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毛澤東)과 등소평(鄧小平)의 리더십과 치적 비교
모택동(1893-1976)과 등소평(1904-1997)은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하는데 명실상부 가장 큰 공헌을 한 지도자로서 두 사람은 건국이후에도 사회주의 중국을 거의 50년간이나 통치했다. 그러나 모택동이 대약진운동(1958-60)과 문화대혁명(1966-76)을 일으키면서 순수한 사회주의 건설을 급진적으로 추진했던 이상주의적(理想主義的) 영도자였다면 등소평은 문화대혁명의 희생자로서 모택동 사후 붕괴된 중국 정치 ? 경제를 복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복권 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입장에서 개혁 ? 개방을 추진(1978. 12), 그의 사망(1997.2.)시까지 과거의 적(敵)이었던 세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손을 잡고 이들의 장점을 대담하게 도입한 현실주의적(現實主義的) 영도자였다. 등소평은 모택동이 그토록 타기해 마지않던 자본주의제도와 그 가치를 도입하여 빈궁한 인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국위를 떨치는데 성공한 영도자였다. 자본주의에서 여러 장점(기술, 합리적 경영, 이윤, 경쟁, 효율성, 시장경제, 사유제 등)을 발견하고 흡수하여 중국의 낙후한 사회주의 현실과 접목함으로써 인민의 생산의욕을 폭발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켰으며 국력을 증대시켜 세계가 놀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동방대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를 기초로 해서 강택민(江澤民. 1926- )이 제3세대로서 중국을 계속 발전시켜가게 만들어 놓았고, 곧 이어 호금도(胡錦濤, 1942- )가 그 뒤를 이어갈 전망이다. 따라서 2020년에는 GNP가 세계 최대인 국가가 되고 미국 ? EC와 더불어 세계 3대 강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을 바라보면서 건국이후 50년간 중국을 지배했던 모택동과 등소평의 리더쉽(영도력)과 치적(治績)의 공과(功過)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과연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고 치적이 있길래 12억 9천만의 인구, 언어가 다른 복잡한 56개 민족, 그리고 한반도의 44배에 달하는 영토를 단단하게 응집시켜 장악하고 다스릴 수가 있는가? 따라서 이 리더십을 비교해보기 위해 우선 그들의 성격과 사유방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치적의 공(功)과 과(過)를 분석해 보았다. 이는 중국의 장래는 물론 남북한 통일국가를 대비하면서도 깊이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테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