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3. 07
최근 시중은행의 과점(寡占) 해소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5개 시중은행들이 고금리에 따른 예대마진(대출금리-예금금리) 확대에 힘입어 역대 최고 수익을 거두자 이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 대출 규모는 GDP 대비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고 그중 부동산과 연계된 대출이 65%에 이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고물가에 불황이 닥치면서 가계는 실질소득 하락과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자산 가치 감소, 여기에 이자 부담 상승이라는 삼중고의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은행권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으니 비난의 화살을 면키 어렵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그들만의 잔치가 과점으로 인한 수혜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현재의 과점 체제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발생한 구조조정의 산물이다. 그런데 과연 예대마진 증가가 과점의 산물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 분석이 요구된다. 고금리, 특히 경기 불황 속 고금리는 필연적으로 신용 위험을 증가시키게 되고 따라서 은행은 대출이 부실화될 때 발생할 손실에 대한 보전 차원에서 예대마진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예대마진은 보험료와 비슷하다. 그런데 보험료 납입과 보험금 수령 시점에 간극이 존재하듯 예대마진 확대로 충당금을 쌓는다 해도 현재 이자 수익은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비용은 향후 대출 부실이 현실화될 때 발생하게 된다. 실제 지난달 은행권의 신규 연체율은 작년 동기 대비 2배 늘어나면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고금리에 따른 예대마진의 증가 자체가 아니라 그 증가 수준이 적정했는지로 논의가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설령 과점이 원인이라 해도 그 해소 방안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금융 산업, 특히 은행 산업은 가장 강력한 규제와 감시가 적용되는 산업이다. 은행은 상법상 주식회사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의 파산은 일반 회사나 타 금융 회사의 파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는다. 1929년 대공황이나 2008년 금융 위기처럼 금융 시장, 더 나아가 거시경제를 마비시키는 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의 생명은 첫째도 둘째도 건전성에 있다. 따라서 은행 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은산 분리부터 자본 비율, 유동성 등 촘촘한 사전 규제 및 사후 모니터링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은행과 고객 사이에는 정보 및 자본의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 영업 규제를 포함해 각종 규제와 모니터링이 불가피하다. 즉, 은행 경영은 한편으로는 주주 가치 제고를 추구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건전성 유지를 최우선의 가치로 설정해야 하며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우선해야 한다. 이렇게 은행을 둘러싼 세 가지 방향성은 상황에 따라 상호 보완적일 때도 있지만 상충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은 한편으로는 경쟁을 촉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호하되 규제를 해야 하는 특수한 존재다. 과점 해소를 위해서는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불가피한 만큼 자칫하면 건전성이나 소비자 보호가 취약해질 수 있다.
은행 수익의 원천은 크게 예대마진을 통한 이자 수익과 방카슈랑스나 펀드 판매, 유가증권이나 외환, 파생상품 투자로 얻는 비이자 수익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의 JP모건은 철도 같은 산업자본에 침투해 대공황의 주범으로 비난받았다. 이로 인해 1933년 글라스-스티걸법을 통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 금지, 시중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단행했다. 1999년 클린턴 대통령이 이 법안을 폐기하면서 시중은행의 투자은행 겸업이 가능해졌는데 노벨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이 법안의 폐기를 2008년 발생한 금융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즉 비이자 수익을 증가시키기 위해 위험이 수반되는 투자은행 성격의 업무를 늘릴 경우 은행의 건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볼커 룰’이라고 부르는 도드-프랭크법에서 상업은행의 투자은행 업무를 제한해 부분적으로나마 글라스-스티걸법을 부활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위험이 수반되지 않는 비이자 수수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은행이 금융 상품 판매에 주력할 경우 최근의 DLF(해외 금리 연계 파생 결합 펀드) 사태와 같은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늘어나게 되어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의 과점 해소는 은행의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다른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그 범주 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만큼 매우 제한된 해집합 속에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난제 중 난제라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해소 방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안동현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