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구행정동우회 회원 80여 명이 강원도 영월의 단종 장릉을 참배하기 직전이었다. 동우회의 원로이신 이의익 전 시장님께서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육신사'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 우리 회원들은 모두 가슴 벅찬 감동과 숙연함을 느꼈다.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며, 문헌을 참고하여 육신사와 태고정에 얽힌 위대한 역사를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상세히 공유하고자 한다.
1. 묘골마을에 우뚝 선 절개의 상징, 육신사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묘골마을)에 자리한 육신사(六臣祠)는 조선 역사상 가장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한 임금만을 향한 충절을 지켜낸 사육신(하위지, 박팽년, 이개,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과 충정공(忠正公) 박팽년의 부친 박중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유서 깊은 사당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외삼문을 지나 유림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숭절당(崇節堂)과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을 넘어서면 사육신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숭정사(崇正祠)가 웅장한 자태로 참배객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보물은 바로 한석봉(한호)이 쓴 태고정(太古亭)이다. 성종 10년(1479), 박팽년 선생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이 정자는 원래 종가의 별당 건물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일부만 남았던 것을 광해군 6년(1414)에 중건하였으며, '오직 옳은 한 가지만을 따르겠다'는 뜻을 담아 ‘일시루(一是樓)’라고도 불렀다. 일시루(一是樓)는 안평대군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원래는 박팽년 선생만을 모시던 사당이었으나, 박팽년의 현손(5대손)인 박계창이 사육신이 함께 제사를 지내는 꿈을 꾼 후부터 다섯 분의 음덕을 함께 기리며 '육신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을 입구의 사육신 기념관과 경내의 육각비, 그리고 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의 기념비석 등은 이곳이 시대를 초월해 대한민국 충의(忠義)의 본향으로 존경받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육신사에서는 사육신의 곧은 절개와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린다. 이를 춘계 향사와 추계 향사라고 부른다. 춘계 향사는 보통 봄철(주로 음력 3월경이나 양력 4~5월 사이)에 날을 잡아 봉행한다.추계 향사(추향대제)는 사육신이 순절하신 시기를 즈음하여 매년 11월 중순(보통 16일~19일경)에 정기적으로 엄숙하게 거행한다. 그리고 제향 방식과 절차전통 유교식 제례는 육신사 내 사당인 숭정사(崇正祠)에서 전통 유교식 예법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된다.
2.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참혹한 폭풍
육신사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박팽년 선생의 부친, 창산부원군 박중림(朴仲林) 선생의 비극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태종과 세종 재임 시절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국가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선생은, 1455년 세조가 이조판서의 관직을 내렸으나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결국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면서 박중림·박팽년 부자는 모진 고초를 겪게 되었다.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최고 형벌인 능지처참(능지처사)이었다. 법명은 능지처참(능지처사, 凌遲處死)이었으나, 실제 집행은 죄인의 사지를 소나 말에 묶어 찢어 죽이는 잔혹한 환열형(轘裂刑, 거열형)으로 행해졌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역률 연좌제라는 가혹한 칼날은 가문 전체를 정조준했다. 박팽년 선생의 다섯 아들(박헌, 박순, 박구, 박년, 박기)은 모두 목을 매는 교수형(교형)에 처해졌고, 이미 태어나 있던 손자 3명 역시 변방의 노비로 끌려갔다가 성인이 된 후 모두 처형당하며 순천 박씨 가문은 씨가 마르는 듯했다.
3. 여종의 거룩한 희생과 뒤바뀐 운명
모든 핏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기적 같은 대서사시가 대구 땅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세조는 "역적의 아내들이 아들을 낳으면 즉시 죽이고, 딸을 낳으면 노비로 삼아 살려두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엄명을 내렸다.
당시 대구의 관비로 끌려와 있던 박팽년 선생의 둘째 며느리(박순의 처 성주 이씨)는 전전긍긍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 늦가을에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아이의 성별은 '아들'이었다. 핏덩이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하는 절망적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마침 그녀를 모시던 여종도 같은 시기에 '딸'을 출산한 것이다. 여종은 주인의 대가 끊기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친딸과 주인집의 아들을 몰래 바꾸었다. 그리고 관가에는 딸을 낳았다고 허위 보고를 올렸다.
주인집 아들은 '박씨 성을 가진 노비의 자식'이라는 뜻의 '박비(朴婢)'라는 이름으로 외가에 숨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자라났다. 세월이 흘러 성종 대에 이르러 사육신 가문에 대한 유화 조치가 내려지자, 성인이 된 박비는 비로소 조종에 자수하였다. 성종은 그의 충의를 높이 사게 되었고 죄를 사면하여 '박일산(朴壹珊)'이라는 당당한 이름을 하사하여 양반의 신분을 되찾아주었다. 이 기적 같은 희생 덕분에 순천 박씨 충정공파의 대는 끊이지 않고 유일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4. 역사의 행간에 묻힌 이름 없는 주인공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주인집 아들 대신 역적의 딸로 위장되었던 '여종의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 시대의 철저한 신분제와 남성 중심의 족보 문화 속에서, 이 아이의 이름이나 이후의 삶은 공식 실록이나 야사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다만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등 당대의 문헌은 이 극적인 사건을 기록하며 "서로 자식을 바꿈으로써 모두 살아남았다(易子이俱全)"라고 전하고 있다.
관가에는 딸로 보고되었기에 영아 살해의 화는 면했고, 비록 평생을 대구 관아의 고된 관비(官婢) 신분으로 거친 삶을 살았을지언정 목숨은 보존하고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글을 맺으며: 우리가 육신사에서 기억해야 할 것
오늘날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마을에 순천 박씨 집성촌이 번성하고, 우리가 참배한 '육신사'가 당당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이어져 내려올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한 임금을 향한 사육신의 숭고한 충절뿐만 아니라, 주인집의 혈육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친딸을 기꺼이 내어준 어머니(여종)의 눈물겨운 대의(大義), 그리고 가문을 대신해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관비로 생을 바친 그 여종의 딸이 흘린 거룩한 희생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영월 장릉을 참배하며 느꼈던 뜨거운 감동의 뿌리가 바로 우리 고장 대구의 육신사에 닿아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 행정동우회 회원 모두가 이 위대한 역사의 숨결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보았으면 한다.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영상반 김성성호 단장과 일행은 2022. 2. 9 육신사를 참배하였다. 앞서 2012. 5.2, 대구행정동우회에서도 단체로 다녀왔으나 미흡한 실정이다.
2026. 7. 17, 구미 연지생태공원에 다녀오면서 오후 3시경 육신사를 방문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짧은 시간에 100밀리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져 차량 창문을 열 수 조차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적정 시기에 다시 방문하여 세부적인 관찰과 사진을 촬영하여 다시 올릴 예정이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참고사항)
읽어보시는 분들께서 위 글 내용 중 수정사항이 있을 경우, 댓글로 남겨주시면 조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사진 1)
精忠 : 사사로운 마음이 없이 순수하고 한결같은 충성.
大節 : 대의(大義)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지키는 절개
萬古 : 오랜 세월을 통해 변함이나 유례가 없음.
綱常 : 삼강과 오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이른다.
(관련 사진 2)
참고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순천박씨 집성촌 하빈 묘골(카페 : 내일의 어제)(2026. 7. 15) - 사진과 문장 일부
대구광역시 드론 사진 캡쳐
Gemini
감사합니다
첫댓글 우리 고장 달성군 하빈면 묘리의 육신사(六臣祠)에 대한 뿌리깊고 애절한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육신사에 대한 유서깊은 스토리를 담고 있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료를 얼마전 행정동우회 영월 장릉일대 투어와 연계하여 자상하게 알려주신 가야돌 이태희 국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대경상록봉사단 김성호 단장님과 함께한 현장 영상들도 잘 보았습니다. 역사적 흔적을 따라 당시 시대의 흐름과 절박했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청암님 감사합니다.
이의익 시장님의 탁월하신 역사의식과 애국정신에 감동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과거 동우회 흔적과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영상반의 기록,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기록도
찾아보았습니다.
소설과 영화도 이와 같은 극적인 사실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위대한 서사시입니다.
당대에 겪은 무고한 역사, 피비린내 나는 오욕의 정치가
바르게 평가 받을 때가 반드시 오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 대쪽 같은 선비의 표상이자 사육신의 기틀이 된 창산부원군 박중림 선생과 그 아들 박팽년 선생의 가문은 만고에 푸른 절개로 역사에 영원히 흐를 것이며,
멸문의 화 속에서 박팽년 선생의 갓난손자 박비(훗날 박일산)를 가슴에 끌어안고, 자신의 딸과 바꿔치기하여 산골 촌락에서 노비로 키워내며 대를 잇게 한 여종의 눈물겨운 의리와 위대한 결단 또한 청사에 길이 빛날 숭고한 기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청암님께서 좋은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6년 7월 19일 무더위와 장마로 계속되는 여름철에 이 글을 남깁니다.
댓글과 추가설명으로 더욱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님의 탐구력은 Wonderfull !
더운날씨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