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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하늘 백성의 형통 창39:1-6, 행16:16-34
한 소년이 동산 위 무지개를 보면서 그것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소년은 말 등에 올라타고 동산 위로 올라갔으나 무지개는 저 멀리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다시 산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다 위에 무지개가 떠 있었습니다. 소년은 피곤에 지쳐 울면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욕심 많은 소년의 이름은 나폴레옹으로, 그는 정말 꿈과 욕망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과 욕망을 이루기 위해 처절한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천하를 호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형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말년과 죽음은 한없이 외롭고 비참했습니다. 죽기 직전, 그가 남긴 말은 단 세 마디, "프랑스!, 군인!, 조세핀!"으로 인생의 허무가 담긴 아쉬운 절규였습니다. 그것은 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의 조국 프랑스, 그의 분신 군인, 마지막으로 그와 이혼한 처음 아내 조세핀. 천하를 호령하고 소유했던 최고의 부자 나폴레옹도 형통과는 거리가 먼, 이처럼 허무하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도록 풍성히 예비해 놓으셨지만, 우리가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바로 섬길 때 형통한 은혜를 받게 되고, 그 때 만족과 풍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늘 백성의 형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늘 백성의 형통은,
1.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창39:2-3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형통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되어 아무런 어려움이나 근심, 문제없이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시련 중에 있는 요셉의 삶과 연관하여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요셉의 처지는 남의 집 노예입니다. 그 당시 노예는 자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이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자로, 생사권도 주인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노예인 요셉을 가리켜 본문은 ‘형통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형통한 자’라는 말 앞의 수식어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는 말입니다. 즉 형통이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 즉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명예를 얻고,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평안한 삶 등이 아니라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번하다 노예로 팔려 남의 집 종살이 하면서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시련을 극복하고 형통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잘되는 것만이 형통이 아니라, 요셉처럼 하나님과 잘 통(通)하는 것이 형통(亨通)이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을 뚫고 나가는 것, 끝이 좋고 선을 이루는 것,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형통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바울 일행도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린 자에게 역사하는 귀신을 좆아내 고쳐주는 일을 하다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밤중에 기도하고 찬미할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간수와 그의 가족이 복음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감옥 안에서도 형통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살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 삶은 형통이 아니지만, 아무리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죤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됩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건 나를 구원해 준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매사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찬양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교제하는 기쁨을 나누고,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바로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맺히고 꼬인 것들이 풀려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본문을 계속 보면 여주인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할 없노라고 유혹을 피해 달아날 때 여주인은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고 누명을 씌워 감옥으로 보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동료 죄수들을 돌보며 지내는 모습을 보고 22절에 보면 간수장이 옥중 죄수들을 다 요셉의 손에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옥중에서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서 후일 그의 말대로 바로의 생일 날 복직이 된 술 맡은 관원을 통해 바로 왕이 꿈으로 번민할 때 요셉의 일이 생각나 왕에게 요셉에 대한 말을 전하여 왕 앞에 서게 되었고, 왕의 꿈을 해몽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약 애급의 총리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시어 옥중에서도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셉에게 모진 일을 했습니다.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지극히 사랑하시어 요셉의 죽음의 소식이 아버지에게 큰 충격이 될 줄 알면서도 아버지를 속여 가며 노예 상에게 팔아넘기고, 여주인은 자신의 집에 큰 유익을 끼치는 요셉에게 보답은커녕 감옥으로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도 복직 후 왕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잘 신원해 달라는 요셉의 부탁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만,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요셉에게 어려서 주신 꿈을 하나씩 이루어 가시도록 섭리 하셔서 요셉을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니엘이 왕의 신임을 받는 총리가 되자 그를 시기하는 자들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의 약점을 찾다가 아무 흠을 발견하지 못하자 기간을 정하여 그 기간에는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경배하는 자는 사자 굴에 넣도록 온 나라에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내리게 했는데, 다니엘이 그 기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을 열고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일을 왕에게 고발하여 사자 굴에 들어갔지만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사자 굴에서 보호해 주시므로 오히려 그를 모함하는 자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는데, 이 일 후 단6:28에 “이 다니엘이 다라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사자 굴에서도 살게 된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도 바울 일행은 어떡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받게 되기를 소원하면서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귀신을 좇아내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소란케 하는 자들이라고 누명을 씌워 고소하므로 당국자들에 의해 매 맞고 감옥에 갇혀 발에 차꼬로 채워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기도하고 찬미할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모진 일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멘 것을 다 풀어 자유하게,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시련 중에 있을 때에도, 사람들의 모함과 배척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실 때에도 예수님은 형통하게 하시는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손을 대는 것마다 변화되었습니다. 죄인은 회개하고, 병 든 자는 치료되고, 포로 된 자는 자유케 되고, 가난한 자는 부요케 되었습니다. 귀신은 떠나가고, 관계는 회복되고, 저주의 십자가는 속죄의 십자가 되게 하시어 죄와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자들이 복을 받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형통의 손, 치료의 손, 권능의 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렇게 형통 하게 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성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맺히고 꼬인 것들이 풀어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나누는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혼자서 형통한 것이 아니라 요셉 때문에 그 주인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기쁘고, 보람 있고, 행복한 경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문 5절에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급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신 때를 정확하게 선을 그어 구분해 놓으셨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라고 했습니다. 사실 가정이나 교회, 직장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온 다음부터 그 모임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달라지고, 여건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집니다. 이 모든 것을 형통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형통한 사람 요셉이 감옥에 가니 감옥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가 애급의 총리가 되니 후에 7년간의 기근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통해 그의 부모와 형제들, 히브리 백성들이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을 다 불러 모은 다음에 자식들 하나, 하나 이름을 부르며 예언적인 기도를 하는데, 그 때 요셉을 위해 한 기도는 창49:22에 보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어 이웃에 미치는 것처럼 그는 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바울 일행은 억울하게 옥에 갇혔지만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미하더니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옥에 진동이 생기고 옥문이 열리고 바울과 실라의 결박이 풀렸습니다. 졸고 있던 간수가 깜짝 놀라 이 광경을 보고 틀림없이 죄수들이 다 도망갔으리라 생각한 간수는 그 책임을 느끼고 자결하려는 것을 보고 바울이 급히 소리쳤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도망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노라" 간수가 등불을 가지고 뛰어 들어가 보니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너무 감격하면서도 두려워서 하는 말이,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고 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해서 그날 밤에 간수와 그의 가족이 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롬8:28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전한 복음이 유럽과 아시아 등지로 전해져 구원 얻는 자들이 확장되어 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셉이나 바울처럼 겸손히 하나님을 높이며 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자들을 통하여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사는 ‘케리’라고 하는 여성이 있었는데 간호사였습니다. 어느 날 이 케리 간호사가 근무하는 병원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아무도 이 할머니에게 병문안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케리 간호사가 이 할머니 옆에서 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옆에서 얘기도 듣고 밤에는 할머니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너무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이 케리 간호사를 천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할머니가 케리 간호사에게 변호사를 좀 불러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변호사를 통해 가진 돈을 기부했습니다. 캐리 간호사가 그 돈으로 ‘케리 양로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지금 65년 넘었는데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양로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40-46)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늘 백성의 형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늘 백성의 형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맺히고 꼬인 것들이 풀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나누는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2023. 08. 30.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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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