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지난 3/21(금) 최낙승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망연자실에 빠지다.
돌이켜보니 4년 전 지난 2021. 7. 2. 금요일 부산에서 최낙승이 올라와서 양평에 짓고 있던 완공 직전의 나의 전원주택을 둘러보고 간 기억이 난다.
이날의 상황을 기록한 나의 블로그에 적힌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산에서 올라온 최낙승친구가 오전 10시 반이 조금 지나 네잎클로버 화분과 커다란 수박 한덩이를 들고 신축현장을 찾아주다.
신축 중인 건물 안팎을 돌아보고, 웃속고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이어 용문산 가는 길의 돗가비불쭈꾸미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중원계곡 물가에 앉아 잠시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시간을 함께 가지다."
그는 나의 양평의 전원생활이 마음에 끌려 부산의 집을 팔고 자식들도 가까이에 있는 양평에 올라와 농사를 지으며 노후를 지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흘러간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그야말로 초짜인 나의 텃밭농사 사부가 되어 나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박식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각종 농법에 대한 자문에 일일이 응해주었다.
2022. 7. 27. 텃밭 작물의 뻗어나는 줄기를 붉은 비닐 끈을 가위로 잘라서 묶는 것을 보고는 아주 편리한 철사노끈 다발을 보내주기도 하였는데, 이제 나는 텃밭농사를 누구한테 물어보며 지어야 할거나?
그는 이제 죽어서나마 양평과 가까운 경기도 광주에서 그의 영혼을 쉬게 하려고 부산에서 화장을 마친 뒤 오늘 광주의 시안가족추모공원으로 올라왔다.
아래에서 최낙승이 승용차로 함께 올라온 가족을 우리 친구 넷이 만나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천의 바람 봉안당에 올라가서 마지막 이별을 나누는 장면의 사진을 올린다.
고인의 영혼이 봉안담 속에 들어가기 전에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그의 영혼이 쉬는 곳의 주소는 천의 바람 1묘역 2열 201-715호실이다.
헤어지기 전 부인으로부터 별세 3일 전 병원에 가서야 위암 4기로 간에도 전이가 되어 손을 쓰지 못하고 결국은 패혈증으로 벼락을 맞은 듯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차다. 고인이 그때까지 아무런 통증도 없었고 체중 변화도 없어서 너무 황망하다는 것이다.
위의 바깥 거죽과 근육 사이에 암이 소리소문 없이 자랐으니 내시경 검사로도 알 수 없는 희귀사례라고 한다. 다만 친구가 장시간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하직한 것이 다행이라고나 해야할까?
친구 넷이 가족들과 작별을 고하고 내려가려 하자 와중에도 우리더러 식사하고 가라며 봉투를 내민다. 사양을 하다가 받아 고인의 뜻이 나타나도록 20만원을 우리 동기회 기금에 넣기로 의견을 모았다.
눈을 들어 주위를 보니 거대한 시안가족추모공원이 펼쳐져 있다. 세계최대규모의 봉안시설이라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고인이 쉬는 곳은 우리가 본 담장 형태의 봉안담 외에도 봉안묘, 평장묘, 매장묘의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고 있음을 알았다. 한국 장묘문화의 세계화를 도모한다는 말을 되새겨보게 되었다.
아래의 시안가족추모공원 소개 동영상 속에 흐르는 애잔한 시 <천개의 바람이 되어>(千の風になって)를 들으며 최낙승친구의 명복을 빈다.
첫댓글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최낙승 동기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