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이른 역사, 가장 늦은 성지 선포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동로 477번 길 31에 자리한 화현 이벽 성지는 현재까지 가장 늦2게 성지로 선포된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이벽의 순교 사실에 대한 규명이 미흡했던 점과 성지 개발 과정에서 현실적 어려움이 따랐다는 것에 기인한다. 현재 이벽은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로서 환국교회에 의해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성지 인준 및 선포문에는 "시간이 흘러도 이벽 요한 세례자의 지상 여정의 시간과 끝이었던 이 장소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올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훌륭한 표지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라는 선포 사유가 적혀 있다. 화현 이벽 성지가 갖는 교회사적, 신앙적 의미를 압축하고 있다.
화현 이벽 성지는 춘천교구가 봉헌한 '광암 이벽 기념 성당' 을 중심으로 생가터 재현관, 해설사 안내소, 야외 공연장으로 구성돼 있다.
화현 이벽 성지는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곳이다. 성지 울타리 너머 이벽의 생가터는 경주 이 씨 문중이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생가터 지근거리에 위치한 진묘(眞墓) 터도 춘천교구가 정성 들여 관리하고 있다. 진묘터는 포천시 향토유적 제48호이기도 하다. 이벽의 묘는 그가 순교한 뒤 역사의 베일에 싸여 있다가 190년이 넘게 흘러 1970년대 후반에 발견됐다. 그 뒤 1979년 6월 천진암 성지로 이장 됐지만, 이벽이 순교하고 묻혔던 진묘터의 교회사적 의미와 가치는 변활 수 없다.
■ '하늘'을 바라 본 이벽
화현 이벽 성지 '광암 이벽 기념성당' 에는 이벽이 걸어갔던 선구자적 신앙의 길이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성당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텅 빈 것 같은 공간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소 천장은 뚫려 있다. 이 중정(中庭)에 서 있으면 보이는 것은 '하늘' 뿐이다. 이벽이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 아무도 걸어가지 않았던 천주교 신앙의 길을 걸을 때, 가족에게조차 박해받으면서 바라본 것은 오직 하늘, 곧 하느님 뿐이었다는 사실을 텅 빈 공간이 상징하는 것이다.
중정을 지나 성당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푸른 하늘색을 배경으로 십자가가 보인다. 십자가는 이벽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주했을 하느님을 다시 한번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외롭게 하느님만을 찾았던 이벽의 신앙이면서, 이벽이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이기도 하다.
고봉연 신부는 화현 이벽 성지에서 20여 km 떨어진 '포천 홍인 성지' 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벽이 그랬던 것처럼 복자 홍인(레오- 1758~1802) 역시 아버지인 복자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1738~1801)이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저할 때, 아버지를 신앙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홍인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자리 잡은 분이 하느님이었기 때문이다. 포천 홍인 성지 부지는 춘천교구가 포천시로부터 대여하고 있어 성지 개발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춘천교구는 전국 신자들이 화현 이벽 성지와 포천 홍인 성지를 더욱 많이 차지하도록 성지를 알리고 개발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출처/참고 가톨릭 신문, 박지순 기자
2024.09.22 춘천주보열린마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