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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하나님 나라의 비밀 말씀/ 마가복음 4:1-34 요절/ 마가복음 4:11 | 2024. 4. 28 | |
마가복음 제 6 강 |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 땅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의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의와 생명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누가 그 나라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우리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합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며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위축되지 않고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배를 강단 삼아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 중에 기초이면서 가장 중요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비유도 알 수 있고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의 씨를 뿌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의 씨가 뿌려지지 않으면 어떤 열매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농부가 열매를 기대하며 씨를 뿌리듯이 예수님도 열매를 기대하며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씨가 떨어지는 밭의 상태에 따라서 열매를 맺기도 하고 못 맺기도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유는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비밀의 문이 열리지만, 소원이 없는 사람에게는 닫혀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보화를 캐는 심정으로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그 깊은 뜻을 알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먼저 ‘들으라’고 하시며 말씀의 포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심으로 계속해서 말씀을 묵상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귀는 다 있습니다. 하지만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은 말씀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듣기는 듣는데 마음이 딴 데 가 있다면 들을 귀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마음에 새기고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자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입니다.
씨 뿌리는 자가 열매를 기대하며 밭에 나가서 부지런히 씨를 뿌렸습니다. 어떤 씨는 길 가에,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떨기에,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길가는 밭과 밭 사이에 난 길이며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녀서 딱딱합니다. 길가에 씨가 떨어지자 새가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돌밭은 겉은 부드럽지만 속에는 돌들이 박혀 있습니다. 곧 싹이 나왔지만 뿌리가 없으므로 식물은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여 햇빛에 말라 죽었습니다. 가시떨기의 밭은 좋은 땅이어서 싹이 나오고 뿌리도 내려서 잘 자랐습니다. 하지만 가시가 함께 자라서 식물은 가시떨기의 기운에 막혀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받아 풍성한 결실을 맺었고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습니다.
길 가, 돌밭,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했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 열매를 맺었습니다. 열매를 맺느냐 못 맺느냐 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반응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자세,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듣느냐에 따라서 열매를 맺기도 하고 못 맺기도 합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땅을 가꾸는 일입니다. 밭은 돌과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갈아주고 거름을 줌으로 좋은 밭으로 만들어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선천적으로 좋은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길 가와 같고, 때로는 돌밭과 같고, 때로는 가시떨기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묵은 땅과 같습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나의 마음 밭을 가꾸어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뻔한 이야기네, 별로 얻을 것이 없어’하며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열두 제자를 포함하여 몇몇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하나님 나라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만이 안다는 점에서 비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어떤 자에게 주어집니까?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알고자 예수님께 나온 자들입니다.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알고 삶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십니다. 외인에게는 비유로 끝나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이요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씀에 대한 소원이 없는 사람들이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듣고자 하고,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이용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 문화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인지, 누가 외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캠퍼스 학우들과 지인들과 이웃들에게 전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외인으로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6:9,10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의 교만을 경고하십니다. “이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어떤 깨달음도 없고 회개도 없고 구원도 없고 하나님 나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를 가지고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을 알고자 하고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고자 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과 배우는 마음으로, 무엇보다 나의 묵은 땅을 기경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죄 사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기쁨과 생명력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깊이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하시며, 그 비유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예수님이십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이며 오늘날 말씀역사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밭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첫째, 길 가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은 말씀에 대해 즉시 반발하며 튕겨버립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들이고 마음이 딱딱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생활과 일에 매여서 예수님과 영적 세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말씀이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경에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 마음에는 말씀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단이 즉시 와서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 가치관이 깊이 박힌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반발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잘 견디고 계속 말씀을 들을 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말씀이 세력을 얻게 됩니다.
둘째, 돌밭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과 같은 마음밭은 처음에는 말씀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잘 받고 기쁨이 넘칩니다. 목자들은 이런 양을 만나면 ‘좋은 제자감을 만났다’하며 얼굴에 웃음꽃이 핍니다. 하지만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 양은 곧 넘어지고 맙니다. 이는 신앙의 뿌리가 약해서 환난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자라는 데 햇빛이 필요하듯이 환난이나 박해는 신앙 성장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박해를 마땅한 것으로 여기고 말씀을 붙들고 말씀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한 말씀을 순종할 때 내면성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거목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뿌리는 복음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신앙이 깊이 박힌 사람은 어떤 환난이나 박해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를 내리는 데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 사람 중심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취사선택하고 말씀을 이용하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유익을 취합니다. 말씀 때문에 손해를 입게 되면 말씀을 버리고 교회를 떠납니다. 우리 가운데 청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소감을 쓰는 역사가 새롭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감을 쓰고 발표하는 것은 내 마음의 돌을 캐내고 말씀의 뿌리를 내리는 데 상당한 유익이 있습니다. 2024년 믿음생명 여름수양회에서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요회 목자의 제안대로 인생소감을 쓰고 서로 나눈다면 어느 때보다 은혜가 풍성한 수양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가시떨기입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가시떨기 밭은 가시만 없다면 정말 좋은 밭이요 풍성한 열매 맺을 수 있는 밭입니다.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도 얻고 세상에서도 성공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생활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무슨 음식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어떤 집에서 살까, 의식주에 대한 염려가 그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염려, 입시에 대한 염려, 취업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청년들은 결혼에 대해 염려합니다. 자녀를 낳을까 말까, 한 명만 낳을까 두 명 아니면 더 많은 자녀를 낳을까,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교육시킬까, 결혼적령기에 있는 자녀를 어떻게 도와줄까 염려합니다. 생활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노후에 대한 염려는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많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재물의 유혹은 매우 강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염려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도 염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기타 욕심도 만만치 않습니다. 청년 시절에 일어나는 정욕은 주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권력욕이 있고 명예욕이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해당되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은 말씀의 기운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염려와 유혹과 욕심의 가시를 생기는 즉시 뽑아버려야 합니다. 가시를 뽑지 않으면 그것이 자라서 우리를 찌르게 되고 우리의 내면과 삶을 황폐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에 우선순위를 둘 때 우리는 모든 염려와 유혹과 욕심을 이기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땅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자입니다. 듣고 받는다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듣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고, 말씀에 기초한 가치관을 세우고,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받는 사람은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삼십 배도 많은 열매인데, 육십 배 그리고 백 배 열매를 맺는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줍니다. 구원의 열매가 가장 좋은 열매이고, 다음으로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삶의 변화가 따르게 됩니다. 말이 정화되고 감사의 말, 칭찬의 말, 축복의 말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친절하게 대하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데 마음과 재능과 젊음과 생명을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길 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있고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교만과 자기 생각을 내려놓아야 겠습니다. 들을 귀를 가지고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나의 묵은 땅을 기경함으로 나의 마음 밭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의미를 알고자 하는 만큼 말씀의 능력을 더 많이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풍성하게 얻게 될 것입니다. 영적 소원이 있는 자는 은혜와 축복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이요, 영적 소원이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자라게 됩니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요 그리고 열매가 익어 추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혹은 우리가 돌보는 양들 안에 심겨진 하나님 나라가 과연 자랄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리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안심하고 잘 먹고 잘 자면서 때를 따라 사랑의 물을 주고 기다리면 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겨자 씨 한 알과 같습니다. 땅에 심길 때에는 작지만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고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안에 생명이 있어 자라게 되고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참 쉼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어제 고이리브가 목자님의 추모예배를 드리며 귀한 종의 신앙과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리브가 목자님은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가족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양들을 먹이고 돌보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춘천 땅에 하나님 나라가 점점 자라고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쉼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귀한 종의 신앙과 삶을 본받는 사람들을 더 많이 세워주시고 춘천 5개대 개척과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히는 일을 흥왕하게 이루어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말씀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열매를 맺기도 하고 못 맺기도 합니다. 들을 귀를 가지고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의 능력을 덧입게 되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자세를 새롭게 함으로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풍성히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