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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4일(주현절 후 두 번째 주일)
마가복음 1:1~15
복음의 시작이라
하늘사랑교회 주일예배 설교문
4페이지 설교형식
*설교 주제: 하나님이 복음을 시작하셨다.
*설교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년을 맞아야 한다.
제가 주중에 우연히 시계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궁금해서 가게에 걸린 벽시계들을 쳐다보았더니 시계가 다 죽어있는 겁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수많은 시계 중에 살아 있는 시계가 하나도 없다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게 주인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을 알려주려고 시계를 걸어놓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행인의 눈을 끄는 예쁜 시계를 전시하려는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수많은 시계 중 하나만이라고 시간을 맞추어 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날 저는 제 인생 시계는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잘 돌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혹시나 저를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해 드리는 고장 난 시계는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인생 시계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이번 주, 한 일간지에 올해 104세가 된 김형석 명예 교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이분이 어느 날 강연을 마치고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 “선생님, 정말 100세가 넘으셨습니까?”라고 묻더랍니다.
할 말이 없어서 “어머니께서 알려준 나이니까 맞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노인은 “저는 92세인데요…”라면서 떠나가더랍니다. 자기 나이와 비교해서 100세가 넘은 분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분이 100세가 넘으니 제주나 부산으로 비행기를 탈 때, 아주 난처한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기계가 이분의 주민증으로 예약한 탑승권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02살이 되기도 하고, 탑승권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직원이 한참 조사를 하더니, “세 자리 숫자는 컴퓨터에 나타나지 않아서 그럽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이분은 웃으면서 몇 년 지나면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김형석 교수가 지난 연말에 문학인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시를 낭송했다고 합니다. 이분과 윤동주 시인이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이분은 그날 낭송회에서 새해 소망을 말했습니다.
“앞으로 5년의 삶이 더 주어진다면, 나도 여러분과 같이 시를 쓰다가 가고 싶습니다.”
이분의 새해 소망은 시인이었습니다. 시다운 시를 쓰지 못하면 산문이라도 남기도 싶다고 말했습니다. 100세가 넘으면 1년이 과거의 10년만큼 소중해진다고 합니다.
-출처: 조선일보, 2024년 1월 13일 자, 사회면 기사, 김형석, “올해 104세,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올해로 104세를 맞는 김형석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1 Pages(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불 신앙이었다)
오늘은 신년 두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 절기 상으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념하는 주현절 후 두 번째 주일이기도 합니다.
올해 상반기에 우리가 묵상하는 성경 본문은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는 “복음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앞으로 마가복음을 통해서 복음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세상 곳곳에 퍼져 나가게 될지를 서술하겠다는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장을 읽으면서 제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광야(3절)”, “길(3절)” 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광야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생활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받은 학대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께 자유와 해방을 달라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길” 혹은 “대로”는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바다 가운데에 ‘큰길’을 내셨고, 큰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셨습니다(사 43:16).
다시 말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광야’와 ‘길’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출애굽 사건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정작 애굽을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어떤 자세를 보였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고서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불 신앙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했고, 때로는 음란했으며, 때로는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또 그들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로 우상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숭배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서도 불 신앙적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평가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불 신앙으로 인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음 세대인 출애굽 2세대들을 여호수아에게 맡겨 요단강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다시 이방인의 압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의 미래 적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나라를 잃고 먼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고국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이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는 없을까요?
2 Pages(우리들의 문제는 불 신앙이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우리가 작년 한 해를 돌아볼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는지를 정직하게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불안한 정치 지도자들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꺾일 줄 모르게 올라가는 물가가 문제입니까? 점점 더 예의와 도덕을 잃고 자라나는 다음 세대가 문제입니까?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끼면 그것을 개선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하지 않은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윌리엄 거널’이라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선행에 힘쓰고, 고행을 자초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영적으로 벌거숭이인지를 모른다.”
여러분,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남들보다 자신이 착하게 살기 위해서 힘쓰는 사람일수록 자기 의로움에 가득 차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내가 지키지 않은 계명이 있으면 대봐라.”라고 말합니다.
-출처: 김양재, 「새 말씀, 새 부대, 새 노래」 (두란노, 2011); 「생명의 삶」, (두란노, 2024년 1월호), 49에서 재인용.
그래서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주변 사람을 비판하고, 그들을 바꾸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정직한 자세로 자기의 모습을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비행기나 선박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비행기는 아까운 연료를 공중에 내다 버려서 기체를 가볍게 해야 살아날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선박은 침몰을 막기 위해서 배에 싣고 있던 짐을 바다에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깝다고 생각해서는 침몰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배에서 짐을 버릴 때는 그 기준이 있습니다. ‘가장 무거운 것, 가장 무가치한 것, 없어도 되는 것’부터 골라서 바다에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사람에게조차 값을 매겨버립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나만 아니면 돼”라는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덜 이익이 되는 사람, 효율이 떨어지는 사람, 덜 효과적인 사람’부터 버림을 당합니다.
-조명신, 「흔들려도, 다시, 오늘」 (좋은 씨앗, 2022); 「생명의 삶」 (두란노, 2024년 1월호), 81에서 재인용.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솔직하게 직면하지 않는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생각, 자기 의로움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치 엘리야처럼, 주의 길을 준비할 한 사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그의 이름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광야에서 거하면서 마치 구약시대에 활동했던 엘리야처럼 지냈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자기 뒤에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3 Pages(하나님이 복음을 시작하시다)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오는 유대인들을 향해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 성령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과연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인이 될 때 행해지던 의식이었습니다. 세례는 이방인 중에서 여호와를 경외하기로 한 여호와 경외 자들이 받던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받는 세례는 자신이 이방인처럼 죄인임을 시인하는 행위였습니다. 유대인이 받는 세례에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신현우, 「생명의 삶 플러스」, 두란노, 2024년 1월호, 20).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 갈릴리 나사렛에 계시던 예수님이 요단강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왔습니다. 이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과연 누가 예수님을 증언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증언하셨나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고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면 마가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증언했습니까? 1절에서, 마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 마가의 이 증언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요? 마가는 하나님의 증언에 기원해서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이제 마가는 마가복음 전체를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에게 증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곧바로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왜 성령께서는 세례받으신 예수님을 곧 광야로 몰아내셨을까요?
광야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 신앙으로 인해 실패한 장소였습니다. 광야는 출 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기도 했던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받았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다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광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마 4:3, 6).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친히 증거 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들짐승과 함께 계셨고,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셨습니다.
이사야 43장에서, 하나님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이루실 평화의 나라, 공존의 나라를 예언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20).”
예수께서 시험을 이기신 후에 들짐승과 함께 계셨던 장면은 마침내 메시아를 통해 이 세상에 평화의 나라, 공존의 나라가 도래하게 된 것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더는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진 나라가 아니라, 들짐승마저도 하나님을 존경하는 평화의 나라, 공존의 나라가 메시아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복음을 시작하신 분은 누구일까요? 마가가 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절).”라고 선언했을 때, 과연 이 복음을 시작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복음은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천사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복음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증언하심으로 복음이 사람들에게 널리 증언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광야로 내보내어 사탄의 시험을 받게 하심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시작하셨습니다.
4 Pages(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옛 시대는 지나가고, 새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19세기 영국교회는 세례받고 교인으로 등록하면 자동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고 천국 백성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했던 당시에 영국교회를 이끌었던 J. C. 라일(J. C. Ryle, 1816~1900) 목사는 하늘에서 떨어진 거룩한 폭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설교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없고,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사귐이 전혀 없는 게 분명한데도,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높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과 전혀 교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천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은 결코 여러분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천국의 행복은 여러분이 소유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천국은 여러분의 마음에 따분하고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회개하고 변화를 받으십시오. 천국에 대한 가장 확실한 준비는 예수님 과의 교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유기성, 「예수 소망」 (두란노, 2019); 「생명의 삶 플러스」 (두란노, 2024년 1월호), 25에서 재인용.
사랑하는 여러분, 옛 시대, 실패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시간이 우리에게 도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일하실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2024년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입니다. 죄로 인해 고장 나고, 엉망이 된 여러분의 인생 시계를 고치십시오. 여러분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답게 변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