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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공평으로 뿌리실 후반전의 빛 (시2-97)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찬양 : 슬픈 마음 있는 사람
본문 : 시97:1-12절
☞ https://youtu.be/2LrAcTZVo1k?si=7bG-0cYbBhaRoB1K
오늘은 한 주간의 사역을 마치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며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답답한 순간이다. 주님의 부르심은 동일하지만, 삶이란 자리에서 맡아야 할 역할은 변해 간다. 문제는 그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은퇴 준비를 위해 다양하게 준비한다. 한 친구는 90살까지 살 준비를 다 마쳤다고 했다. 물론 그 준비는 물질적으로 할 수 있는 준비를 말한다.
나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무엇을 준비했을까?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간 나는 과연 준비된 사람일까?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시편 97편은 시편의 네 번째 책에 기록된 시편이다. 다윗 왕정의 붕괴와 포로기라는 절망적 배경 속에서, 인간 왕의 실패를 목도 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여호와께서 여전히 다스리신다>는 궁극적인 소망을 제시하는 시편들이다.
오늘 시편 97편도 이렇게 시작한다. 1절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이 고백은 구약 신학의 핵심 선언이기도 하다. 여기서 표현된 <다스리신다>는 동사는 영원 전부터 시작해 지금도 변함없이 다시리고 계신다는 지속적인 통치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1절은 이런 그분의 통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표현된 축제로 우리를 초대한다고 말한다. 땅과 허다한 섬이란 이 땅의 모든 지역을 다 포함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2절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먼저 <구름과 흑암>이란 표현은 출 19장에 나온 시내산에 강림하셨던 하나님의 임재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그때 하나님은 구름과 흑암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죽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은혜의 가림막이었고,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좌의 기초가 <의와 공평>이란 그분의 통치가 정의와 공평으로 세워졌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사랑함으로 관계를 맺은 이들, 즉 세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는 자들을 향해 그들을 보호하시고 기쁨을 뿌리신다고 하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와 공평>이 보좌의 기초란 이 말씀을 좋아한다.
인간의 왕들은 감정이나 유익에 따라 통치의 기초를 바꾸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이 기초위에서 다스리신다.
지금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이 파기된 것 같고, 나라 전체가 포로가 되어버린 순간
시인은 이런 현실에도 <의와 공평>으로 여전히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6절에는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라고
이전에 행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며 붙든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만들어 고백한다. 10-12절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삶이 흔들릴 때 우리는 악을 미워하게 된다.
나의 악을 회개하기보다 악을 미워하며 악을 악으로 대항하기 쉽다.
그래서 칼빈은 성도가 세상에서 겪는 불의와 박해 속에서도 스스로 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자신의 안전을 맡기는 것이 진정으로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라고 주석했다.
의와 공평으로 오늘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악을 미워하지 않고 악을 선택하고 악인을 미워하는 삶을 살게 된다.
악을 미워해야 악인을 사랑할 수 있다.
그래야 악인의 손에서 건져냄을 받으며, 더 나아가 악인을 구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악을 미워하며 악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12절에 표현된 대로 의와 공평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로 받아들일 때이다.
여기 11절에 나오는 <빛을 뿌리고, 기쁨을 뿌리시는도다>처럼
히브리어 '자라'(zara)는 씨를 뿌린다는 뜻으로,
지금 당장 빛과 기쁨이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뿌리심을 믿기에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 상황도 통치하신다는 믿음은 상황이 나를 지배하게 두지 않고, 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그분 안에서 끊이지 않는 기쁨과 감사를 선택할 지혜와 힘을 부어주신다.
전반전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어떻게 시작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후반전의 삶도 의와 공평으로 통치하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으로 기뻐하며 오늘을 살면서 악을 미워하고 악인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날 되기를 다짐한다.
주님, 오늘도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기쁨을 뿌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상황도 의와 공평이 기초이신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펼쳐진 일임을 믿고 기쁨과 감사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 되겠습니다. 주님 영광받으소서.
한줄 묵상 :
<하나님이 이미 뿌려두신 빛과 기쁨의 씨앗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늘도 가장 어두운 터널 속에서 가장 신실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적용 질문 :
1. 내 인생의 '구름과 흑암'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나는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2. 오늘 내가 미워해야 할 '악'은 무엇이며, 그 악을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고 내가 품어야 할 '악인'은 누구인가?
3. 하나님이 내 사역의 후반전을 위해 이미 내 인생의 밭에 뿌려두신 '빛의 씨앗'과 기쁨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