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요일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예수님과 나병환자의 만남
가끔 혼자서 시나리오를 써 볼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그 재미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나병환자와 예수님의 조우(遭遇)에 관해서도 가능성 있는 얘기들을 한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1. 나병환자 1은 사람들이 싫어했고, 같이 있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불쌍한 나병환자 1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예수님에게 심려를 끼쳐 드리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100보는 되는 먼 거리에 떨어져서 눈물을 흘리면서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불쌍한 죄인이 엎드려 비오니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나가시다가 당신만이 들으시고 보실 수 있는 그 간절한 눈물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100보나 떨어진 나병환자를 찾아가십니다.
2. 나병환자 2는 머리를 좀 썼습니다. 사람들도 싫어하고, 예수님도 싫어할 것이라고 알았습니다. 갑자기 덮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모퉁이 바위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서시는 예수님 앞에 쏜살같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판사판입니다. 이레 죽으나 맞아 죽으나 마찬가집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고쳐 주신다던 데 나도 고쳐 주십시오. 안 그러면 여기서 한발자국도 못 갑니다.” 제자들이 혼비백산하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나병환자를 제압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제압하십니다. 그가 살기(殺氣)를 멈추고 얼른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청하고 나병환자는 치유를 받습니다.
3. 나병환자 3은 아주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나병이 생기기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을 뵐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냥 100보정도 뒤에서 예수님의 걸음걸이에 맞추어서 걸어가면서 예수님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자국을 맞추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예수님의 발자국을 찾으려고 모래와 자갈길을 더듬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따라오는 그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고합니다. '어떤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님의 뒤를 밟고 있다고', 예수님은 그를 부르십니다. 그의 겸손함이 그를 낫게 합니다.
4. 나병환자 4는 예리고 성문의 소경처럼 온갖 누더기와 겉옷을 뒤집어쓰고 산 밑에 앉았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또 그 행렬을 보고, 소리쳐 예수님을 부릅니다. “다윗 왕의 후손이신 예수님! 이 불쌍한 죄인은 가엾이 여겨주십시오.”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꾸중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더 큰 소리로 “다윗왕의 후손이신 예수님!”을 찾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불러 나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5. 나병환자 5는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과부는 나병에 걸린 아들 때문에 거의 죽을 지경에 까지 이릅니다. 매일 예수님께서 그 동네를 지나가실 것만 기다리고 있었던 차에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맨발로 달려 나와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잡고 사정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옷깃을 잡고 울면서 사정합니다. “주님, 제 자식 놈 좀 살려주십시오. 제가 그놈 하나 믿고 이날 이때껏 살아왔는데 그녀석이 나병에 걸린 지 벌써 몇 년째가 되었습니다. 이 가슴이 칼로 매일 베어내는 듯 아픕니다. 주님 저는 죽어도 괜찮사오니 저를 데려가시고 제 자식 놈 좀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과부의 아들도 낫습니다.
6. 나병환자 6은 선량한 군인 백부장의 부하였습니다. 전쟁터에서 나병에 걸린 그 부하를 위해 백부장은 별도로 부하를 잘 보호하고 돌봐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바쁜 일과 중에서도 예수님을 찾아뵙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예수님을 만납니다. 복음을 전하시느라고 지치신 예수님을 만난 백부장은 예수님을 완전히 존경하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부하 얘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한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부당하오나 제 부하가 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부하는 깨끗해집니다.
7. 나병환자 7은 오늘 복음에서 예시된 그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신다면”이라고 주님의 원의(願意)를 물었던 사람입니다. 이 복음말씀 때문에 한때 이런 부류의 기도가 유행한 적 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제가 요번에 로또 일등에 당첨될 수 있습니다. 눈 한 번 감고 찍어 주십시오. 주님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고자 하신다면 로또 일등이 대수겠습니까?" 로또에 당첨된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주님은 주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간청하는 나병환자를 다 고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들을 보실 수 있었건 보시지 못하셨어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 고쳐 주셨을 것입니다. 다만 믿음을 어떻게 고백했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믿음은 고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믿음은 진실이 더 중요할 테니까 말입니다.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25,21ㄴ).>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5,1-12
1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
2 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년까지 포위당하였다.
3 그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기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
4 드디어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군사들은 모두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통하여 아라바 쪽으로 갔다.
5 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그를 따라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6 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7 그는 치드키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가운데 살해하고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8 다섯째 달 초이렛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의 신하인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9 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10 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허물었다.
11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남은 무리를 끌고 갔다.
12 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축일6월 28일 성이레네오 (Irenaeus)
신분 : 주교, 순교자, 교회학자
활동 지역 : 리옹(Lyon)
활동 연도 : 130/140?-202년경
같은 이름 : 이레나이우스, 이레네우스
성 이레네우스(또는 이레네오)는 소아시아 지방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 출신으로 스승인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Roma)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에 의하면, 성 폴리카르푸스가 그를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했다고 한다. 리옹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성 엘레우테루스(Eleuther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몬타누스파(Montanism) 이단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인 성 포티누스(Photinus, 6월 2일)가 순교했고, 리옹으로 돌아온 그는 성 포티누스를 계승해 리옹의 제2대 주교가 되었다. 그 뒤 20여 년간은 다행히 박해가 멈추자 그는 선교 사업에 전념해 리옹 시민의 거의 대부분을 개종시켰다고 한다.
리옹 지역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프랑스 지방에 널리 퍼진 영지주의(Gnosticism) 이단과도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가 쓴 저서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 성 이레네우스는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호교 교부로 손꼽힌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인 “이단 논박”과 “사도적 선포의 증명”(Demonstratio Apostolicae Praedicationis)에서 사도들의 전승을 충실히 전해주었고, 그리스도 중심의 수렴 사상을 펼쳤으며,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강조하면서 모든 교회는 로마 교회와 일치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한 중재자였다. 특히 교황 성 빅토르 1세(Victor I, 7월 28일)가 로마와 같은 날짜에 부활 대축일을 지내지 않는 안티오키아 신자들을 파문하자, 동방교회의 전통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그들이 단순히 고대의 관습을 따른 것이라며 서로의 이해를 강력히 호소해 평화를 보존하도록 했다. 그는 또한 유아세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교부이다. 그는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라고 강조했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그가 202년경 리옹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성 이레네우스의 적극적인 선교 활동으로 리옹 교구가 번성하고 이단의 기세도 꺾일 무렵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가 다시 일어났다. 그로 인해 리옹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고, 이미 고령이었던 성 이레네우스 주교도 장렬히 순교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주님에게서 오는 평화’라는 이름의 뜻처럼 성 이레네우스는 일생을 평화와 일치를 위해 헌신한 목자요 교부로서 영적 · 신학적으로 동방과 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은 2022년 1월 21일 교황청 시성성의 의견을 받아들여 동방에서 태어나 서방에서 주교 직무를 수행한 성 이레네우스에게 ‘일치의 학자’(Doctor unitatis)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동방 가톨릭 및 정교회에서는 8월 23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이레네오 (Irenaeu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