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눈치챈다는 건 관심에서 출발해요.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궁금한 게 많아져 말로 묻기도 하지만, 꿍얼꿍얼 혼잣말로, 때론 가만히 속으로 질문을 하기도 하죠. 개미는 왜 땅속에 집을 짓는지, 친구나 가족이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뭘 힘들어하는지 등등이요. 눈치를 채려 하다 보면 결국은 알게 되고, 알게 된 건 내 안에 소중히 두게 되죠.
눈치챈 것들의 줄기를 따라가 보면 수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돼요. 나무가 키워 낸 씨앗은 품어 주는 땅이 있어야 싹틀 수 있고, 인형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인형 놀이도 혼자 하는 건 재미가 없고, 내가 신기한 뭔가를 찾아냈을 때 함께 웃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쁨이 더 커지죠.
어떤 때는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나를 발견할 때도 있어요. 가만히 생각하다 마음 구석에 있는 것을 내가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 알아봐 주기도 하죠. 뭔가 힘든 게 있다는 걸 눈치챈 거라면 용기를 줘야 하고, 좋은 점을 알게 됐다면 잘 가꿔 나가야 되겠죠. 이건 말이죠, 내가 더 소중한 사람이 되는 비법 같은 거예요.
-신혜영, 시인의 말 중에서
목차
시인의 말 5
1부 처음 보는 것처럼
여기도 봄 12 · 처음 보는 것 14 · 두꺼비를 만났습니다 16 · 햇살을 등지고 있으면 18 · 퐁 퐁 끙 끙 19 · 만만한 창문 20 · 물 재우기 22 · 고둥이 궁금해서 24 · 자전거 타고 가요 26 · 오늘만 개구리 28
2부 콩만 한 걸 굴려서 달콤한 걸 첨가해
포도 한 송이 32 · 수학 시간에 나온 사자 33 · 숨바꼭질 달팽이 36 · 해바라기 농사 38 · 언니 할 사람 40 · 암호 42 · 고릴라 일기 44 · 아빠가 궁금한 날 46 · 천적 48 · 오래된 시소 50 · 노래를 불러 52
3부 도토리는 궁리 중
도토리는 궁리 중 56 · 개미 산 58 · 감자 이삭 줍기 59 · 쉿! 60 ·막대사탕 62 · 보내기 64 · 고둥 껍데기와 소라게 66 · 소금이 온다 68 · 겨울 호수 72 · 씨앗 하나 떨굴 때마다 74 · 초대합니다 76
4부 공룡아, 이사 와 줘서 고마워
눈으로 80 · 급식 시간 82 · 도둑 아님 84 · 나보다 심한 놈 86 · 가오리연 88 · 워메 할머니 90 · 어느 날 학교에서 92 · 연꽃 93 · 샌드위치 먹기 좋은 공원 94 · 공룡의 이삿날 96 · 산책 시간 98
해설 함기석 100
출판사 리뷰
천 번도 넘게 본 것을 처음 본 것처럼,
경이롭고 소중하게 우리를 이어 주는 ‘여기도 봄’의 세계
할머니 집 닭들이 알 낳는 걸 봤어요
정말 신기해요
처음 보는 건 신기한 법이래요
할머니는 천 번도 넘게 봐서
신기한지 잘 모르겠대요
할머니는
알을 보고 좋아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대요
나는 알을 보고 웃고
할머니는 알을 보는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알을 보고 웃다가
나를 보는 할머니를 보고 웃어요
할머니가 알을 담아요
천 번도 넘게 본 알을
처음 본 것처럼 조심조심
_「처음 보는 것」 전문
천 번도 넘게 본 것을 처음 본 것처럼 대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경이롭고, 궁금하고, 조심스럽고 소중하기도 한 마음. 그 마음의 뿌리는 동시집 첫머리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캐볼 수 있다. ‘눈치채다’와 ‘마중’. 이 두 가지는 시인의 시 세계를 발아시킨 씨앗이다. 이 씨앗이 대상을 눈여겨보게 하고, 더 알고 싶게 하고, 반갑게 마중하게 만든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자신을 눈여겨보고 발견하고 마중하는 것. 그것을 시인은 “내가 더 소중한 사람이 되는 비법”이라 말한다. 그 비법으로 시인은 달콤하고 으쓱 기운 돋는 포도 한 송이를 선물한다.
내 짝이 누군가에게 하는
내 자랑
가만히 들어 보면
아예 거짓은 아냐
콩만 한 걸 굴려서
달콤한 걸 첨가해
포도알만큼 커져 있지
모아 보니
난 포도 한 송이였어
한 알 한 알 알알이 박힌
_「포도 한 송이」 전문
짧은 시이지만 담긴 말은 큰 시이다. 콩알만 한 내 장점, 내가 미처 몰랐던,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를 알아봐 준 덕분에, 난 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다. 아니 몰라서 그렇지 그것이 꼭 진실인 것만 같다. 마음에 두고두고 껴안아 볼, 포도 한 송이의 꽉 찬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시다.
‘눈치챔’ ‘눈여겨봄’은 나에게서 바깥으로 뻗어 나가, 겨울을 견뎌 봄빛을 품은 참새와 낙엽에게로, 먼 길을 달려 우리 집까지 온 물에게로, 짧은 다리로 오종종 걷는 강아지에게로, 급식 시간 싫어하는 반찬을 서로 먹어 주는 단짝에게로, 소금창고에 기대어 할아버지 땀내를 풍기는 대파에게로 이른다. ‘애씀’을 꿰뚫어 보는 눈, ‘귀함’을 끄집어내는 눈, 옅은 고동 소리를 듣고 낮게 엎드려 있던 것을 오뚝 일으키고…… 그 감각으로 마중하는 세계는 만물이 다시금 약동하는 “눈부시지 않아도 봄빛인” 봄, ‘여기도 봄’의 세계가 아닐까.
화려함의 힘을 넘어서는 진정성이 신혜영 시인의 동시가 가진 힘이다. 가공된 인공의 동심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동심으로 세상과 아이들 세계를 바라본다. 이런 의식 때문에 아이로 읽어도 어른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는 화자들이 등장한다. 이는 시인이 동시라는 통념적 울타리에 사로잡혀서 아이를 우상화하지 않고 아이들 세계를 천사의 세계로 신비화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_함기석(시인)
신혜영 시인의 첫 동시집
‘사랑’을 가진 모든 ‘나’가 서로 이어지고 포개어진 세상, 그 섬으로
『여기도 봄』은 신혜영 시인의 첫 동시집으로, “무엇보다 탁월하게 조탁된 정갈함”(대산창작기금 심사평)이 장점으로 꼽히며 2020년 대산문화재단 대산창작기금을 받은 작품집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시가 될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을 들어보면, 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과정에는 그 대상들, 그것이 자기 마음이든 경험이든 자연물이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즉 사랑이 들어가 있기에 그럴 터란다. 그 ‘사랑’을 가진 모든 ‘나’가 연대하는 세상. 시인은 이 바람을 싣고 자전거를 달려 우리와 함께 ‘그 섬’에 다다르려 한다. 그 섬은 반지하방 창문이 ‘만만한 창문’이 아닌 친구 얼굴이 맨 먼저 찾아오는 소통의 창문이고, 이사 오는 이가 없어 쓸쓸한 시골 마을은 공룡이 이사를 와 떠들썩해지고, 하늘을 나는 가오리연과 얼레가, 얼레와 바람이, 연을 날리는 아이의 손과 어른의 손이 서로 이어지고 포개어진 세상이다.
어린이를 독자로 한 글이다 보니, 시인은 요즘의 아이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은지 점검하며, 어린이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혼자 필 수 있다고 ‘끙’ 기합을 넣는 도라지꽃 같은 씩씩함, 밤새 고릴라가 일기를 써 주고 갔다고 말하는 엉뚱함, 부재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 다양한 질감으로 곳곳에서 우리를 마중하고 공감하게 하고 웃게 하고 뭉근하게 데워 놓는다.
학원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단한 놈을 봤다
허벅지에 문제집 올리고
왼손엔 답이 적힌 휴대폰 들고
답을 베끼는 녀석
누가 봐도
학원 숙제랑 걸판지게
씨름 한 판 하는 중
장단 맞춰 바쁘게 답 써 주던
샤프 연필이 책에 구멍을 내도
끄떡하지 않았다
나보다 심한 놈
그래도 난
학원 버스에서 했는데
_「나보다 심한 놈」 전문
호흡을 고르게 가다듬어 주는, 봄을 물씬 안은 그림
『여기도 봄』에 펼쳐진 도타운 봄빛은 핸짱 화가의 손끝에서 뻗어 나왔다. 편안한 그림체, 따듯한 노랑과 파랑과 초록의 빛,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시와 어우러져 호흡을 고르게 가다듬어 준다. 가만히 시 속으로 들어앉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