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화목제
화목제란 하나님과의 화목된 관계를 즐기고 기념하는 제사였다. 히브리 개념에서 화목이라는 말 자체가 생명, 건강, 번영 등 하나님의 축복에 따른 복합적인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 제사는 이미 존재하는 화목된 관계를 기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것이며 또한 상호 간의 친교를 위한 제사였다, 70인역에는 “구원제"로 번역되어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그 축복에 대한 보은의 자세로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화목제는 공동체적 잔치였고 성소 구내에서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제물을 드리는 자의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나그네와 종들이 함께 하는 공통 축제이었다. 화목제는 주로 속죄제와 번제 동으로 속죄가 이루어지고, 죄용서가 확증되고, 칭의가 확대되는 것의 기념으로 이루어졌다.
화목제는 서원이나 자발적으로 드렸으며 성별의식(출 29:19-28), 오순절의 떡과 함께(레 23:17-20) 그리고 나실인 서약 시에 드려졌다(민 6:14, 17-18), 이 제사는 보통 희생 제물로 사용되는 소, 양, 염소 등의 암컷이나 수컷 모두 사용되었다. 일반 희생 제물은 홈이 없어야 되었지만, 화목 제물은 지체가 더하거나 덜한 것도 가능했다(레 22:21-24).
화목제의 종류에는 드리는 자의 동기에 따라서 축복과 구원에 감사를 나타내는 감사제(레 7:12-15; 22:29-30)와 서원했던 것이 성취되거나 이루어졌을 때 또는 미래의 서원과 관련해서 드리는 서원제(레 7:16-19; 22:18-25), 그리고 축복과 구원에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낙헌제(레 7: 16- 18)가 있다 이러한 화목제의 가장 큰 공통점은 헌제자와 그의 가족 및 참여자들이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 것이었다(신 12:7,12,18). 감사제는 제물을 드리는 당일에 먹어야 했고 서원제와 닥헌재는 그 다음날까지 먹어야 했다. 먹다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 했다(레7:15-18).
소의 화목제
1- 5: 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2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3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5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화목제의 특성은 제물의 암 . 수 구분이 없다는 것이고, 제물의 연령에 대한 언급도 없다는 점이다. 이 제사는 다른 제사보다는 약간 느슨한 면이 있다. 이는 이것이 감사제이고, 간헐적으로 드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화목제도 번제와 마찬가지로 성소의 여호와 앞에서 드렸다. 안수 후 피가 제단 사변에 뿌려졌다. 이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항상 회개의 죄의 고백과 피뿌리는 속죄의 자세로 임해야 함을 가리킨다. 비록 속죄제는 아니었지만 화목제 역시 감사와 축제에 앞서 하나님 앞에 이 같은 피뿌림의 예식을 통해서 회개의 고백이 선행됨을 볼 수 있다.
특히 화목제에서 기름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이란 모든 기름을 의미한다(TDOT 4:391-97). 두 콩팔과 그 위 의 기름 곧 허리 근방의 것과 간에 덮인 꺼풀도 번제단에 드려졌다. 내장과 간 부위의 기름과 두 콩팥을 번제단에 화제로 불태웠다. 고대인들은 간과 콩팥을 인간의 정서의 중심으로 그리고 맛있는 음식물로 여겼다. 기름은 인간의 힘과 생명을 대표하고 성경은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상징으로 여겨서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VT 20[1970], 100-8). 이스라엘에서도 댐을 생명의 중추로 여겼고(잠 7:껑), 종종 감정과 내면의 사상 그리고 양심과 관계되는 것으로 여겼다(시 16:7; 73:21; 렘 11:20; 17:10). 이러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문학에서도 동일하다. 그래서 간은 마음으로도 병행되게 쓰였다(렘 17: 10; 20: 12; 시 7:9; 26:2; CAD, 8:11 - 14).
고대근동의 이방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동물의 내장, 특히 간에 새겨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경우 제사장들은 짐승을 잡아 신들의 뜻을 알기 위해서 장기를 해독했다(겔 21:21; H. Wolff, Anthropology of the ar, 64-66). 간의 둥근 돌출부(lobe)는 올바른 해독을 위해서 특히 중요했다. 이와 같은 주술은 이스라엘에서는 엄격히 금기시 되었다(신 18:9-13). 이것은 불확실한 장래를 점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행위들을 막기 위해서 이것들을 모두 제단 위에 다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었다.
제물의 기름은 단 위에서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께 드려졌다.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으로 주장하신다(레 3:16). 그것은 주님께 드리는 값진 것이며 주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였다. 간과 콩팥그리고 기름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도록 명하셨다. 내장에 덮인 기름,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두
콩팥과 허리 주변에 있는 기름, 간에 덮인 꺼풀 동의 기름들은 부와 건강의 상징이었고,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때는 드리는 자가 정성으로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을 나타낸다. 콩팥, 간 및 기름들은 힘, 감정, 그리고 생각 등의 중심으로 간주되었다.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진 기름은 죄로부터 인간 영혼의 정결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사인 건강을 위한 주님의 배려로도 볼 수 있다.
제물을 잡는 장소는 회막문 앞 번제단 곁에서했는데, 광야시대에는 이렇게 했지만, 가나안 정착 후에는 제물용 짐승에게만 이 규정이 적용되었고, 일반 식용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양의 화목제
6- 11: 6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7 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8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9 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곧 미려골에서 벤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힌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0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1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위의 규정은 양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절차에 관한 것이다. 양의 경우 암, 수 구분 없이 드려졌지만,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렸다.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잡은 뒤 피를 단 사면에 뿌렸다. 이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 행위는 안수와 피인 것을 다시 보게 된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의가 신앙생활의 기초이며,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성소 제도에서 번제단과 휘장은 바로 피 없이는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내려 가로막은 휘장은 오직 피의 속전으로만 하나님 앙에 나오라는 교훈이었고,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시며 영원한 규례로 정하셨다. 내장의 기름을 불태웠는데 태워서 향기를 올린다는 뜻이었다. 향기와 냄새로 하나님의 면전을 가린다는 뜻에서 “덮는다” 는 죄용서 및 속죄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죄인의 허물을 덮는다는 것이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덮고 죄인인 우리의 허물을 가리운다는 것이다.
특히 양의 기름진 꼬리를 언급하고 있는데 현재 팔레스타인에가서 보면 꼬리가 굵고 긴 양들을 보게 되는데 이것도 식용이 아니라 하나님께 번제단에 드려져야 했다.
피는 제단 사면에 뿌렸다. 피는 생명의 근원이며, 피를 먹지 말라고 성경은 권면하고 있다(창 9:4). 피는 주님의 생명을 상징하며, 피의 대가로 구속함을 얻었다. 모든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짐승의 식용 도살에 대하여 셔히타(Shehitah) 라는 규정과 고기의 피를 빼는 코셔링(Koshering) 이라는 과정이 있어 위의 원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화목제의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식물로도 나와 있는데, 고대근동의 만신전(pantheon)에서의 신들이 인간들이 드린 음식물 제사에 의존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방 세계에서는 신들에게 정규적으로 신들의 노여움을 무마하기 위해서 음식물을 제물로 드렸다. 성경에서는 오직 화목제에서만 언급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헌제자와 가족들 그리고 참여자들과 함께 이 축제에 참여하신 의마를 강조하는 것이다.
염소의 화목제
12-17: 12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13 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14 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 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5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7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염소에 의한 화목제의 경우에는 암 . 수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이것은 꼬리가 긴 양들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염소라고 말할 때는 보통 암염소를 말한다. 이 규정의 다른 것은 양과 일치한다. 특히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는 금기는 대단히 강조되고 있다: 영원한 규례 모든 처소 그리고 대대의 자손들에 의해 지켜져야 할 규례라는 것이다. 성소까지의 거리나, 다른 사정이나 때에 상관없이 이 규정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는 생명과 힘의 근원으로서 이것의 시여자이신 하나님의 전권에 속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속죄의 수단으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 했다(고전 10:16; 엡 2:13; 히 9: 14; 10: 19; 벧전 1:2,19; 계 12:11; 참고, 신 32:14).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원이 복음의 중심주제이다(롬 3:25; 5:9; 엡 1:7; 골 1:20; 히 9:22; 계 1:5)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는 개념은 바로 화목 또는 화목제라는 히브리 개념이다. 화목제라는 히브리어는 샬롬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 단어의 강의 능동형은 실렘이라는 말인데, “갚다, 보상하다”하는 뜻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값을 갈바리 십자가에서 다 갚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원래 샬롬이라는 말은 인간의 언어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이것은 번영, 행복, 건강, 평화, 평안, 성공 등. . . 인간 존재의 전 영역에 걸치는 복리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 살롬이 존재하자면 그것에 합당한 대가와 값이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히브리 사상은 철저하게 인과율을 강조한다.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갚을 것"(레 장:18)라고 했다 이렇게 죄 용서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값을 지불해야 했다. 죄없는 짐승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어야 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것은 제물의 죽음과 그 제물의 타는 냄새가 하나님의 면전을 가리워 죄에 대한 분노와 형별과 심판을 가리워서 속죄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대속의 결과로 우리가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 부른다(사 9:6-7). 그분은 우리의 평화이시다(눅 2:14; 엡 2: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누리자" (롬 5:1).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축제를 공동체적으로 누렸던 것처럼 오늘날도 우리 모두가 구원의 축제를 열어야 한다.
화목제물의 제육의 대부분은 드리는 자에게 돌려져서 축제음식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가족들과 하나님간에 존재하는 관계를 기념하는 것이다. 최고의 부위로 알려진 기름, 콩팥, 간꺼풀 등은 번제단에 드려졌다. 이것들의 냄새는 향기로운 냄새로서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었다. 헌제자의 몫인 끓인 제육들과 번제단에서 태우는 것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간의 간격 을 상징 했다(Hendel, ZAW 101[1989], 384). 화목제물은 항상 번제물 위에 드려졌다. 이는 아침의 번제 뒤에 드려졌다는 것이다. 혹은 헌제자가 먼저 번제를 드리고 이것을 드릴 수도 있었다. 물론 이 화목제의 경우에도 먼저 속죄의 공로를 상징하는 번제가 공동회식 또는 교제를 상징하는 화목제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 공동 잔치에 참여함으로써 참여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위험으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수고를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희생제물을 가지고 올 수 없는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없다. 이는 자원하는 감사제이었기 때문이다.
구속사관
화목제는 신약에서 우리의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킨다. 화목제 희생 제물의 피가 단 사면에 뿌려짐으로써 죄용서와 화목이 가능했던 것처럼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 섰다(골 1:20).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으로 우리에게는 평화의 축복이 주어졌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 인간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회복되게 되었다.
바로 화목제 희생의 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보혈을 상징한다. 구약의 화목제라는 모형(type)은 신약의 십자가에서 영원한 원형을 보게 된다.
신약에서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종종 집에서 함께 먹을 뗀 기록이 나온다(행 2:42- 47). 이런 의식에서 구약의 화목제 희생의 축제를 재현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제의 제사는 성만한에서 모든 신자들을 위한 충만한 축복과 은총을 누리도록 고안되었다. 성만찬(Eucharist)은 공동체적 친교이었다(고전 11:17-34) 떡과 포도즙을 취함으로써 신자들은 화목제 축제에 하나님의 임재를 누렸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임재를 그들 가운데 모셨다. 이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고전 10:16). 피가 엄격히 금해졌지만, 성만찬에서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했고 이 만찬에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 제공되었다.
교훈과적용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 및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회복하셨다.
2. 오늘날 우리 모두는 교회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려야 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안을 누려야 한다. 그리스도인 신앙 생활에서 기쁨의 태양, 평화의 태양이 항상 비추이도록 하자. 기뻐하는 것이 화목제의 가장 큰 특정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빌 4:4).
3. 우리의 의식에서 살롬의 자세와 안목을 가지고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크신 구원을 누리고 주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도록 하자
4 정당한 노력과 대가를 지불하는 성실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요행이나 운수 혹은 팔자소관을 탓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5 신앙 생활이라는 이 감격적인 구원의 축제에 우리의 가족, 친척 그리고 우리의 이웃이 동참하도록 초청하여 선교 활동에 열심을 내자.
6. 우리들의 삶이 화목의 사신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