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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순 목사
김동환 시인의 '강이 풀리면' 이란 시가 있습니다.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며는 임도 탔겠지
임은 안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시인은 지금 사랑하는 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강물이 풀리면 배가 오고, 그 배에 사랑하는 임이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혹시 임이 오시지 않아도 사랑의 편지는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강가에서 배를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임이 오시면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설움도 얼었던 강물이 녹듯이 다 녹아질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강가에서 사랑하는 임을 기다립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산다는 것은 기다림과 여행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항상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립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10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출생과 함께 엄마 아빠를 부르고, 아장아장 걷기까지는 일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진학하기 까지 무려 20여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가정을 이루기까지 또 기다려야 합니다. 결혼 후에는 자녀를 기다리고, 나이가 들면 죽음을 기다려야 합니다. 인생은 기다림으로 시작해서 기다림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기다림은 익숙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특별히 ‘빨리 빨리 병’에 걸린 우리는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탕을 입에 넣자마자 ‘으드득’ 씹습니다. 실제로 사탕을 주고 실험을 해 본 결과 한국 사람이 가장 먼저 사탕을 깨트려 먹었습니다.
자판기에 커피를 뽑는 것만 봐도 얼마나 기다리지 못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실험을 했는데 10명 가운데 3사람은 동전을 넣자마자 뚜껑을 열고 컵을 붙잡고 있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떻습니까? 다 나오면 불이 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뚜껑을 열고 허리를 숙여 쳐다보고 있습니다.
밥을 할 때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빨리 밥 먹겠다고 솥뚜껑을 열면 밥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패스트푸드 문화, 인스턴트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기다림은 내일의 희망이요 꿈입니다.
기다림은 우리 인생을 성숙시키고, 풍요롭게 합니다.
기다림은 오늘의 현실을 넘어 내일로 다가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입니다.
옛날 주나라에 강 여상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뛰어난 재주와 지혜를 가졌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벼슬길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강가에서 80이 넘도록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나라 문왕이 사냥을 가다가 강 여상이 낚시를 하고 있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한 눈에 그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아본 문왕이 강 여상을 등용합니다. 그는 주나라를 크게 발전시킵니다. 그 뿐 아니라 문왕의 아들 무왕 때 이 강 여상의 도움으로 은나라 주왕을 타도하고 천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태공이라는 작위를 하사받습니다. 그래서 강 여상에서 강태공이라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강태공이 강가에서 80이 넘도록 낚시를 할 때 때로는 낚시에 바늘도 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낚시대만 물에 담가 놓고 깊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태공은 세월을 낚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강태공은 낚시하며 긴 세월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기회를 잡고 인재로 등용됐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지 못해서 일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말하다가 화를 부르기도 합니다. 기초를 튼튼히 세우지 않고, 실적을 올리려고 성급하게 일하다가 모든 것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삼상 13장을 보면 안타까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얼마 안 돼서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게 됐습니다. 사무엘이 기도하기 위해 오기로 된 7일이 지났는데 늦어졌습니다. 블레셋이 공격해 오려고 진을 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두려워 하나씩 떠났습니다. 사울 왕의 마음이 조급해 졌습니다.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번제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삼상13:13-14)
아무리 절박한 상황일지라도 사울 왕은 선지자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성급하게 제사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시킵니다. 결국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게 되는 단초가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습니다.
우리 안에는 3초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닫기 버튼을 누릅니다. 바쁜 누군가를 배려하는 기다림이 부족합니다.
빨리 하는 것보다는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는 바르게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은 정한 때가 있고, 기한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 내 경험,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을 이룰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보고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미래를 보고 기도하고 격려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다려 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분명 다릅니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믿음의 거장은 한결같이 기다림의 사람입니다.
노아는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며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기 까지 무려 100년을 넘게 기다렸습니다.
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까지 80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사역을 위해 3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다림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정한 시간에 응답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불안하고, 때로는 원망이 쏟아집니다. “하나님 이만하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30장 18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사30:18)
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려주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믿음의 사람이요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 어떤 태도를 가지고 기다려야 할까요?
첫째로, 기도하며 기다리라.
19절에 보시면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을 실 때에 네게 능답하시리라.”(19절) 말씀하십니다.
무작정 기다린다고 해서 모든 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를 비춰보는 시간입니다. 내 마음의 아픔과 고통을 들어내는 시간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들을 밝히는 시간입니다. 그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협박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기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 앞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 기도가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합니다. 내 욕심을 위한 기도라면 빨리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깨달은 자는 어떤 고난이 몰려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로 가라 할 것이며”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셔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우리의 스승이 내 곁에서 코치를 하시고, 우리의 귀에 바른 길을 가도록 말씀하는 것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갈 길을 밝히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최상의 가이드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자는 혼자 배낭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일을 만나도 조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조합니다. 불안합니다. 바로 그때 사울처럼 자기 방법을 찾아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합니다. 결국은 모든 것을 그르치고 후회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자는 주님께서 모든 상황에서 책임을 져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않습니다. 조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며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하늘 소망을 품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깨어 기도함으로 기다리는 대림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우상을 제거하며 기다리라.
기다리는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자신 안에 있는 찌꺼기를 봅니다. 내 안에 있는 순결하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22절)
기다림의 시간동안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을 더러운 것을 던짐같이 내던지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행위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돈을 만들어 놓고 돈을 섬기면 돈이 우상입니다. 권력을 취하고 그것을 섬기면 권력의 우상이 됩니다. 주신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하면 탐욕의 우상이 됩니다.
오늘날의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우상이 더 무섭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탐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경건에 유익합니다.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내 안에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대림절을 기다리면서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몰아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을 책망하시는 가운데 주신 소망의 말씀입니다. 유다는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진하는 앗수르를 견제하고자 애굽과 화친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뜻을 묻지 않고 성급하게 애굽을 끌어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30장 전반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으로 달려가는 유다 백성들을 담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처럼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깨뜨리듯이 나라를 박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15절)
하나님이 가장 섭섭한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섭섭할 때가 언제입니까? 자녀가 부모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만찬가지입니다. 위기의 때일수록, 어렵고 힘이 들수록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엎드려야 하는데 반대로 움직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유다처럼 분주하게 뛰어다닙니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 말씀하십니다. ‘잠잠하고 신뢰하면 힘을 얻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해결하겠다고 뛰어다니지 마세요. 내가 해보겠다고 큰 소리치치 마세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엎드리세요. 그 속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T
사랑하는 여러분!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홍해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 너희를 위해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출14:13)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믿음이요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26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상처를 싸매주시고, 고쳐주십니다. 먹구름을 사라지게 하시고, 일곱 날의 빛을 모은 것처럼 해맑은 삶으로 바꿔주십니다.
둘째로, 풍성케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3-24절에 보시면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손이 수고한 대로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심지어 소나 나귀까지도 기름진 꼴을 먹도록 채워주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어리석은 유다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고 애굽으로 달려갈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가 돌이켜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요 사랑입니다.
오늘은 교회 절기가 새롭게 시작되는 대림절입니다. 성탄절이 오기 전 4주간을 대림절이라고 부릅니다. 대림절의 의미는 2000년 전에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삶의 현장에 주님께서 능력으로 임재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대림절 기간은 자신을 돌이켜 보며 회개하고,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대림절 기간을 “겨울철의 사순절(Winter Lent)” 이라고도 합니다.
대림절과 사순절에는 같은 색깔인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슬픔과 참회, 소망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대림절 기간은 들뜬 분위기가 아니라 차분하게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며, 자신을 내어 놓고, 사랑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힘으로 능으로 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탕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길이 참으시고 기다려주십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다가오셔서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우리의 모든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기다림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바로 기다림 속에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냄비근성을 가지고 조급함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교회학교에서도 아이들을 오래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늦게 왔다고 책망하면 안됩니다. 늦게라도 온 것이 귀합니다. 칭찬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의 부족을 지적하고 비난하기 앞서 사랑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은 기다림입니다.(Love is patient.)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로 얼룩진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금번의 대림절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조급하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행했다면 다 내려놓으십시오. 조용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자신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의 품에 안기십시오. 아무리 주님 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돌이켜 돌아가기만 하면 주님은 두 팔 벌려 환영하십니다. 상처를 싸매주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더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조용히 오늘 주신 말씀을 묵상하며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의 시간에>
♬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기 기다려
하루 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기다려 그때를 주의 뜻 이뤄지기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