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모릅니다.(1요한4.8)
사랑의 의미
(최성준 신부)
예전에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느 방송 작가의 수필이었습니다.
책을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 제목만으로도 생각할바가 많았습니다.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났고
하느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4.7-8)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시오(요한 15.12)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잘 압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계명의 핵심이라는 것.
그러기에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깨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언과 같은 것이겠지요.
그러니 사랑하라는 말씀의 중요성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요?
눈을 감고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누가 떠오르나요?
부모님. 자녀. 배우자나 연인. 친구....
이들을 사랑한다는 건 알지만 과연 그 사랑을 늘 느끼며 살아가고 있나요?
어느 날 번지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인에 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도 이야기합니다.
인은 사람이다. 인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닌 본성이라는 이야기죠.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는 그 인이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에 계산적인 생각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이나 욕심에 오염되어 버린 상태일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 무차별적인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유가에서 말하는 사랑은 차별적인 사랑입니다.
친친...즉 친한 사람을 친애하는 것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이를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 사랑을 확장시켜 다른 사람에게로 넓혀 나가는 것이지요.
다른 이보다 나의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내 부모님을 사랑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나아가
다른 이의 부모님도 공경하는 것입니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아이를 챙겨 주는 마음보다 더 애틋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이의 아이까지도
사랑으로 대해 주는 것이 사랑의 확장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관계의 근본 뿌리입니다.
이 뿌리에서 다른 모든 감정이나 관계가 뻗어 나갑니다.
대학에 물유본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에는 근본 뿌리가 있고. 가지와 나뭇잎 같은 말단이 있다는 말입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줄기와 잎. 꽃. 열매 같은 것들이 무성하게 자랄수 있는 것처럼
근본이 바로 서야 말단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근본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제대로 갖춰질 때.
사랑으로 관계가 제대로 맺어져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