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60/200109]‘생활글’도 문학文學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생활글 작가’라고 작명하여 자처自處하는 것도 사실은 우스운 일이다. 그냥 하루나 사나흘마다 ‘일기日記’를 쓰는데 불과한 데도 과대포장한 것같아 늘 민망하다. 2004년 가을 ‘잠깐 백수白手’ 시절 쓰기 시작한 일기를 고교동창 블로그에 올리고부터 친구들의 응원을 받은 게 이런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고마운’ 친구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데, 어느날 전화로 꼭 만나자고 했다. 중고등학교 6년을 같이 다녔지만, 한번도 같은 반을 해본 적이 없어 친한 편이 아니었다. 서울 강남 ‘군산횟집’에서 회정식으로 점심을 거하게 먹은 후 커피까지 우아하게 마셨는데, 최신 개업한 최첨단 사우나 티켓과 함께 신권 1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며 사양하지 말고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 친구는 나의 일기를 읽으며 힘이 났다며 ‘독서료讀書料이니 눈 딱 감고 받아주기’를 강권했다. 독서료라는 단어가 있을까? 세상에 이런 일이?
그래서였다. 거의 날마다 ‘백수일기’(나중에 ‘자유인自由人 일기’로 제목을 바뀌었다)를 썼던 것은. 글 쓰는 것도 일종의 ‘버릇’일 것이다. 애초부터 새벽잠이 아예 없는 나는, ‘할 일’이 없으므로 습관처럼 컴퓨터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들겼었다. 사전에 어떤 내용으로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이, 그저 앉아 있으면 무슨 내용이든 써졌다. 언젠가는 9개월 동안 가족을 비롯해 친구들에게 장문의 편지들을 써내려갔다. 무려 108통을. 200자 원고지로 2000장이 넘었으니 도대체 몇 장을, 무슨 글들을 그리도 써내려간 것일까. 나도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편지는 조금 추려서『은행잎 편지 108통』이라는 제목으로 펴내 수신인受信人들에게 선사를 한 적도 있다.
물론 ‘글감’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루를 살면서 뭔가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글감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조금씩 골똘히 생각해보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글을 누군가 읽으면, 읽는 이들의 상당한 공감共感sympathy, 적당한 분량short content, 신선미freshness, 약간의 재미interest, 약간의 교훈敎訓lesson, 약간의 정보information가 있어야 ‘쓸모있는(영양가influence 있는) 일기diary’가 되지 않겠느냐는 나름대로의 원칙原則은 있었다. 늘 잡다하게 길어져서 문제이지만.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마디로 줄기차게 제목subject을 달리하며 써왔다. 영양가 없는 짓이었을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사랑’을 얘기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나를 아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흘려보낸 달구름(세월)이 억울하지 않으리라.
약간의 보람도 있었다. 비록 수필가隨筆家essayist로 정식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신문 지상에 ‘생활칼럼니스트’라는 신조어로 칼럼도 숱하게 썼으며, 명색이 수필집이랄까, 6권을 펴냈으니 말이다. 대학교에서 일할 때에는 직원공모전에 뽑혀 인세印稅로 5백만원을 받은 적도 있었고, 출판사 강권으로 두 권을 펴내기도 했지만, 자비출판 2권은 아내의 지청구가 두렵기도 했다. 일종의 ‘종이 낭비’(한 권의 책을 찍어내기 위해선 몇 그루의 나무가 죽어갈 것인가?)로, 일종의 공해公害pollution가 아니겠냐는 의견에 ‘글의 가치價値value’ 측면에서 동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기똥찬 일 하나는 적시摘示해둔다. ‘가족family’을 주제로 한 글들을 다 모으니 책 두 권분량이 족히 되었다. 아버지 구순생신과 부모의 결혼 70주년을 기념하여 추리고 추려 비매품으로 만든 가족문집『총생들아 잘 살거라』가 KBS 다큐「인간극장」제작팀 어느 눈 밝은 PD의 눈에 띄여, 5부작이 방영된 것이다. 지금껏 가장 잘한 효도孝道라 할까? 이것만큼은 ‘자랑질’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고향에 안착한 요즘, 나의 고민苦悶이 아주 심각해졌다. 고민은 딱 이것, 이런 글을 앞으로도 계속 써야 할까?이다. 정말로 지인知人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우수마발牛溲馬勃의 ‘공해 글’이 아닌가, 시시때때로 생각하며, 컴퓨터책상에 앉기가 겁이 난다. 오죽했으면,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수필평론가에게 자문諮問을 전화로 1시간여 받기도 했을까. 그분은 내 고민을 다 들은 후, 격려와 함께 올바른 조언助言을 해주셨다. 나의 졸문 몇 편을 후루룩 읽어보았다며, 일기 형식의 생활글도 좋지만, 어떤 사물이든 현상에 대해 성찰省察하는 시간을 보다 더 많이 가진 후 써보라는 것이다. 단순히 일기가 아닌 ‘일기문학日記文學’이 되려면, 많은 성찰 끝에 문학적 표현이 가미加味가 되어야 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을 하게 만드는 ‘긴장미緊張美’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읽기를 추천하는 작품으로 정말로 대단한 수필가인 목성균의「약속」을 새로이 읽어보라 했다. 진정 글을 사랑하면 ‘보인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한 일기도 충분히 문학의 한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해주어 고마웠다.
2차대전의 참상을 기록한『안네의 일기』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당당히 등재되었지 않는가. 조선조 미암 유시춘과 유만주의 ‘흠영’이라는 일기도 훌륭한 ‘일기문학’인 것을. 도움도 되고, 힘은 났으나, 나의 글이 과연 우리 수필문학계에 좁은 문인 등단登壇을 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다보니, 일상의 버릇처럼 쓰던 생활글이 자꾸 터덕거려진다. 왕년에 서양의『아미엘 일기』를 읽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준수한 철학자의 일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소로우의『월든』도 사실 2년여 동안 자급자족 살면서 쓴 ‘숲속의 일기’가 아니었던가. 부족한 것은 나의 내공이고, 성찰이며, 문학적 표현 그리고 글의 영향력 여부일진저. 그러나 ‘뼈를 깎는 노오력’은 나의 체질이 아니므로, 오호라, 그것이 나의 한계인 것을 어찌 하리. 이 새벽, 통재痛哉.
첫댓글
전라고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 그래 그렇치,하고 공감하며 감동하며 재미를 만끽한다. 때로는 짧은 댓글 한마디에도 눈물이 핑 돌만큼 감동한다. 이는 우리의 감성코드 사고방식의 코드가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시대에 태어나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현재의 위치에 와 있다.
우리에게는 우천의 생활글이 베스트셀러이며 최고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