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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3장은 나오미가 룻을 보아즈에게로 보낸다는 내용입니다.1) 3장은 1-5절, 6-15절, 16-18절의 3개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장면 1은 나오미의 집에서 일어납니다. 장면 2는 타작마당에서 일어납니다. 장면 3은 나오미의 집에서 일어납니다. 형식적이고도 구조적인 특징들이 이러한 분석을 입증해 줍니다.2)
룻기 3장 1-5절은 나오미가 룻의 남편 될 자를 밝히는 내용입니다.3) 나오미는 룻에게 좋은 안식처를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합니다.4)
1. 나오미가 룻을 보아즈에게로 보냅니다(룻 3장).
1) 나오미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룻 3:1-5).
룻기 3장 1-4절에 “너에게 좋을 안식처를 너에게 찾지 아니하겠느냐? 지금 그의 소녀들과 함께 있은 보아즈는 우리의 혈족의 사람이지 않느냐 오늘 밤에 그 보리들 타작마당을 까부르는(winnow) 그를 보고.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너의 옷을 너에 놓고 타작마당에 내려가며 먹기와 마시기에 그의 끝내기까지 너는 그에게 알려지지 아니할 것이고. 그것이 그의 눕는 때가 되는 때에 그가 거기 누울 그 장소를 너는 알았고 너는 들어갔고 그의 발치(feet)를 덮개를 벗겼고(uncover) 누우며 너의 행할 일을 그가 너에게 알릴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말하기를,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처를 찾아서 너를 좋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처”는 결혼을 통한 안정과 휴식의 상태를 가리킵니다(룻 3:1).5) 룻의 시어머니는 그 며느리 룻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밭의 주인인 보아즈가 타작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마시고 누워 잘 때에 그 장소를 알았다가 들어가서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시어머니에 말하기를 “당신이 나에 말씀하실 모든 것을 내가 행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룻 3:5).
2) 타작마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룻 3:6-15).6)
룻기 3장 6절에 “그리고 그녀가 타작마당에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그녀의 시어머니가 그녀에 명령한 모든 것과 같이 행하였습니다.
6-9절은 룻이 시어머니의 계획에 따른다는 내용입니다. 10-15절은 보아즈가 반응한다는 내용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계획에 행동(룻 3:6-7)과 말(룻 3:8-9)로 따릅니다.7) 보아즈의 반응은 역순으로 말(룻 3:10-13)과 행동으로 반응합니다.8)
그녀가 타작마당에 내려갔고 그 시어머니가 명한 대로 행하였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명령에 시비 걸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룻은 자기를 좋게 되라고 자기를 위해 말한 시어머니의 명령에 따랐는데 이렇게 고집 피우지 않고 시어머니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그가 먹고 마시고 그 마음이 좋고 그 더미의 끝에 눕기 위해 들어가고, 룻이 비밀에 들어갔으며 그녀가 그의 발치를 덮개를 벗기고 누웠습니다.
룻기 3장 8절에 “밤의 중앙에 되었고 그 사람이 놀라고 그가 뒤틀었고 보라 한 여자가 그의 발치에 누워 있는(was lying).”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너는 누구냐”라고 하였으며 그녀가 대답하기를 “당신의 하녀 룻이고 당신은 당신의 날개를 당신의 하녀 위에 펴 주소서, 이는 당신은 되사는 자임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룻 3:9).
룻이 보아즈에 말한 이 말에는 결혼이 암시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9)
그가 말하였기를 “야훼께 복을 줌을 받는 너는 빈약하든지 부유하든지 청년들 뒤에 가지 않게 그 첫째로부터 그 뒤에 너의 친절을 좋게 하였고. 너는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 그대가 말할 모두를 내가 너에게 행하겠으니 왜냐하면 나의 백성의 성문의 모두가 그대가 힘의 여자임을 알았음이고. 참으로 나는 되사는 자임이고 나로부터 가까운 되사는 자가 존재하노라. 그 밤 투숙하라 그 아침 안에 되었으며 만일 그가 너를 되살 것이면 좋고 만일 너를 되사기에 그가 즐거워하지 아니할 것이고 내가 너를 되샀노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니 아침까지 누우라”고 하였습니다(룻 3:10-13).
룻은 젊은데도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젊은이를 따르지 아니하였는데 룻은 젊은이와 결혼할 수 있었지만 시어머니에게 친절을 베푼 것입니다. 룻은 나이 든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열심히 이삭을 주웠습니다(룻 3:10).
룻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녀가 말할 모두를 그가 그녀에 행하리니 성문의 모든 자가 그녀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룻 3:11).
보아즈는 되사는 자고 그보다 가까운 되사는 자가 있습니다(룻 3:12). 더 가까운 자가 되사든지 되사지 않든지 룻을 되사는 자가 있게 됩니다. 어떤 방향이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니 결과는 좋을 것입니다(룻 3:13).
그녀가 그의 발치에 눕고 사람이 그의 동료를 분별하기 전에 일어나고 그가 “여자가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이 알려질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망토를 돌리고 붙잡을 것이라”고 하고 그녀가 붙잡고, 그가 보리들의 여섯을 측량하고 그녀 위에 두고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1') 나오미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룻 3:16-18).
룻기 3장 16절에 “그녀가 모두를 그녀에게 알린지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그녀의 시어머니에 들어온 후 모든 것을 그녀에게 알렸습니다. 그녀의 그가 친절을 베푼 일을 그 시어머니에게 말하였습니다(룻 3:17).
이렇게 룻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을 베푼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친절”이 히브리어로 “헤세드”며, “은혜”, “인애”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너의 알 때까지 거주하라 그가 평화하지 아니할 것이니 그가 그 일을 끝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8절은 베들레헴 집에서 룻의 계획 추진 결과 보고입니다. “친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친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대 이상을 행합니다. 보아스가 룻의 요청을 들어준다면 그것은 재정 손실을 의미합니다.10)
시어머니는 보아즈의 상징적 선물이 지닌 뜻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룻에게 결과를 확고히 기다리며 거주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보아즈의 진실성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감소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가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모호한 표현으로써 묘사합니다.11)
2. 보아즈가 룻과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1) 보아즈가 장로들을 성문에 앉혔습니다.
룻기 4장 2절에 “당신들은 여기에 앉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즈가 성문에 올라갔고 거기 앉고 그가 말한 되사는 자가 지나가고 그가 말하기를 “여기에 앉으시오”라고 하였고 그가 앉았습니다(룻 4:1).
1-12절은 보아즈가 룻과 나오미를 되살 권리를 얻은 내용입니다.12) 보아즈는 나오미를 돌볼 후손을 낳을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됩니다.13)
1-8절은 보아즈가 다른 되사는 자를 대면하는 내용입니다.14) 1-2절은 법정 회의의 개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룻 4:1, 신 25:7).15)
보아즈가 그 성읍의 장로들로부터 열 인간들을 취하였습니다(룻 4:2). 그리고 그가 말하였기를, “당신들은 여기에 앉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2) 보아즈가 경위를 설명합니다.
룻기 4장 3-4절에 “우리의 형제에 있은 토지의 부분(piece)을 팔았고. ‘얻어라’고 말하기에 내가 그대의 귀를 덮개를 벗길 것을 내가 말하였고, 그대가 되살 것이면 되사고 그대가 되사지 아니할 것이면 나에게 알려라 그대를 제외하고는 되사기에 없음이고 그대 뒤에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3-8절은 두 번째 일화로 이것은 3-4절과 5-8절로 다시 나뉩니다.16)
그때에 그가 그 되사는 자(closest relative)에 말하였기를(said), “우리의 형제에 속한 그 토지의 부분을 팔았노라”고 하였습니다(룻 4:3).
“팔았다”가 완료형이면 나오미가 그 토지를 언제 판 것이냐가 문제며, 여러 학자들은 이 문제로 고심하며 엘리멜레크가 판 것으로 해석합니다. 다른 학자들은 “팔았다”를 완료형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 보기도 하며, “팔아야 하다”(has to sell)나 “팔고 있다”(is selling)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 토지의 부분에 대한 그 권리를 팔고 있는 것입니다.17)
그 땅은 오래 비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녀는 그 땅을 되찾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팔린 땅을 원래의 주인이 값을 치르고 되살 수 있었고 원래의 주인에게 능력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되살 수 있었습니다.
3) 친족이 첫 번째 대답은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룻기 4장 4절에 “내가 되살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4) 토지를 되사려면 룻과 결혼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룻기 4장 5절에 “그녀의 손으로부터 그 토지를 그대의 얻기의 날 안에 그 죽은 자의 이름을 일어나게 하기 위해 그의 상속에 대해 얻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룻기의 관습은 법적인 형태라는 구속력이 있는 성격을 가졌습니다.18) 형수 혼인은 과부에게 법적 권리를 되찾아 주도록 허용했을 뿐 아니라 그것은 그 과부에게 법적 의무들을 지워 주었습니다(신 25:5, 창 38:11). 그 반면, 룻이 결혼하게 되었을 때는 형수 혼인의 의무가 없었습니다.19) 형수 혼인을 거절했을 때는 치욕적인 사회적 오명이 따라왔던 반면에, 룻기 4장에서 가까운 친척에게 그 어떤 오명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20)
이 구절은 신명기 25장 및 창세기 38장의 형수 혼인과 비슷합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그 자손을 낳아 주고 가족 재산의 상실을 막아 주고 과부의 안식처를 제공하여 주는 것이 형수 혼인의 3중적 목적입니다.21)
아들을 낳는 문제는 보아즈와 룻의 결혼 가운데에 연루되었습니다. 양도된 의무는 더 먼 친척을 덜 압박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결혼 목적은 죽은 자의 재산을 지켜 줄 상속자를 낳는 것입니다.22)
3') 친족이 두 번째 대답은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룻기 4장 6절에 “내가 나의 상속을 멸망시키지 않도록 되살 수 없으니 당신이 나의 되삼을 취하시오 내가 되살 수 없소.”라고 하였습니다.
“무르다”(게울라)는 “되삼”, “되찾음”(redemption)이라는 뜻인데 “되사다”라는 동사(가알)의 수동 분사며, “되삼을 받는”을 뜻합니다. “무르다”는 것은 판값을 돌려주고서 팔았던 것을 되찾는 것을 뜻합니다. 원래의 상태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있어 땅은 궁극에 팔릴(be sold) 것이 아니며. 만일 어떤 형제가 가난해질 것이고 그가 그의 소유로부터 판 때에 그 근친(近親)이 그의 형제의 판 것을 되사야 하였습니다(레 25:23-25).
지금 이 사람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 그에게 최우선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자신이 기꺼이 땅을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룻과 결혼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듣고 그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이었는데 형수와 결혼하여 태어난 아이를 형의 아들로 인정함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근친의 의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룻과 결혼하여야 한다는 조건에 그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룻이 아들을 낳으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엘리멜레크의 아들(손자)이 됩니다. 태어난 아들에게 오히려 자신의 상속에서부터 떼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일을 가리켜 자신의 상속을 멸망시키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상속에 손해를 보지 아니하려고 사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땅만을 사는 것으로 생각하였을 때에는 자신이 땅을 사겠다고 하였으나, 룻과 결혼하여야만 한다는 조건을 듣고서 사지 못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 되찾음에 대해서와 교환에 대해 모든 말을 일어나게 하게 사람이 그의 샌들을 벗었고(draw off his sandal) 그의 동료에게 주었고 이것이 이스라엘 안에 그 증명이었습니다(룻 4:7).
사거나 교환할 때에 사람이 그의 샌들을 벗어 그의 동료에게 주었으며 사거나 교환한 물품에 대해 추후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에 동료의 샌들이 그것을 사거나 교환한 사실을 확증하는 증거물이 됩니다.
이것은 당시 독자들에게도 설명이 필요할 만큼 오래된 풍습입니다.23)
되사는 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당신에게 얻으시오”라고 하였고 그가 그의 샌들을 벗었습니다(룻 4:8).
8절에 “사다”라고 번역된 단어(카나)는 “얻다”, “취득하다”입니다. 되사는 자는 자신이 얻지 아니하겠으니 보아즈에게 얻으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우선권을 포기하고 보아즈에게 얻을 권리를 넘긴 것입니다.
되사는 자가 그 샌들을 벗음으로써 그 권리를 양도합니다(룻 4:7-8). 친족으로서 먼저 되살 수 있는 자신의 합법적인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샌들을 벗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벗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샌들을 벗음으로써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샌들을 벗음으로써 “되사는 자”의 권리를 양도한 것입니다.
2') 보아즈가 사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룻기 4장 9-10절에 “당신들이 그 날 증인들이니 이는 내가 얻음이고. 그 모아브 여자 룻을 그 죽은 자의 이름을 일으키기 위해 아내에 얻었고, 당신들은 그 날 증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되사는 자”의 자격을 얻은 그는 땅을 샀으며 룻과 결혼하였습니다.24)
1') 장로들이 성문에 모였습니다.
룻기 4장 11절에 “그 성문 안에 있는 그 모든 백성과 그 장로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4장 11절에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라헬과 레아처럼 주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아브 여자 룻은 그녀가 그 시어머니에 말하였던 것과 같이(룻 1:16),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 여자인 라헬과 레아처럼 이스라엘 여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이스라엘의 국모들처럼 주시기가 축복되었습니다.
룻기 4장 12절에 “그대의 가문이 하나님께서 그대에 주실 씨를 통하여 타마르가 유다에게 낳은 아들의 가문처럼 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가문이 룻이 낳을 아들을 통하여 복된 가문이 될 것이 축복되고, 오늘날의 우리는 이 축복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을 받을 자를 축복할 때 그 축복처럼 그가 복을 받게 됩니다.
3. 룻의 결혼으로 가문이 회복되었습니다(룻 4:13-21).25)
1) 룻이 아들을 낳았습니다(룻 4:13).
룻기 4장 13절에 “그가 룻을 취하였으며 그녀가 그에게 아내에 되었고 그가 그녀에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임신을 주시고 아들을 낳게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4장 13-21절은 결론으로 ‘그 가문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26) 룻기 4장 13-17절은 오베드의 탄생을 기록한 끝맺음입니다.27) 서론 1장 1-5절의 ‘그 가문이 몰락되었다’는 것과 대칭 병행됩니다.28)
“그가 그녀에 들어갔다”는 구약성경에서의 성관계의 완곡어입니다. 아내의 장막이나 방에 들어가는 행동으로부터 기원이 된 것입니다.29)
하나님께서 “친절”과 “사랑”을 기적을 일으키는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친절을 보일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친절을 보이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절을 보이실 때 행복한 결말이 주어질 것입니다. 해피엔딩은 룻의 친절과 그녀를 향한 친절이 모두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2) 여자들이 아기로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하고 룻을 칭송합니다.
룻기 4장 14-15절에 “하나님께서 되사는 자를 그치게 하지 않으시고. 그는 너에게 영혼을 돌아오게 하고 너의 노령을 부양하는 자에 되었으니 너의 며느리가 아들들의 일곱보다도 더 좋은 그녀가 그를 낳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25장에는 땅에 대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친척의 땅이 팔렸을 때에 그것을 대신 되살 수 있습니다(레 25:25).30)
“되사는 자”는 히브리어로 “고엘”로, 친척의 땅을 되사는 자입니다. 가정이 어려움에 처하면 그것은 공동체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31)
이스라엘에서 파산하는 과정과 회복하는 절차를 자세하게 언급하는데 가난한 형제가 땅을 팔았을 경우 되사는 자가 와서 되살 수 있습니다.32) “되사다”를 한국어 개역 성경은 “무르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람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어도 그 판 땅을 되살 수 있는 제도입니다.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그 땅을 되살 수 있고 친척이 되살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불가능할 경우, 희년(禧年)이 되면 그 땅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땅 독점을 방지하고 조상의 땅을 계속 이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2장에도 고엘 제도가 어떻게 시행된 것인지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인에게 빚을 지고 종으로 팔릴 수도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형제나 삼촌이나 사촌 등이 빚을 갚고 그를 되사야 합니다.33)
되사는 자는 친척을 돌보고 옹호하며 변호인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룻기는 언약 공동체에 되사는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합니다.34)
룻기 4장의 땅의 회복에 대한 주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예표입니다.35) 예수님께서 죄에 팔린 우리를 되사셨고 우리는 땅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창조되겠고 우리는 이것을 소망합니다.36) 믿는 자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있는 천국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천국 안에 주어질 땅은 이 세상의 땅과 비교할 수 없는 값비싼 땅입니다.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고 절망이 사라지고 소망이 실현될 것입니다. 교회는 “되사는 자”로 굶주린 교인들을 먹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37)
성경은 “고엘”, 즉 “되사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기록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되사시는 분”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사야에 “구속자”라고 번역된 말이 “되사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38) 이스라엘을 “되사는 자”는 이스라엘의 “성별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시어머니가 그 젊은이에게 믿는 여자에 되었습니다(룻 4:16).
룻기 4장 16절에 “나오미가 젊은이를 취하고 그를 그녀의 품에 두었고 그녀가 그에게 믿는 여자에게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법적 절차로 해석한 사실을 타당치 못하게 만드는 것은 본문의 성격이 행복으로의 그녀의 회복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입니다.39) 룻은 자기가 포기한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려 받았습니다.40)“믿는”은 아기를 기르고 돌보는 여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4) 그 이웃 여자들이 아기의 이름을 지었습니다(룻 4:17).
룻기 4장 17절에 “그 이웃 여자들이 그의 이름을 ‘오베드’라고 부르니, 그는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오베드”는 “섬기다”라는 의미의 “아바드”에서 유래하였으며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5)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중대한 족보가 기록되었습니다.
룻기 4장 18-22절에 “그리고 이것들이 페레츠의 역사(history)들이라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고. 헤츠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암미나다브를 낳며. 암미나다브는 나흐숀을 낳게 하였으며, 나흐숀은 살마를 낳게 하였으며. 살몬은 보아즈를 낳게 만들었으며, 보아즈는 오베드를 낳게 만들었으며. 오베드는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게 한지라.”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4장 18-22절은 ‘다윗 왕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다윗 왕의 조상 룻의 세계를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셔서 영예의 지위에 두실 수 있으십니다. 외국인인 룻도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스라엘 신앙에 있는 참 보편성(普遍性)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도피처를 찾아야만 합니다.41)
다윗의 집은 대대로 베들레헴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42) ‘다윗의 계보’가 기록되었습니다.43) 이새 가문의 이야기가 그 지역에 유포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새의 할머니가 모아브 여인이었다는 사실은 흥미 있는 점입니다.44) 이 족보는 이 이야기에 적절한 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45)
룻기는 다윗 왕조의 초기 역사 시대에 다윗 왕궁의 사관이나 서기관이 다윗 가문 장로들로부터 자료를 얻어서 저술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판사기와 룻기는 하나의 책입니다. 히브리 전통에서 룻기는 맥추절(칠칠절)과 연결됩니다.46) 룻기의 요점은 하나님의 섭리와 돌보심의 표명 너머로 확대됩니다.47)
룻기는 판사시대의 어두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48) 룻기의 해피엔딩은 하나님의 “친절”과 사람들의 “친절”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친절은 신약시대의 “아가페” 사랑인데, 사랑은 친절한 것입니다. “사랑”과 “친절”은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줍니다. “친절”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는 데 통로로 쓰였습니다.49)
하나님께서는 불행한 일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50) 한 가정의 불행을 회복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여셨습니다. 지금 불행해도 더 좋게 회복시켜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여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되살 수 있는 권리는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최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그가 포기할 때 다음으로 가까운 친척에게 권리가 이양됩니다(룻 3:13). 룻은 되사는 자와의 결혼으로 아들을 낳고 그가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아들들을 잃었으나 손자를 얻었고 또한 다윗 왕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전능자”가 되시므로, 지금 괴로움 가운데 있어도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기다립시다! 우리가 친절을 보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절을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절을 통로로 전화위복이 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룻기의 핵심 용어는 “기업 무르다”로 번역된 “되사다”(redeem)입니다. 히브리어로 “되사다”는 “가알”이며 “되사는 자”는 “고엘”입니다. 우리는 룻기에서 “되사는 자”, 즉 “고엘”의 사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팔린 것 또는 팔린 자를 되사는 “고엘”에 구원자의 뜻이 있습니다. 노예로 팔린 자를 되사는 구원자가 “고엘”입니다.
구약의 고엘 사상은 이스라엘을 되사는 자가 존재함을 가르쳐 줍니다. 룻기에 나오는 “되사는 자” 사상은 다윗의 족보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윗의 족보가 예수 크리스트로 이어짐을 알고 있습니다. 크리스트께서는 죄인들을 되사시는 분이시며 죄인들의 구원자이십니다. 죄와 사망과 사탄에게 팔린 자를 값을 지불하고서 되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된 자들을 되사셔서 자유를 주십니다.
1)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37.
2)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39.
3)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37.
4)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38.
5)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41.
6)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39.
7)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61.
8)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62.
9)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269.
10) 김윤희, “룻 3장: 헤세드의 세 사람”, 『사사기·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07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522-525.
11)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03.
12)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05.
13)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11.
14) 김윤희, “룻 3장: 헤세드의 세 사람”, 533.
15)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12.
16)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14.
17)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46.
18)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58.
19)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59.
20)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60.
21)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61-362.
22)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363-365.
23) 성주진, “룻 4장: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사사기·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07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535.
24)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사사기·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07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400.
25) David A.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류근상 역 (고양: 크리스챤출판사, 2003), 188.
26)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189.
27) 김정훈, “룻기에 나타난 구원과 효”, 『사사기·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07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475.
28) Dorsey, 『구약의 문학적 구조』, 188.
29)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403.
30) 이문식, “설교적 관점에서 본 룻기 이해”, 『사사기·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07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409.
31) 이종록, “룻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고엘 제도”, 『사사기·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HOW 주석 07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435-436.
32) 이종록, “룻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고엘 제도”, 437.
33) 이종록, “룻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고엘 제도”, 438-439.
34) 김지찬,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9), 262-263.
35) 이문식, “설교적 관점에서 본 룻기 이해”, 412.
36) 이문식, “설교적 관점에서 본 룻기 이해”, 413.
37) 이문식, “설교적 관점에서 본 룻기 이해”, 414-415.
38) 이종록, “룻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고엘 제도”, 456-458.
39)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410.
40)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419.
41) 김정훈, “룻기에 나타난 구원과 효”, 476-480.
42)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395.
43)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422.
44)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395.
45)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425.
46)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396-398.
47) Bush, 『룻기·에스더』, WBC 성경주석, 426.
48)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400.
49)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401.
50) 김중은, “룻기의 구조 및 신학”, 402.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