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울었습니다 외 / 천윤식
숲에서 나무가 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맨살에 소소리바람맞았다 해서 우는 게 아닙니다 그까짓 볼이 에이는 아픔이야 지나면 그만이지만 가슴속 피멍이 들어 썩어 문드러지는데 커다란 나무라 할지라도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파람에 쩡~ 하고 금 가면 얼음도 슬퍼 우는데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희망이 불타는 서울의 한복판 밤거리에서 꺾인 159송이 국화꽃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허공에서 영문도 모를 낱말들이 톡 하고 떨어지는 걸 바라만 봐야 했다
수천수만 가지 감정들이 복장을 후벼 파는 느낌 앞에서 어찌 울음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거리에 비가 내리고 눈 내리는 날에도 유가족들은 걷고 또 걷는 시간에 해석되지 않은 악마 같은 말들을 쏟아내는 이들이 시시덕대는 세상을 보고 어찌 슬픔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나무야 봄이면 새싹이 트고 얼음이야 겨울 오면 다시 얼겠지만 꽃 같은 인생을 꿈꾸다 저 하늘의 별이 된 다시 못 올 길을 떠난 이들 앞에서 나도 울었습니다
지금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고 또 물어봐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어처구니없는 세상
콕 뱅킹 콕 하고 눌렀더니 콕 하고 사라지는 사랑이 있다 혹여 따라오는 이 없나 휘 한 번 뒤돌아보고 콕 뱅킹 창에 비밀번호 누르고 메뉴를 클릭 클릭하면 낯선 느낌이 첫사랑 닮았다 편리성에 매료돼 자칫 콕 하고 누르는 순간 주지 말아야 할 정을 준 대가는 쓰라린 상처만 남아 가슴을 후벼판다 한번 콕 하고 눌렀다 하면 어디든 도망가 숨어버리는 속성이 있어 1단계 2단계 3단계까지 속도를 조절 못 한 사랑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확인된 사랑도 일부러 밀고 당겨보듯 호흡을 한 박자 늦춰 와락 끌어안아도 늦지 않으니 꼭 그렇게 해보시라 불같은 사랑을 한다고 그냥 불 질러 버리면 정말로 다 타버리고 남는 건 잿더미뿐이다 콕 하고 누르기 전 찐 사랑인지 꼭 확인하고 나서 콕 뱅킹 버튼을 콕 콕 콕 눌러요 안 그러면 큰일 나요
-시 현실 카페어서 옮김 *천윤식 *2021《시현실》 등단, 시집으로 『꺼꾸로 매달린 생선, 비린내만 난다』 『사막 으로 가는 길』 2021《코로나 19 예술로 기록사업》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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