
“어르신, 저녁에 제가 어르신 집에 같이 가서 가져 올께요” 하자
“그랄라요” 하며
어르신의 표정이 활짝 핀 봉숭아 꽃처럼 밝아졌다.
이후로 어르신은 나를 찾느라 바쁘시다.
“모종을 담을 상자를 가 와 보소. 큰 걸로 가 오소” 라고 하신다.
“이 정도면 될까요? 어르신” 라며 박스를 들고 가자
“너무 작아. 되도 안 해. 더 큰 거 가 오소” 하신다.
작고 큰 상자를 바꿔가며 보여 드리고 나서야 어르신 마음에 드는 상자를 준비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어르신과 함께 댁으로 갔다.
마당 가득 빼곡한 봉숭아 모종이 뱅굿이 웃으며 나를 반겼다.
어르신은 튼튼하고 좋은 모종을 뽑으라는 당부를 몇 번 하고 직접 뽑아 상자에 담기도 한다.
상자 가득 모종을 채웠다. 어르신은 더 가져가라며 까만 봉지에도 담아 주신다.
센터로 가져온 봉숭아 모종은 선생님들과 나누었고 하늘 정원에도 심었다.
그래도 모종이 남았다. 남은 모종을 챙겨 왔다. 내가 사는 빌라 공터에 심었다.
몇 번을 오가며 물을 주었다.
2023년 6월 9일 금요일, 신정오
평소 관심이 없었던 공터였는데 출퇴근을 하며 들르게 된다.
꼿꼿하게 잘 살아난 봉숭아 모종이 기특했다.
오늘 아침 드디어 빨간꽃 한 송이가 피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얼른 사진을 찍어 어르신께 보여 드렸다.
“팀장이. 잘 키았네” 라고 하시며 양 볼이 터질 듯 웃으신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어제까지도 모종을 가지러 오는 이웃이 있었다는 이야기,
봉숭아 모종을 뽑은 자리에 가지와 고추 모종을 심은 이야기,
마당에 봉숭아 꽃이 빨갛게 피기 시작한다는 이야기,
채송화도 서강도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
오이 모종이 자라 노란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
며칠 전 집에 온 딸이 봉숭아가 많다며 뽑아 버리자는 말에 서운했다는 이야기,
어르신은 꽃이 좋아 집 구석구석에 모종을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
어르신의 이야기가 봉숭아꽃 모종보다 더 많다.
어르신이 쉬지 않고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그리고 약속을 했다.
내년에도 봉숭아 모종을 많이 심기로, 그 모종을 가지러 가기로.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2023년 6월 29일 목요일, 신정오
첫댓글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더 많은 봉숭아 꽃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봉숭아꽃 모종을 가지러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챙겨주는 어르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