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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차 文化遺産踏査; 國立民俗博物館-宗親府(4-2)
國立民俗博物館(3-2)
(50) 간찰(簡札) -1720년
地方官으로 나가있는 아버지가 집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春窮期에 저장된 곡식이 조금 있는데 이것이 다른 사람의 비방을 받을까 걱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51) 토시 -여름용 -19세기
*추위나 더위를 막기 위해 팔목에 끼는 물건으로, 겨울용은 비단, 무명, 모직 등을 겹으로
포개 사용하거나 솜을 넣어 사용하고, 여름용은 저고리 소매에 땀이 베지 않고 통풍이
잘 되도록 등나무, 대나무, 말총 등을 엮어서 만들었다.
(52) 강과 바다, 염전(鹽田)에서 사용하는 도구
여름이 되면 江과 바다에 물고기나 魚貝類가 풍부하여 이를 잡거나 채취한다.
특히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을 川獵이라고 하며, 여름날 경치 좋은 강가에서 술과 잡은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 등 음식을 먹고 더위를 식히며, 찬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濯足과
함께 하루를 즐기는 여름 나기 놀이이다. (*獵: 사냥 렵 *濯: 씻을 탁)
바닷가 鹽田에서는 강한 햇볕이 내려 쬐는 이 때가 일년 중 가장 질 좋은 소금을
만들 수 있는 시기로, 강한 햇볕과 적당한 바람으로 만들어진 소금은 醬類, 김치 등
우리나라 발효음식에 매우 중요한 천연조미료이다. (*醬: 장 장)
(53) 무자위[水車]
낮은 곳의 물을 보다 높은 지대의 논∙밭으로 퍼 올리는 농기구로, 鹽田에서는 바닷물을
퍼 올릴 때 사용한다.
(54) 김매기용 호미 등 農器具
잡초를 제거하는 김매기는 농사에서 가장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는 힘든 농사일로
세벌 매기(*세 번째 김매기)가 끝나면, 절반의 성공을 自祝하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피로를 풀며 하루를 즐기는 ‘호미씨앗’을 한다.
농사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새참’을 먹을 때 곁들이는 막걸리 한 사발은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淸凉劑 역할을 한다.
(55) 방립(方笠)-도롱이[蓑衣]-나막신[木履] (*蓑: 도롱이 사 *履: 신 리 )
=방립(方笠): 가는 대오리(*가늘게 쪼갠 댓개비)를 엮어 큰 삿갓모양으로
만든 모자
=도롱이[蓑衣]: 비 올 때 입는 雨備로, 안쪽은 촘촘하게 엮고 거죽은 풀의
줄거리를 늘어뜨려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
=나막신[木履]: 진 땅에서 신는 신발로 앞뒤 굽이 높아 발이 물에 젖지 않는다.
(56) 용두레[戽斗] -20세기 (*戽: 두레박 호)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퍼 올릴 때 사용하는 도구.
(57) 낮잠용 기구. 죽침(竹枕)-발-평상(平床)-죽부인(竹夫人) (*枕: 베개 침)
=죽침(竹枕): 대나 등나무로 엮어 만든 베개로, 여름철 대청에서 낮잠을 즐길 때에 흔히
사용한다.
=발: 가늘고 긴 대오리를 엮어 만든 가리개로, 햇볕을 가려주고 바람은 통는 일종의 커튼이다.
=평상(平床): 밖에서 앉거나 누워 쉴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寢床.
=죽부인(竹夫人): 대오리로 길고 둥글게 얼기설기 엮어 만든 기구로, 여름 밤에 서늘한
기운이 돌게 하기 위하여 끼고 잔다.
(58) 베틀. 명주, 무명, 모시, 삼베 등의 피륙을 짜는 틀.
(59) 물레. 솜이나 털 따위의 섬유를 자아서 실을 만드는 기구.
(60) 부보상 임명장(負褓商 任命狀) (*負: 질 부 *褓: 포대기 보)
*負褓商: 고대사회 이래 商品集散地에서 구입한 日用 雜貨物을 지방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에게 파는 行商人.
(61) 놀음판 도구. 투전패(鬪戰牌)-골패(骨牌)-골보(骨譜)
=투전패(鬪戰牌) -18~19세기
두꺼운 종이나 얇은 대쪽에 사람∙동물∙벌레 등을 그리거나 글귀를 적어 끗수를 표시한
놀음도구이다.
=골패(骨牌) -19세기
두 명 또는 네 명이 실내에서 하는 놀음으로 32개의 패에 각각의 수를 표시하였다.
=골보(骨譜) -20세기
골패 놀음하는 규칙을 적어놓은 문서.
(62) 도량형기(度量衡器). 저울과 저울추
=저울 -19~20세기
물체를 매달고 추를 움직여 저울대의 평행을 맞추어 무게를 재는 기구.
=저울추: 저울의 평행을 맞추는 일정한 무게의 추로, 官에서 만들지 않고 개인이 만들어
무게는 약간의 誤差가 있었다.
(63) 자리 짜기
자리는 사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바닥에 까는 것으로, 시장에서 坐板으로 사용하는
거친 멍석,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무늬를 넣은 花紋席 등 그 형태가 다양하며, 재료도
왕골·부들·짚 등의 여러 가지가 쓰인다.
(64) 갓일
갓은 조선시대 남성들이 쓰던 모자로 말총과 대나무 재료로 만든다.
갓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총모자일, 양태일. 총모자와 양태를 맞추는 입자일로 나뉘며,
각 과정은 총모자장, 양태장, 입자장 등 각 匠人들의 分業으로 이루어진다.
*총모자: 말총으로 만든 모자.
*양태: 망건, 탕건 따위의 총칭.
*입자: 성인 남자가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
(65) 소반(小盤)
소반은 우리나라 坐式生活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방가구의 하나로,
식기를 받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쓰는 작은 상으로 다른 가구와 달리 階層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소반은 産地에 따라 그 지역의 특색이 뚜렷한데 황해도 海州, 전남 羅州, 경남 統營은
소반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리형태에 따라 다리가 하나뿐인 '외다리 소반', 다리가 셋인 '三脚盤', 다리 밑 발 부분을
개의 발같이 조각한 '개다리 소반[狗足盤]', 범의 발같이 조각한 '虎足盤', 말의 발같이
조각한 '馬足盤', 대나무 마디같이 조각한 '竹節盤', 잔치 때 쓰는 다리가 높은 '高脚床'이
있다.
또 상판의 모양에 따라 四角盤, 圓盤이라고 한다.
(66) 유기주발(鍮器周鉢) (*鍮: 놋쇠 유 *鉢: 사발/바리때 발)
*우리나라에서 각종 鍮器가 실생활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이며, 주발을 밥그릇으로
宮中과 班家에서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금의
주발형태가 만들어져 경제적 여유가 있는 庶民들도 여기에 음식을 담아 먹게 되었다.
반면에 班家나 富豪들은 주발을 맞추어 썼는데, 安城의 맞춤유기가 유명하여
‘안성맞춤’이라는 말까지 생겼으며, 안성 주발은 작고 아담할 뿐만 아니라 견고하고
재질이 좋아 광채가 은은했기 때문이다.
(67) 여성용 佩物. 삼작(三作)노리개-향갑노리개(香匣佩物)-장도(粧刀-노리개(佩物) (*佩: 찰 패)
=삼작노리개 -18~19세기
여자들의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에 다는 장신구로, 세 개의 노리개가 한 벌이 되게 만든
노리개이며, 밀화∙산호∙옥∙금∙은 등으로 만들었다.
*蜜花: 밀랍 같은 누런빛이 나고 젖송이 같은 무늬가 있는 琥珀.
=향갑노리개[香匣佩物]: 향을 담은 향갑을 주체로 사용한 노리개.
=장도(粧刀) -18~19세기
남녀가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로,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차고 다녀 몸을
보호하거나 장식하였다. 때로는 젓가락을 달아 외부에서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였다.
=노리개(佩物) - 19세기
(68) 여성용 裝身具. -19세기
=도투락댕기: 新婦가 혼례 때 사용하는 댕기로 족두리나 花冠을 쓰고 쪽진 머리의 뒤쪽에
붙여 길게 늘어뜨린 뒷댕기이다.
=앞줄댕기: 혼례 때 비녀의 앞뒤에 감아 두 어깨에 걸쳐 늘어뜨리는 긴 댕기.
=댕기: 긴 머리에 묶어 내리는 데 쓰는 끈으로, 양쪽 끝이 제비부리처럼 뾰족하게 만든
댕기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땋은 머리에 사용했다.
=귀주머니: 조그만 소지품, 돈 등을 넣고 입술에 주름을 잡아 졸라매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장신구.
=수젓집: 숟가락, 젓가락을 넣어두거나 이동할 때 사용하는 주머니.
(69) 여러 가지 탈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주로 얼굴에 써서 扮裝에 사용하는 탈은 원시시대에
집단생활 할 때 여러 가지 종교의식에 神靈·惡鬼·妖怪·동물 등 비인간적인 것으로 가장하여
呪術을 행할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탈은 外敵이나 惡靈을 위협하기 위하여, 神의 존재를 표시하기 위하여, 죽은 사람을
숭배하고 죽은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하여, 토테미즘의 신앙에서 여러 가지 동물로
가장하기 위한 擬態에서 발생한 것 등이다.
우리나라 탈은 한국적인 표정을 지니고 골격과 용모가 잘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役에 따른 인물의 個性도 잘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河回탈의 선비·양반·각시·중·
백정 등이 그러하며, 그 가면들의 사실적인 조각수법은 우리나라 나무탈 중 逸品이다.
(70) 사냥도구[狩獵用具]
겨울철 함박눈이 내리면 마을 뒷산이나 깊은 산으로 사냥을 나가 설치해놓은 덫에 걸린
꿩을 잡으면 곶간에 매달아놓고 봄까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추운 겨울에는 많은 熱量이 필요해 사냥해서 잡은 꿩∙멧돼지 등으로 동물성 단백질로
보충하였다.
납평(臘平)날 잡은 짐승은 祖上께 먼저 바치고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臘平日: 冬至 지나 세 번째 맞는 未日.
(71) 목공기구(木工器具)
바쁜 농사일이 끝나가면 월동준비로 구멍 난 창호에는 창호지를 새로 붙이고, 곡식을
축내는 쥐를 막으려고 구멍 난 벽을 메운다
초가집은 새 볏짚으로 이엉을 이고, 기와집은 깨진 기왓장을 갈아 끼우고 잡초를 뽑아 준다.
집을 짓거나 수리할 때는 목수의 솜씨와 여러 가지 木工器具를 사용한다.
(72) 초가집[草家]. 지붕을 짚이나 억새풀로 이은 집.
(73) 너와집
지붕을 소나무나 참나무 등을 쪼개 기와처럼 쓰는 집으로 江原道 등에 많다.
*석판을 쓰는 청석너와집도 있으며 黃海道 등에 있다.
(74) 까치구멍집
공기의 유통과 채광을 위하여 토담집이나 귀틀집 용마루에 낸 둥근 구멍이 까치둥지를
닮았다고 ‘까치구멍집’이라고 하며, 平安道와 黃海道 일부, 嶺∙湖南지방 일부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
(75) 기와집
평면이 ‘ㄱ’자인 기와집은 中部地方을 비롯하여 嶺∙湖南 및 黃海∙平安道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76) 사랑방
(77) 안방
(78) 부엌
(79) 곳간[庫間]
겨울에 먹을 곡식과 봄에 뿌릴 씨앗을 보관하는 곳으로, 외부사람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출입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달아 穀物과 種子를 보호하였다.
(80) 장독대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재료로 사용하는 간장∙된장∙고추장 등의 醬類와 젓갈 등을 담은
질그릇을 두는 곳이다.
(81) 보자기, 정(情)
보자기는 물건을 싸거나 덮기 위하여 자투리 천이나 헝겊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그 형태는
여러 가지이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用具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거나 다른 이의 잘못을 덮어주는 情을 상징한다.
(82) 도자기(陶瓷器)-옹기(甕器)-사기그릇[沙器] (*甕: 독 옹)
=陶瓷器: 흙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이다. 1,300℃이하의
온도에서 구운 陶器와 1,300∼1,500℃에서 구운 瓷器로 나누며, 도기와 자기 및
沙器그릇, 질그릇을 통틀어 도자기라고 한다.
=甕器: 藥土라는 황갈색의 釉藥을 입힌 오지그릇과 질그릇의 총칭이다.
=沙器: 白土로 빚어 구워 만든 매끄럽고 단단한 그릇
제3전시관: 韓國人의 一生
(83) 신방(新房)
婚禮를 마친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을 보내는 방으로, 花鳥圖∙花蝶圖 병풍에 한 쌍의 원앙을
수놓은 鴛鴦衾枕을 깔고, 나비촛대에는 華燭을 밝혔다. 화조도나 화접도 병풍은 부부화합을
뜻하며, 원앙금침은 한 쌍의 원앙처럼 부부가 오래도록 함께 살기를 염원한 뜻이 담겨 있다.
(*蝶: 나비 접 *衾: 이불 금)
(84) 태 항아리
아기가 태어나면 吉日을 택하여 胎를 담은 내항아리와 내항아리가
들어가는 외항아리 그리고 출생과 태의 매장 시기를 기록한 誌石을
함께 묻은 다음 胎碑를 세웠다.
(85) 돌
돌은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는 첫 생일로, 아이가 무사히 첫 생일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고 장차 잘 자라기를 바라는 뜻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86) 문자도(文字圖) -조선 후기
儒敎的 德目인 三綱五倫과 관련된 문자를 그림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孝·悌·忠·信·禮·義·
廉·恥 여덟 자의 字劃과 관련 있는 교훈적 내용의 古事를 形象化하여 그린 그림이다.
(*悌: 공손할 제 *廉: 청렴할 염 *恥: 부끄러울 치)
(87) 혼례(婚禮)
엄격한 儒敎社會인 조선시대에는 중매결혼으로 남녀의 生年月日時를 적은 四柱單子로
宮合을 맞추고 婚書紙와 禮物을 담은 納幣函을 보내 약혼을 증명하였다. (*幣: 화폐 폐)
혼인절차는 신랑이 신부집에 나무기러기[木雁]를 보내는 전안례(奠雁禮), 맞절하는
交拜禮, 合歡酒를 마시는 합근례(合巹禮) 순으로 진행하고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초례(醮禮)를 치렀다. (*雁: 기러기 안 *奠: 정할 전 *巹: 술잔 근 *醮: 제사 지낼 초)
(88) 신부가마[四人轎] (*轎: 가마 교)
婚禮를 마친 新婦가 신랑 집으로 가는 新行에는 화려하게 꾸민 가마 四人轎를 타고 갔는데
가마 위에는 厄運의 접근을 막는 호랑이가죽이나 虎皮무늬 이불을 얹었으며, 가마 안
방석 밑에는 厄을 쫓는 숯과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목화씨를 놓았다.
(89) ‘대대로 책 읽는 씨앗이 되어라’ –星山李氏 凝窩 李源祚의 가족 이야기
(*凝: 엉길 응 *窩: 움집 와)
고려 개국공신 李能一을 始祖로 하는 星山 李氏 집안은 조선 前期에 경북 星州 한개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래 退溪學을 계승한 李源祚가 증조부 李碩文의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無愧心)’, 祖父 李敏謙의 ‘대대로 책 읽는 씨앗(讀書種子)’이라는 가르침을 이어받아
그의 아들들은 父子, 兄弟 등 가족간의 교육으로 代代로 학문을 계승하였다.
星山 李氏 집안은 이런 家學을 근본으로 오늘날까지 어버이 섬김과 배려로 가족과 이웃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家風을 이어왔다.
(90) 응와선생 영정(凝窩先生 影幀)-이원조 시호교지(李源祚 諡號矯旨)
=凝窩先生 影幀 -1865년 –복제품 (*凝: 엉길 응 *窩: 움집 와)
耆老所에 들어갔을 때인 74세의 李源祚를 昌慶宮 靈壽閣에서 圖畵署의 畵工이 그린
초상화이다. (*耆: 늙을 기)
=李源祚 諡號矯旨 -1881년 (*諡: 시호 시 *矯: 바로잡을 교)
高宗 18년(1881) 李源祚에게 定憲의 諡號를 내리는 문서이다.
‘定’은 ‘순일한 행실이 어긋남이 없다(純行不奭), ‘憲’은 ‘善을 행한 것이
기록할 만 하다(行善可記)’는 뜻이다. (*奭: 클 석)
*李源祚(1792~1871): 본관 星山. 자 周賢. 호 凝窩. 시호 定憲.
純祖 9년(1809) 別試文科에 乙科로 급제, 憲宗 3년(1837) 正言을 거쳐 哲宗 1년(1850)
慶州府尹에 재직 중 慶尙左道 암행어사 金世鎬의 탄핵으로 削職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大司憲, 工曹判書에 이르렀다. 저서에 <凝窩文集>이 있다. (*削: 깎을 삭)
(91) 懸板; 晩歸亭, 晩歸亭記, 吾與齋, 踵雩軒, 水調樓 (*踵: 발꿈치 종)
=晩歸亭 편액: 小訥 曺錫臣이 憲宗 13년(1847)경 慈山府使 李源祚의 부탁을 받고 써준
扁額이다. (*訥: 말 더듬거릴 눌)
=晩歸亭記 현판: 李源祚가 60세 되던 哲宗 2년(1851) 伽倻山 자락의 山水를 사랑하여
晩歸亭을 지은 경위와 ‘吾與齋’, ‘踵雩軒’ 등의 명칭을 상세하게 기록한
記文이다. (*雩: 기우제 우)
=吾與齋 편액: 晩歸亭 대청 중앙에 있던 편액으로 李源祚가 썼다. <論語> ‘先進編’에 孔子의
제자 曾點이 ‘늦은 봄에 舞雩에서 바람 쐬고 읊조리며 돌아오겠다’고 하자
공자가 ‘나(吾)는 허락(許與)한다’고 감탄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踵雩軒 편액: 晩歸亭 왼쪽(동쪽)에 있던 편액으로 <論語> ‘先進編’에 孔子의 제자 曾點이
‘늦은 봄에 舞雩에서 바람 쐬고 읊조리며 돌아오겠다’는 古事에서 따온 것이다.
=水調樓 편액: 晩歸亭 오른쪽(서쪽)에 있던 편액으로 宋나라 蘇軾이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王을 그리워하면서 쓴 ‘水調詞’에서 따온 것으로 李源祚가 썼다.
(*軾: 수레 앞턱 가로 댄 나무 식)
(92) 침병, 硯床(벼루집), 벼루, 書案 -응와선생문집 필간지감첩 (*硯: 벼루 연)
=침병(枕屛): 李源祚가 자신을 修養하고 경계하는 글을 쓴 병풍
=書案 *책을 펴 보거나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書室用 平坐式 책상.
=凝窩先生文集 畢刊志感帖: 高宗 28년(1891) 5월 <凝窩先生文集> 刊行을 시작하여
高宗 29년(1892) 6월 22권 12책이 완성되자, 그 감회를 읊은 둘째 아들
敏窩 李驥相과 손자 이관회 등의 詩를 모아놓은 것이다. (*驥: 천리마 기)
(93) 약리도(躍鯉圖) (*鯉: 잉어 리)
躍鯉圖는 아침 해가 떠오를 때 물속에서 거대한 잉어가 물결치면서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식으로 표현된 民畵로, ‘登龍門圖’,
‘魚鯉變成龍圖’라고도 한다,
<後漢書> ‘李膺列傳’편의 ‘龍門에 오르면 용이 된다’는 登龍門에 관한
古事는 어려운 關門인 과거급제를 통해 官職에 나아가 立身出世한다는 것에
비유된다. (*膺: 가슴 응)
약리도는 선비들의 사랑방에 주로 장식하였으며, 학문수련에 필요한
벼루, 필통 등 문방구 문양에도 많이 등장한다.
(94) 이만기 홍패(李晩耆 紅牌)-시권(試券)-어사화(御賜花) (*耆: 늙을 기 *賜: 줄 사)
=李晩耆 紅牌: 哲宗 3년(1852) 李晩耆(1825~1888)가 文科 丙科 13인에 급제한 증서이다.
*紅牌: 과거를 치른 최종 합격자에게 내어주던 증서로, 붉은 바탕의 종이에 합격자의
성적, 등급, 성명 등을 먹으로 썼다.
=試券: 李晩耆가 28세때인 1882년 文科 시험에서 작성한 답안지로 그의 四祖(父, 祖父,
曾祖父, 外祖父)외 시험번호(九洪), 시험점수(三下)가 적혀 있다.
=御賜花: 과거시험 文∙武科 及第者에게 왕이 下賜하는 종이꽃.
(95) 초헌(軺軒) (*軺: 수레이름 초 *軒: 집 헌)
조선시대에 從二品 이상의 관리가 타던 수레로, 命車, 木馬, 軺車, 軒軺라고도 한다.
고위 관리의 위세를 상징하던 초헌은 가마와 비슷한 형태이나 채가 아주 길며 외바퀴가
밑으로 달려 있어, 보통 여섯 명~ 아홉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움직였다.
초헌은 좌석이 높게 올라 있어, 초헌을 타는 관리의 집에는 솟을 대문과 함께 문턱을 없애
초헌을 타고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96) 武官. 민광승(閔光升) 肖像畵
*조선 후기의 武臣 閔光升의 초상화로 가슴에 單虎胸背가 있는
常服을 입고 冠帽를 쓴 모습을 그린 全身交椅坐像이다. 그림의 인물은
호랑이가죽을 교의 위에 깔고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胸: 가슴 흉 *椅: 의자 의
액자 뒷면에 ‘辛亥 十二月 十五日’이라고 墨書된 漢字가 붙어있다.
(97) 文官. 권협(權悏) 肖像畵 (*悏: 쾌할 협)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권협의 초상화
조선시대에는 학문과 儒學을 崇尙하여 武官보다 文官을 우대하였다.
문관은 최고 正一品 領議政까지 올라 조정의 人事權뿐만 아니라 軍事指揮權까지
장악하였으며, 따라서 文科試驗을 거쳐 文官職에 나아가는 것을 최고의 출세이자 영광으로
여겼다.
-제70차 文化遺産踏査; 國立民俗博物館-宗親府(4-3)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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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듣고도 금방 잊어버렸는데 고산의 수고해서 준비해 올린 설명을 보니 생각이 납니다 감사히 잘 보갑니다 역시 문화답사엔 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