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
벽면과 천정의 온갖 못 나고 지저분한 것을 깨끗한 문양의 종이로 덧씌운다. 지지고 볶고 살아온 삶의 때를 슬쩍 덮는다. 문과 굽도리의 잡스런 흔적은 닦고 덧칠한다. 새것만은 못하지만 훨씬 낫다. 가구를 끌어내고 꼭꼭 숨어 몹쓸 것들을 만들어 내던 먼지도 말끔히 내쫓는다. 덩달아 내 마음에 켜켜이 쌓인 먼지와 때도 털어낸다. 한 십몇 년 만의 일이다.
거실 천장벽지 일부가 갈라지고, 부엌천장은 조리 열기 때문인지 유난히 색이 누렇다. 또 그게 아니라도 여기저기 찢어졌거나 못을 박았던 아픈 흔적도 치료가 필요하다. 이틀간 수선을 떤 끝에 저녁 늦게 작업이 완료되니 새집이 된 듯한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무늬가 자잘한 미색 계통의 벽지 덕에 분위기도 확 밝아졌다. 우리는 이런 밝은 분위기를 좋아한다.
먼저번에 집을 수리하며 인테리어 업체에 일임했더니, 그 사람 보통 노동자처럼 생긴 외양과는 다르게 ‘예술적, 미적 분위기’ 운운하며 곳곳에 칙칙한 문양의 벽지를 붙여 놓았다. 포인트 벽지라나 뭐라나. 이런 침침한 분위기라면 제아무리 예술적이라도 나는 반갑지 않다. 이번 도배에서 빠트린 내 방은 그래서 마뜩잖다.
도배를 꼭 해야 할지를 아내와 몇 번 따져보기도 했지만, 흉하게 갈라진 거실천장을 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애써 수리에 성공해도 천장 전체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실력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능숙한 솜씨가 아니면 말끔하게 칠할 수가 없다. 사실 2년 전에도 천장 일부에 페인트를 칠했지만, 시원찮은 솜씨의 흔적이 남아 늘 꺼림칙했었다. 누가 왜 저러냐고 물으면 대답도 준비했었지만, 다행인지 묻는 사람은 없다. 내가 지레 겁을 먹었나. 거실까지 이렇게 해 놓으면 긁어 부스럼이다.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어설픈 솜씨로 함부로 대들면 안 하니만 못하다. 두고두고 부끄러운 곳이 두어 군데 있다.
집안일은 대체로 나 스스로 하지만, 생각처럼 일의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페인트칠이 그렇고, 벽지나 벽체 보수가 그렇고, 가구 수리 등이 그렇다. 자주 해 보지 않은 일이라 능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바른 시공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처 생각 못 한 문제는 언제나 나타나기 마련이다. 시행착오를 반복한 어설픈 흔적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그래도 전문가를 불러서 했으면 돈이 얼마나 들었겠냐며 우리 부부는 눈을 찡끗한다.
다만, 전기에 관하여는 자신 있다. 덜컥 일을 저질러도 제법 깔끔하게 끝낼 수 있다. 최소한 이론적으론 거의 완전하기 때문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전기와 씨름하며 살아온 덕이다. 역시 세상 모든 일은 숙련이 필요하다.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다르지 않다.
아침부터 도배공들이 벽지를 북북 뜯어내는 모습에 시골집을 도배하던 모습이 겹친다. 기둥은 나무고, 벽면은 흙벽돌을 쌓고 미장했으나 오래되니 틈이 많고 훼손된 곳도 많아 판판하지 않다. 천장 서까래가 보이는 집도 많았지만, 우리 집은 반자를 붙였으니 그나마 조금 낫다. 방바닥은 갈색 시멘트포대 종이에 콩기름을 먹여 반질반질했었다. 요건 참 맘에 든다. 지난번 집수리 때 그것이 그리워 방바닥에 장판지를 바르자고 우겼다가 아내한테 혼만 났다. 그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건만, 나더러 촌스럽다고 윽박지른다. 방문은 촘촘한 문살 위에 하얀 창호지를 발랐다. 벽면은 울퉁불퉁하니 도배지를 바르기가 참 어렵다. 단단한 시멘트나 합판을 붙여 반듯한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군에 갔다 온 후까지 아버지가 안 계신 집의 도배를 어머니와 몇 번 해 보았지만, 참 힘든 일의 하나다. 그나마 우리 집은 벽이 비교적 판판하다. 솜씨 하면 근동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소문 난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집이기 때문이다. 벽지도 천안에 나가 골라 사 오셨으니, 신문지나 마분지를 바른 토담집과는 사뭇 다르다.
벽지와 함께 창호지도 같이 샀는데, 그 상큼한 냄새는 여전히 머릿속을 맑게 해준다. 풀을 듬뿍 바른 창호지를 문짝에 붙여 뜰에 내놓고 한나절을 말리면 팽팽해진다.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면 가볍고 맑은 장구 소리가 난다. 창살이 촘촘한 곳과 넓은 곳의 소리가 다르다. 어설피 동요 음정을 맞추니 찢어진다고 어머니가 야단이시다. 그래도 이게 악기의 원리인가 보다 짐작해 보기도 했다. 문을 여닫을 때도 신기해서 두어 번씩 두드려보던 기억이 새롭다. 손잡이 부근엔 겹으로 발랐는데, 어머니와 누님은 그사이에 예쁜 봉숭아나 국화꽃을 펴 바르니, 아름다운 꽃문양이 은은한 창호지가 된다.
현대식 아파트에도 이런 창호지 바른 창문이 있다면, 가을 대표 꽃 코스모스를 사이에 넣은 창호지를 직접 바르고 말리고 손가락으로 두드려 보고 싶다. 유리만능 시대니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리운 옛 추억의 하나다.
내가 직접 도배를 한 것은 근 삼십여 년 전 안양의 주공아파트에 살 때까지다. 셋집을 얻어 이사하면 으레 하는 것이 도배다. 이사 때마다 주인이 해주어야 한다느니 세입자가 해야 한다느니 입씨름을 하지만, 결국 가난한 우리가 했다. 우리 주머니는 더욱 가벼워진다.
아내는 풀칠하고 나는 붙이고, 애기는 옆에서 낙서하고…. 요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이었다. 온종일 힘들여 하고 나면 새집 같은 느낌이다. 벽 속의 실금이나 상처를 감추어 바르니, 때로 있던 우리 가족의 불협화음도, 마음의 찌꺼기도, 주인과의 도배갈등도 다 덮어진 듯 기분이 상쾌했었다. 이후에는 도배를 직접 해본 기억은 없다. 연달아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한 덕이다. 설령 하고 싶어도 도배공에게 맡기는 시절이 됐다. 삶이 편안하고 질이 개선된 모습의 하나다.
불현듯 도배가 발달한 우리나라와 페인트칠이 발달한 서양을 비교해 본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울까. 도배보다는 페인트칠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아름답기로는 도배가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우리에게 페인트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것은 조금 서운하다. 벽지문화가 발달한 것은 우리나라의 페인트산업이 근대까지도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이유인가 싶다. 고궁의 단청을 보면 페인트칠이 불가능할 것은 아니지만, 서민들이 취하기가 어려우니 벽에 종이를 바르는 풍습이 생겼나 보다. 하긴 고향의 토담집은 흙벽이니 설령 페인트를 구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검은 얼굴에 찍어 바른 분이다.
깨끗하고 질긴 벽지를 뜯어내고 다시 고급 벽지를 바르는 것을 보며 드라마에서 보던 근대이전의 빈민가정의 벽을 떠올린다. 신문지를 처발랐던 친구네 초가삼간 토담집. 종이를 바른 것은 흙벽을 덮기 위함일 뿐이다. 아름다운 문양은 고사하고 깨끗함조차 사치다. 방안의 퀴퀴하고 가난한 냄새는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돈다.
첫댓글 새봄맞이 단장을 하셨군요 알뜰 살뜰 살아오신 잔잔한 삶의 애정이 흠뻑 밀려듭니다.
예, 그랬습니다.
옛날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송구하기도 했습니다.
옛날엔 벽에 황토흙칠을 해 놓으면 옷에 묻어 났던 그 시절 생각하면 요즘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럼요. 옛날 초가삼칸 토담집에 쭈그리고 살던 친구가 퍽 불쌍하게 생각이 듭니다.
수고하셨습니다~~내 손으로 다듬은 보금자리 마음으로 뿌듯 하실 겁니다^^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도배랍니다^^
도배도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내손으로 이뤘다는 행복감에 젖을 듯 합니다^^
제가는 못했습니다. 도배공을 불러서 했어요.선생님~ ^^
그래도 끝내고 나니 좋기도하지만, 옛생각이 절로 나서 몇 줄 써 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집도 도배를 할 때가 되었는데 자꾸 미루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새 기분에 좋은 글 많이 쓰십시오.
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