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행궁’과 ‘이천 별빛정원 우주’
지난 8일 오후 야간개장이 진행 중인 수원 화성행궁 모습.
깊어가는 6월의 초여름 푸른 밤, 선선한 공기를 만끽하며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일상에서 접하던 도시의 네온사인, 휘황찬란한 빌딩숲의 풍경이 조금 따분해졌다면 경기도 곳곳에서 색다른 야경을 눈에 담으며 초여름 밤을 만끽해 보자.
■ 수원 화성행궁
지난 8일 오후 야간개장이 진행 중인 수원 화성행궁 모습.
도심 곳곳에 남아 전통과 현대를 잇는 궁궐은 방문하는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각양각색의 매력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가운데 조선의 정조가 행차 때마다 임시로 머물렀던 궁궐이던 화성행궁도 매년 야간개장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올해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화담, 花談’은 오는 10월29일까지 계속된다.
행궁에 깃든 이야기는 낮보다 밤에 더 흥미롭다. 정문 신풍루를 지나, 좌익문과 중앙문으로 들어서는 구간에는 거대한 달, 토끼, 꽃 조형물들이 궁궐의 아기자기한 멋을 한껏 살려주고 있다. 특히 왕실과 민간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꽃인 모란을 모티브로 하는 콘텐츠들이 고궁 내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모두 수원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지역작가들과 함께 협업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난 8일 오후 야간개장이 진행 중인 화성행궁 봉수당 전경.
그들을 뒤로하고 중앙문으로 들어가면 시시각각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방문객을 맞는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도 보인다. 건물을 수놓는 미디어파사드 작품이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행궁 안쪽에 조성된 미로한정에선 수원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청사초롱길에서는 수원시규방공예연구회와 협업한 공간 연출의 미학을 음미할 수 있다.
용인에 사는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김은수씨(24)는 우연히 들른 화성행궁의 매력에 대해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웅장한 경복궁 같은 궁궐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아담하고 한옥 느낌이 더 잘 깃든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면서 “지금처럼 선선한 여름밤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딱 좋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 이천 별빛정원 우주
지난 7일 오후 이천 별빛정원 우주 내부의 빛으로 둘러싸인 터널에서 방문객들이 산책하고 있다.
여름밤에 만나는 야경은 마음 한구석에 잔잔한 설렘을 안겨준다. 도심 속에서 많이 접해본 건물과 교각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이 식상할 때 즈음, 이천 별빛정원 우주를 찾는다면 색다른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각종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여름밤의 낭만을 더해줄 재즈 선율이 어느새 귓가에 맴돌고 있다. 잘 꾸며 놓은 정원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빛이 스며들어 있다. 몽환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보랏빛 조명들은 흩날리는 버들처럼 자연물의 일부처럼 정원에 녹아들었다. 또 여기저기서 빛을 뿜어내는 조형물들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환상의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라고 손짓하는 안내자들처럼 느껴진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직관적인 체험 공간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힐링 스팟이 많아 밤이 깊어갈수록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지난 7일 오후 이천 별빛정원 우주 내부의 바이올렛 판타지 구간의 산책로
부산 해운대에서 온 정영주씨(35)는 초등 2학년생 자녀와 함께 벤치에 앉아 형형색색의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는 라이팅쇼에 푹 빠져 있었다. 정씨는 “원래 에버랜드에 가려고 했다가 근처에 같이 가볼만한 곳을 함께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면서 “예전에 김해에서 이곳과 비슷한 테마파크를 가본 적이 있는데, 여기가 훨씬 포토스팟도 많아서 좋다”고 웃어보였다.
조명 가득한 터널에서 여자친구와 사진을 찍던 윤기호씨(가명·20대)는 강원 원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다. 윤씨는 “원주에는 야간에 카페 같은 곳을 제외하면 데이트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느껴 교외로 함께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았다”면서 “늦은 시간까지 개방돼 있는 데다 추억을 남길 거리도 많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