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슨 요양보호사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나는 오래전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어도 요양보호사를 직업으로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 과정은 이렇다. 설명이 다소 길 수도 있겠다. 나는 2002년 말에 한국을 떠나 2017년 여름이 되어 돌아왔다. 그동안 몇 번 한국을 방문하긴 했어도 적응이 필요했다.
그동안 못 봤던 지인과 친지도 만나고 책 읽기와 여행 등으로 한 1년쯤 푹 쉴 생각이었다. 서너 달쯤 지나자 좀이 쑤신다. 일을 안 하니 일상이 더 늘어지고 흐트러진다고 할까.
구직센터에 갔다. 고용복지센터라고도 하던가? 인터넷으로 해도 되지만 뭐하는 곳인가 확인도 할 겸 방문을 했다. 서류를 접수하면서 그랬다. 일자리가 급한 건 아닙니다. 직원은 무척 친절했다.
접수하고 돌아서는데 다음 차례 남자가 내가 깜박한 휴대폰을 돌려준다. 오후에 근처 50플러스 센터로 강좌를 들으러 갔다. 이곳도 정보 입수 겸 나들이 삼아 두어 번 왔던 곳이다.
강좌 주제는 나를 찾아서, 신중년의 새출발 어쩌구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오전에 구직센터에서 스쳤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이것도 인연이라 할 수 있는가.
강의장 입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믹스 커피를 타다가 우린 서로를 알아 보고 웃었다. 강좌 끝나고 그이 제안으로 술집으로 갔다. 오후 다섯 시쯤이라 낮술이라 해도 되겠다.
첫 술잔부터 그는 "나는 되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사는 게 재미도 없구요."
나는 이 한 마디에 바로 마음을 놓았다. 적어도 이 사람은 자기를 포장하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신기하게도 나이까지 같다.
이런 사람 친구해도 되겠다 생각하던 차에 그가 먼저 친구를 제안하며 바로 말을 놓았다. 둘은 묘한 끌림에 술이 들어가면서 점점 친근함이 더해졌다.
그가 겪어온 얘길 들으니 정말 되는 게 없는 사람이었고 실패와 상처의 후유증으로 사는 재미가 없을 듯했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산 사람에게 더 빨려들었다.
이후 몇 번 더 만남이 있었고 어느 날 그가 카톡을 보냈다. 돌봄 전문가 입문 과정이 개설되었다며 함께 듣자는 말에 바로 오케이했다.
일주일에 2번 8주 수업이었다. 무료는 아니지만 강의료가 비싸지는 않았다. 나와 친구는 이 과정이 끝나면 돌봄센터를 창업할 목적이었다.
수업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술집에서 어떻게 창업을 하는지 이런저런 정보로 대화 소재가 늘었다. 재가방문요양서비스가 어떻고, 주야간보호서비스는 무엇인지 등,,
4주쯤 지나 그는 취업이 되어 중도 하차를 했다. 나중에 친구가 하는 말은 요양서비스 분야 창업이 만만치 않고 설사 창업을 해도 성공이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하기야 이 분야가 블루오션이었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기회가 왔을까. 실기 수업 때 그가 늘 파트너가 되어 상대역을 했는데 다른 사람과 하니 어색했다.
나는 강의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끝까지 들어 수료증을 받았다. 첫 강좌에 30명이었는데 수료증 받는 사람은 절반쯤이다. 몇 번 결석을 해도 출석 규정비율을 채우면 수료증을 줬다.
이 강좌는 실기 위주라 여러 곳을 다녔다. 난생 처음 안심치매센터, 노인복지회관, 요양보호센터, 주간돌봄센터 등, 언제부터 공공기관 이름에 센터가 붙었다. 하긴 동사무소도 주민센터가 되었다.
체험 수업도 했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무거운 조끼를 입고, 뿌옇게 보이는 안경을 쓰고 정해진 코스를 갔다 오는 등, 미리 늙어 보고 병든 사람을 이해하는 체험이다.
그곳에서 서글서글한 중년 여성의 사회복지사 한 분을 알게 된다. 수업 중엔 물론 수료 후에도 내가 문의를 하면 꼼꼼하게 답변을 해줬다. 지금도 이메일 몇 줄 상담하면 열 줄의 정보를 준다.
수업을 들을 때 만난 강사는 물론 체험학습 때 만난 사회복지사, 돌봄센터장, 요양보호사 등 관련자들은 문의를 하면 성심껏 알려준다. 일종의 영업비밀이 없다.
그 분에게서 얻은 결론은 내가 먼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그분이 반색을 하며 소개한 곳에 가서 면접을 보고 다음 모집 차에 등록하기로 했다.
얼마 후 나는 취업을 했다. 싼 맛에 채용된 것이다. 그 직장을 한동안 잘 다니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회사는 급격히 어려워지고 몇 달 후 사장이 인력을 줄이겠다고 했다.
내가 제일 먼저 그만 두겠다고 자원을 했다. 사장은 고맙다면서 몇 달 실업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게 배려를 했다. 그때 나는 최연장자였고 지금 직장에서도 최고령 직원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딸 기회로 삼았다. 그런데 코로나 탓에 강좌가 멈춤이라 쉽지 않았다. 되는 게 없군,, 그때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도 문을 닫았다.
해야 할 일을 평생 미루면서 살았기에 쉴 기회만 오면 해야지 했던 게 참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막상 놀면 그게 그거다. 집콕도 하루이틀이지 탈출구는 등산이었다. 정말 그때 산이 없었다면,,
나는 70까지는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현 직장에서도 눈칫밥을 먹을 생각은 없다. 나이 많다고 밀려나든 스스로 그만 두든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는 생각으로 산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 사회복지사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에 나이 제한은 없단다. 그래도 한 살이라도 건강할 때 하고 싶다. 다행히 건강하다. 40대와 험산을 올라도 뒤쳐지지 않는다.
요양보호사가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제대로 돌 볼 것인가. 요양보호사가 임금도 낮고 대접도 엉망이라 파출부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단다.
꼭 취업이 아니더라도 봉사활동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요양보호사는 취업 시장뿐 아니라 봉사자도 드물다 한다.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여성이라 남자가 필요한 곳이 많다고 했다.
내 인생이 늘 그랬듯이 돌발 상황도 있겠으나 한 살이라도 건강할 때 자격증 따서 나설 생각이다. 지금 직장에서 그럴 리 없지만 조금 눈치를 주고 푸대접 받는다 싶으면 때려치고 말이다.
첫댓글 포장 없이 쿨한 유현덕님 응원합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평소 생각하고 있던 거라서 속마음을 술술 풀어낼 수 있었네요.
점심은 근처 한식뷔페집에서 맛나게 먹었답니다.
좀 늦게 갔더니 자리가 없어 조금 기다렸다 먹었지요.
그것도 합석으루다,,
원래 그 집은 워낙 손님이 많아 합석도 감지덕지라는,,^^
아직 새파랗구먼요 머 ㅎㅎ
요양보호사 학원 강의와 재가센터 운영에 관여한 적 있었지요
운영 잘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서로 제살 깍아먹기지요.
남자 보호사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여건이 되시면 인강으로 사회복지사 취득하심도 좋을 것 같네요
성투하세요~
사회복지사는 정년이60살로 알고 있는데요~50후반정도면 도전하지 않더라구요~
@명수 기관에 취업할시는 그렇고 혹 센터 운영하시게 되면 도움됩니다 ㅎ
요양서비스 쪽을 잘 아시는 분이라 반갑네요.
제가 처음 창업 목적에서 취업으로 생각을 바꾼 것도 운영이 쉽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아직 팔팔하니 20년까진 아니래도 10년쯤은 일할 수 있겠지요.
취업을 해도 큰 수입보다 차비, 밥값, 술값 제하고 조금 남으면 됩니다.
그래도 쬐끔 더 여유가 생기면 나중 님에게 밥이라도,,^^
@명수 사회복지사는 취득 조건도 요양보호사보다 훨씬 어려워서 저는 좀 힘들 걸로 보여요.
@꽃샘바람 꽃샘바람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게 조언 주는 사회복지사도 센터 운영하기 위해 복지사 취득하는 사람이 있다네요.
대단한 각오를 하셨네요.
갠찮을것 같아요.
간호사도 남성간호사 있지요.
요양보호사 남성환자
돌보시면 너무 좋을것
같아요. 대우받으시면서~
일하다 잠시쉬면 꿀 맛
이겠지만, 건강한 체구로
매일놀면 지옥같죠.
요양보호사 남성분 좋아요.
울친정아버님 돌봐주셨어요. (남성분이)
정신건강이 좋으십니다.
육체건강 하시면 70넘어도
할 수 있는것 같아요.
역시 범은 범이셔요.ㅎ
제가 한두 달만 쉬면 좀이 쑤셔 되레 아픈 사람입니다.
출근하고 나서는 일하기 싫을 때 있다가도
막상 놀면 일상이 흐트러지고, 다시 일 하면 정리가 되는,,
요양을 받는 사람이 남성을 원하는데도 남자 요양사가 없어서
여성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범이면서도 어흥 소리 잘 못내고 사는데 응원 감사합니다.^^
사회봉사도 할수 있다니
참 좋은 쪽으로 가닥을
잡어셧네요.
저도 세상에 태어낫음
봉사도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할텐데 민생고로
열일 하며 삽니다.
하시는일 순조롭게 잘
되시길 바랍니다.
취업도 좋지만 봉사활동에 더 필요한 것이 요양보호사라 봅니다.
저도 지금껏 봉사를 못하고 살았는데 힘이 있을 때 해보려고 합니다.
글구 꼭 봉사를 못해도 님처럼 자기 일에 충실하며 사는 것도 일종의 봉사겠지요.
가족 봉사, 인생 봉사, 아주 중요한 봉사죠.^^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기사 봉사하신다는 마음이면
그닥 힘들지 않으실꺼예요
제가 평생 오직 한 가지 직종에서만
노가다 뺨치게 고된 일로 밥을 빌었던 사람이라
육체적으로 힘든 일에는 이력이 났답니다.
수업을 지도했던 사회복지사도 제게 요양보호사 취득을 강력 권유하면서
하는 말이 그동안 수많은 수강생을 가르쳐왔지만
적성에 맞을 것 같은 느낌이 오는 남성은 드물었다 하네요.
모든 일이 오직 힘으로만 하는 건 아니겠으나
취업이든 봉사든 함 시도해 볼랍니다.^^
남자분 요양 보호사 환영하지요
사실 요즘 치매 환자 분들 비대하신분 많아요 남자 요양사님
필요하지요 지금 많이 모자란다고 들었어요 전 50대에 잠깐 몸담았다가 체력적 한계로 그만 두었지요 잘하셨습니다.
실습할 때 환자분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데도
정말 힘이 들더라구요.
요양보호사들이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이유이기도 한답니다.
초기에 같이 강의 들었던 친구가 내게 말하더군요.
자넨, 성격이 차분해서 잘 할 거야.
게다가 음식 요리도 잘 하잖아?^^
모든것 들이
뜻 되로
잘 되기를
응원합니다
이제껏 살아온 인생에서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았지만
산사나이님의 응원을 기쁘게 받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미국에서 열심히 사시는 보리님의 응원을 받으니 힘이 나네요.
만날 사람 인연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법,
행여 나중에 우리 하이파이브라도 할 수 있기를 ㅎㅎ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이를 떠나서 무슨 일이던지...
최대한 보람되게...즐겁게 하시면 만사형통입니다요~!!
카페 앱을 깔지 않고 오직 PC로만 소통을 하다 보니 하루가 훨씬 지나서야 답을 합니다.
늦게라도 봤으니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도 있지요.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살았으니 이제부터 뭐든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님처럼 긍정적으로 응원하는 마음을 저 같은 아날로그가 더 잘 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