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2023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
데뷔 40주년에 펴낸 문학의 결정체 『샤이닝』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는 수상 이후 단기간에 엄청난 관심을 폭발시키며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고 밝히며 그에게 노벨상을 안겼고, 이 소식은 로마 바티칸 복도까지 울려퍼졌다. 2023년 10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노르웨이 작가의 “헌신적인 문학적 목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그에게 축하 서신을 보냈고, 예상치 못한 소식에 포세 역시 수상 이후 가장 기억에 남을 만큼 놀랍고 영예로운 일이라며 언론사 인터뷰에서 언급해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포세의 작품들은 전 세계 50여 개국에 소개되고 1000회 이상 무대에 올랐다. ‘21세기 사뮈엘 베케트’ ‘입센의 재래’ ‘셰익스피어 이후 연간 최다 공연 기록 갱신’ 등 숱한 입소문을 타며 뜨겁게 부상중이다. 2024년 2월 22일자 [스크린데일리] 기사에 따르면, 거장 영화감독 에릭 포페가 26년 전 그가 쓴 최초이자 유일한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기로 했다. 이로써 오늘날 소설, 시, 동화, 에세이 등의 출판물부터 연극을 넘어 영화까지 아우르며 다방면에서 그의 전모를 거듭 새롭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욘 포세의 최신작 『샤이닝』은 작가 데뷔 40주년 2023년 발표한 소설로, 본문 길이가 채 80쪽도 안 되나 1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걸작 ‘7부작Septologien’의 결정적인 압축판으로 평가받는다. 이 간결하고 놀라운 미스터리는 삶과 죽음의 문턱이 지천에 놓인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일상의 숭고함에 새삼 눈뜨게 하는 한 편의 아름답고 기이한 우화다. “나는 일곱 살 때 사고로 죽을 뻔했다. 이건 내게 근원적인 경험”이라고 말한 욘 포세는 전작을 통해 늘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고 한 삶(탄생)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샤이닝』은 그의 문학세계의 결정적인 특징이 모두 망라된, 가장 쉬운 단어로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다룬 또하나의 수작이다. 희곡 『검은 숲속에서』로도 펴낸 바 있어,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글쓰기의 주제를 엿볼 수 있는 정수가 담긴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짧지만 강렬한 이 소설은 “욘 포세에 다가가기 위한 완벽한 입문서”([텔레그래프]), 새 노벨 수상자를 발견하고 싶고 그의 작품의 드높은 경지를 탐험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상적인 디딤돌”([크낵 매거진] [데 스탠다드 데어 레터렌])로서, 한 언론사 말마따나 “냉정하고 아름답게 디자인된 이 소설에는 포세의 작품을 독특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다”.([드 티트])
목차
샤이닝 7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 침묵의 언어_욘 포세 85
옮긴이의 말: 더 많은 고요를 듣기 위하여 103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저 : 욘 포세 (Jon Fosse)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1959년 노르웨이 헤우게순 출생. 욘 포세는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극작가로,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3년 프랑스에서 국가공로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007년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100명의 살아 있는 천재들’ 리스트 83위에 올랐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뿐만 아니라 시, 아동서,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방면의 작품을 쓰고 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연극은 전 세계에서 수천 번 이상 공연되는 국제적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1983년 소설 『레드, 블랙Raudt, svart』으로 데뷔했고 『병 수집가Flaskesamlaren』,(1991), 『아침 그리고 저녁Morgon og kveld』,(2000), 『보트 하우스』, 『납 그리고 물』, 『멜랑콜리』, I, II, 『저 사람은 알레스』,, 『불면』,과 『올라브가 꿈을 꾼다』,, 『피로』,를 묶은 『트릴로지 등을 발표했으며 1994년에는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Og aldri skal vi skiljast』,를 발표했다. 이후, 『이름』, 『누군가 올 거야』, 『밤은 노래한다』, 『기타맨』, 『어느 여름날』, 『가을날의 꿈』, 『나는 바람이다』 등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올랐다.
뉘노르스크 문학상, 도블로우그상,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브라게상 명예상, 국제 입센상, 스위스 아카데미 북유럽문학상, 유럽연합 문학상,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공로 훈장에 이어 노르웨이 국왕이 내리는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을 수훈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살아 있는 100인의 천재’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연극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1975년 베르겐(Bergen)으로 가 그곳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호르달란(Hordaland) 문예창작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로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포세는 현대의 사회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이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가족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 같은 우리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들이다. 세대 간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말로는 결코 종합적으로 고찰될 수 없는 것, 즉 죄와 실망의 원천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품에는 일견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삶의 그림들이 단순한 구조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에는 많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며, 항상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이, 남자(남편), 여자(아내), 소년, 소녀. 여기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할머니, 그리고 때때로 이웃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으며 특별한 고유의 성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항상 단순한, 일반적인 사람들이며, 그들의 관계는 한눈에 파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평범함과 보편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경건하게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고 그 관계가 또한 철저하게 관찰되고 파악될 수 있어서 보편성의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만큼 포세가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현실은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현실의 단면은 굵은 윤곽으로 이루어진 담담한 그림으로 그려지나 그 사이의 여백에는 인간의 삶이 가진 구체적인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대인이 만들어내는 의사소통 부재의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며 인간 의식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원형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포세의 언어는 배우와 연출자에게 커다란 도전이 된다. 그의 언어는 철저하게 압축되고 축약된 형태로, 문장의 조각들,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완벽하게 구두법 없이 쓰인 그의 텍스트는 해석과 리듬의 모든 힘을 배우와 연출자의 손에 넘겨준다. 포세는 삶의 본질적인 것이 파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리들을 제거한다. 그의 언어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말의 고유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모노톤의 문장들, 부분적으로는 스타카토처럼 던져지는 문장들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구조들, 인간의 내적인 심리 구조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 응축된 형태로 노출된다. 여기에 포세는 침묵의 순간들을 적절히 이용한다. 인물들의 대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반복 사용되는 ‘사이’의 침묵, 이 행간을 인물들의 말 없는 진실이 넘나든다. 소리와 소리 없음의 독특한 리듬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통해 포세는 인간의 삶이 가진 진정성은 무엇인지 묻는다.
저서 중 『3부작Trilogien』(2014)은 그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소설 작품으로 「잠 못 드는 사람들Andvake」(2007)과 「올라브의 꿈Olavs draumar」(2012) 그리고 「해질 무렵Kveldsvævd」(2014)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것이다. 이 작품은 2015년 북유럽 문학 최고의 영예인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욘 포세는 2023년까지 세 권의 책으로 완성될 『7부작Septologien』을 집필하고 있다. 『보트하우스Naustet』(1989)는 욘 포세의 초기작으로, 화자인 ‘나’와 어릴 적 친구인 ‘크누텐’, 그리고 ‘크누텐의 아내’ 세 사람의 관계를 그려낸 소설이다. 작중 화자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강렬한 도입부는 현대 노르웨이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것으로 회자된다.
역 : 손화수 (Hwasue S. Warberg)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98년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크빈헤라드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현재 스테인셰르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부터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노르웨이번역인협회 회원(MNO)이 되었고, 2012년과 2014년에 노르웨이문학번역원(NORLA)에서 수여하는 번역가상을 받았다. 2019년 한·노 수교 60주년을 즈음하여 노르웨이 왕실에서 수여하는 감사장을 받았고, 2021년에는 스타인셰르시에서 수여하는 노르웨이예술인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과 2022년에는 노르웨이예술위원회에서 수여하는 노르웨이국가예술인장학금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시리즈와 『가부장제 깨부수기』 『벌들의 역사』 『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유년의 섬』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자연을 거슬러』 『초록을 품은 환경 교과서』 『나는 거부한다』 『사자를 닮은 소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나는 공허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 두려움.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나는 왜 두려워했는가. 너무 두려워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할 만큼. 그럴 엄두도 못 낼 만큼. 나는 차를 타고 이 숲길로 들어왔고 길이 끝나는 지점쯤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 p.9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최대한 빨리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런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왔을까.
--- p.21
이제 나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리고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만 바라보고 있다.
--- p.18
나는 제자리에 서서 눈앞에 자리한, 한 치의 틈도 없이 조밀하고 짙은 어둠 속을 바라본다. 나는 어둠이 변하는 것을 본다, 아니, 어둠이 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둠 속의 무언가가 어둠과 분리되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자세히 보인다. 무언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사람일까. 그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 p.26
나는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나를 따라오고 있나요. 존재가 말한다: 나는 당신을 따라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말한다: 그럼 당신은 뭘 하고 있는 거죠. 존재가 말한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 p.43
나는 제자리에 서서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침묵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하지만 침묵이 말을 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자면 침묵도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침묵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 p.49
나는 고요함의 소리를 듣고 싶다. 침묵 속에서는 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내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때, 나는 들을 수 있다.
--- p.59
이 숲속에 있는 건 나다, 나는 이곳에 혼자 있다. 그렇다, 이 숲속에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나는 이 숲을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 p.61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아무도 나를 저지할 수 없다. 아무도. 그런데 나는 왜 여기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가.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 p.67
이 숲은 폐쇄된 방이고, 숲속에 있지만, 그 방에는 경계가 없는 것 같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일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 그렇다, 이것 또는 저것. 어머니 또는 아버지. 순백색의 존재 또는 검은색 양복의 남자. 내가 이 숲속에 머물든지 또는 이 숲에서 빠져나가든지.
--- p.70~71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이건 이해가 아니라 단지 경험만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 말이다. 하지만 일어나지는 않고 단지 경험만 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은 어떤 면에서는 실제고, 우리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한다.
--- p.73
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고 있다, 반짝인다는 말, 순백색이라는 말, 빛을 발한다는 말의 의미도 사라진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 의미라는 것, 그렇다, 의미라는 것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모든 것은 단지 거기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모두 의미 그 자체다,
--- p.79~80
우리는 맨발로 무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한 숨 또 한 숨, 어느 순간 숨이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호흡하는 무를 빛처럼 뿜어내는 반짝이는 존재뿐이고, 어느새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우리다, 각각의 순백색 속에서.
--- p.80~81
출판사 리뷰
* 〈뉴요커〉 〈파이낸셜 타임스〉 2023 최고의 책
* 한국어판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 수록
“내게 글쓰기는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이다.
우리는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침묵도 언어다.” _욘 포세
삶과 죽음의 문턱에 놓인 작은 경이와 미스터리
어둠 속에서 만나는 존재라는 빛
“『샤이닝』은 죽음에 대한 짧은 걸작이다. 한마디로 위대한 문학이다.” _〈닥블라데〉
『샤이닝』은 어느 초겨울 저녁, 삶이 지루해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갔다가 어둡고 깊은 숲속 눈밭에 고립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차바퀴가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그는 공허함을 느끼며 차 안에 앉아 있다가 점점 두려워진다. 급기야 날은 어두워지고 눈까지 내린다. 온 길을 되짚어보던 그는 절박한 마음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숲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피로와 추위와 배고픔에 방황하던 그에게 예기치 않게 신비한 존재들(순백색의 흰빛을 내뿜는 존재,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노부부,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불가해한 이 만남 속에서 그는 이 숲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포세 특유의 절제된 단문과 명징한 묘사, 음악적인 독백의 문체, 공회전하듯 반복적으로 되감기되는 좌절과 희망, 믿음과 의심, 자책과 회심의 문장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강력한 몰입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이 소설 속 상황은 단테의 『신곡』 「지옥」의 1곡 중 1~3행 도입부(“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길에 있었네”)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나’는 삶의 지루함과 공허함, 어둠 속 두려움과 고립감, 낯선 것들에 대한 불안과 신비, 사람에 대한 기대와 좌절 등 인간이 살면서 보편적으로 겪는 근원적인 감정을 이 어두운 숲길에서 체험한다. 대책 없이 무턱대고 이 길에 들어선 자신을 탓하며 절망하다가도, 앞길에 자신의 차를 빼내주고 길을 찾아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절박하고도 허망한 기대를 놓지 못한다. 밤하늘의 달과 수많은 별 아래, 눈 내린 숲속 나뭇가지가 드리운 바위를 보고도, 길을 잃은 누군가 쉬어갈 존재의 자리(집)를 그린다. 마지막에 가서 느닷없이 나타난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과의 동행은 어느새 숲속에서 홀로 헤매는 생명을 더욱 경이롭게 비추는 또하나의 신비다. ‘나’는 이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이 존재들이 왜 ‘나’와 함께하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독자 역시 거듭 생각하며 마치 체험하듯 따라가게 한다.
욘 포세 문학의 모든 특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 『샤이닝』
: 침묵과 열린 해석, 마침표와 쉼표 사용법, 반복적인 쉬운 단문의 여운
한국어판 부록으로 실린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 침묵의 언어」에서 보듯, 포세는 자신의 글쓰기를 “귀 기울여 듣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침묵도 언어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침묵”이라고 밝힌 그는 자신의 숱한 극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이’를 통해 바로 이 “귀 기울여 듣는 일” “침묵”을 표현해왔음을 강조했다. 이 소설에서도 사람 하나 없이 고립된 어두운 숲 한가운데서 듣는 고요, 정적, 침묵이 작품과 문장 전체를 관통한다. 이는 혼자 읊조리는 ‘나’의 내면독백에 자연스레 독자를 집중시키면서 그 사유의 눈부신 시적 여정, 무無의 순백색 존재 속으로, 나와 부모님과 검은색 양복의 신사가 함께하는 마지막 숨결 속으로 데려간다. 최면을 거는 듯한 반복적인 단문과 낯선 존재들과 나누는 대화는 선문선답 같기도 하고 기도문처럼 읽히기도 한다.
또하나 포세의 문장들에서 중요한 게 있다면, 바로 마침표와 쉼표의 사용일 것이다. 마침표를 거의 쓰지 않은 전작들과 달리, 『샤이닝』에서는 독특하게도 쉼표와 마침표가 이례적으로 자주 등장한다. 첫 장면의 차가 길바닥에 처박힌 상황의 ‘멈춤’에서, 쉼표로 끊길 듯 말 듯 깜빡거리며 나아가다가 행동과 생각이 정지되는 데서는 마침표가 뜸해지다, ‘나’의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생각이 점점 가속화하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마침표 수는 극명히 줄어든다. 반복적으로 곱씹는 생각, 율동적인 단문, 문장부호의 절묘한 쓰임 역시 그의 문학적 시그니처로, 침묵과 해석의 다양성을 부각시키는 주요 장치다. 로런 그로프는 〈가디언〉을 통해 이 소설을 “현실적인 독백, 하나의 우화, 기독교적 요소가 가미된 알레고리, 다음날 아침 고통스럽게 회상하게 되는 악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며 “읽을수록 명확한 단음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모든 가능한 해석이 한꺼번에 울려퍼지는 화음이 된다”면서, 단일한 해석을 거부하는 것을 포세 문학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짧지만 이 모든 특성이 어우러진 『샤이닝』은, 힘들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욘 포세가 건네는 “사색으로의 초대장”이자, 가장 그다운 방식의 문학적 안녕일 것이다.
작가의 말
“우리는 귀를 기울여 들을 때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침묵입니다. 이미 말했듯, 우리는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내게 글쓰기는 귀를 기울여 듣는 일입니다. 글을 쓸 때 나는 결코 사전에 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듣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글쓰기가 음악을 연상시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 나는 내 글 속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재창조하려 노력했습니다. (…) 어떤 의미에서는 글이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항상 인지하고 있었고, 어쩌면 내 생명을 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 글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_「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 중에서
추천평
『샤이닝』은 소설이면서도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듭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저 너머의 세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빛과 불멸의 힘, 두려움과 황홀함을 동시에 맛보는 신비스러운 영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그토록 진지하고 간절하게 묘사하는 숲에서의 체험은 결국?‘길 위에서의 인간’ ‘순간 속의 영원’을 갈망하는 구도자이며 순례자인 우리?모두의 이야기로 읽힙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운에 잠시 두 손 모아 하늘을 보게 되는 하얀빛의 이야기 『샤이닝』입니다.
- 이해인 (시인, 수녀)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했다.
-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샤이닝』은 현실적인 독백, 하나의 우화, 기독교적 요소가 가미된 알레고리, 일상의 작은 기적에 의해 다소 완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그 경험의 공포가 단어 아래서 고동치고 있는, 다음날 아침 고통스럽게 회상하게 되는 악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포세의 소설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단일한 해석을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읽을수록 이야기는 명확한 단음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모든 가능한 해석이 한꺼번에 울려퍼지는 화음이 된다.
- 로런 그로프 (가디언)
욘 포세의 문장은 입센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쉬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무엇보다 『샤이닝』은 강렬한 시적 단순성을 지니고 있다.
- 뉴욕 타임스
포세는 화자의 손이 닿지 않는 세계에 대한 찰나의 암시를 통해 인류가 가장 추구하기 어려운 것들, 그중에서도 확실성과 불가침성을 탐구한다. 그의 명료한 산문은 이야기의 모호함에 친숙하고도 계시적인 깊이를 불어넣는다.
- 뉴요커
불안하고 서정적인 이 짧은 책은 포세의 작품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입문서이자, 그의 실험적이고 위대한 작품에 다가가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욘 포세의 문장은 말을 하는 대신 관찰하고, 서술하고, 서사를 쌓아나가며 의식 그 자체처럼 흘러간다. 짧은 분량임에도 『샤이닝』이 이토록 중대한 작품으로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단어를 따라, 그 리듬을 따라 계속 나아가고 싶어질 것이다.
- 파이낸셜 타임스
욘 포세의 작품에 다가가기 위한 완벽한 입문서.
- 텔레그래프
우리는 진귀한 문학적 위대함을 마주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욘 포세의 이 위대함에 노벨상을 수여한 것이다.
-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샤이닝』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심리 상태를 묘사해내는 포세의 재능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역작이다.
- 아이리시 타임스
『샤이닝』은 포세의 가장 큰 장점인 일상적인 것과 숭고한 것을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지닌 힘의 중심에는 어떤 영적인 진지함이 있다.
- 선데이 인디펜던트
포세의 작품은 읽는 이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주는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듯 인간의 영혼을 밝게 비춰준다.
- 마누엘 빌라스 (스페인 소설가)
노벨상을 수상한 포세의 심리학에는 형이상학적인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 디 차이트
이 이야기를 통해 포세는 스스로를 내던진 사람의 마음 상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외로움과 세상에 지친 모습을 슬프고 아름답게 표현해낸 빛나는 그림.
- WDR
욘 포세, 이보다 더 그다운 작품은 없을 것이다.
- WDR 5
『샤이닝』은 사색에 잠기도록 하는 멋진 초대장이다.
- NDR
포세를 읽는다는 것은 긴 호흡으로 삶을 다시 헤아려보고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시작하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문장을 읽는 일이다.
- 함부르거 아벤트블라트
『샤이닝』은 죽음에 대한 짧은 걸작이다. 한마디로 위대한 문학이다.
- 닥블라데
욘 포세는 차가 눈밭에 고립된 한 남자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예술적인 기량을 마음껏 펼친다. 결국 우리는 작품 속에 담긴 상징을 해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얼마나 아름다운 동시에 고통스러운지를 상기하기 위해, 그리고 한 발짝 물러나 그 미스터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포세의 글을 읽는다.
- 모르겐블라데
새 노벨상 수상자의 미로 같은 작품들 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냉정하고 아름답게 디자인된 이 소설을 출발점으로 삼아보라 기꺼이 추천한다. 이 책에는 이 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을 독특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다.
- 드 티트
눈이 녹아가는 어느 겨울 저녁에 읽을 책을 찾고 있다면, 『샤이닝』은 탁월한 선택이다. 당신은 추위를 느끼고, 눈雪을 바라보고, 다가오는 어둠에 대한 공포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 책을 읽을 때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것이다. 새로운 이미지와 연상, 어쩌면 약간의 유머까지도.
- 닥사비센
그 남자는 환영을 보고 있는가? 수술대 위에 마취된 채 누워 있는 것일까? 임박한 죽음을 꿈꾸고 있는 걸까? 포세는 답은 제시하지 않지만, 방황하는 정신의 영원한 흔들림을 만트라 같은 문장으로 형상화한 반복적인 산문으로 매혹을 선사한다. 베케트의 기도문처럼 읽히는 『샤이닝』은 포세 작품의 드높은 경지를 탐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디딤돌이다.
- 크낵 매거진
주제적으로 『샤이닝』은 죽음, 외로움, 믿음, 정체성이 거듭 화자를 엄청나게 몰아세우는 포세의 초기 작품과 맥이 같다. 하지만 작가는 그 어느 때보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창조해낸다. 천사 같은 인물과 스칸디나비아 동화 속 숲은, 그가 보통 모든 장식을 제거한 가정적인 배경과는 거리가 먼 마술적 사실주의를 지향한다. 따라서 80쪽에 달하는 이 소설은 새 노벨상 수상자를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상적인 디딤돌이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 데 스탠다드 데어 레터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