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박정남
사람이 죽을 땐 먼저 혼불이 빠져나간다 아침에 화장실에서 나온 어머
니는 덜컥 방문 앞에 주저앉으며 “왜 이래 다리에 힘이 다 빠져 나가노”
하고 혼줄을 놓으셨다. 그럼, 어머니의 혼불은 쓰러지실 당시, 다리로
쏜살같이 빠져나간 것일까 남자의 혼불은 빗자루 모양으로 길게 빠져
나가고 여자는 접시나 간장종지 크기로 빠져나간다더니 그 빠져나간
혼불은 그럼 어디 가서 사나, 사흘이 걸려 무덤이 다 완성되면 그 속에
다시 들어가 불 켜놓고 살다가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환한 종달새 노래
띄우고 제비꽃 자그맣게 앉혀놓나
-박정남 시집, 『꽃을 물었다』(시인동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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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남 시인께서 2014년 봄날에 보내주신 5시집 『꽃을 물었다』의 시집 겉표지도,
겉표지 다음의 내지도 진한 노란색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그 노오란 리본 색깔 그대로다.
2년도 훌쩍 더 지났지만 아직도 유가족과 국민들의 가슴속에 세월호 그 슬픔의 물기가
그대로인 것이 무척 가슴이 아프다.
필자가 열 살 되던 해인 197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고, 지난 70년대 대구의 이기철, 이하석, 이태수, 구석본 등의 시인들과 <자유시>동인 활동을 함께 했던 박정남 시인, 그
는 이제 우리 한국문단의 중견 시인이다. 황감하게도 필자는 현재 박정남 시인과 한 문학 단체의 활동을 함께 하면서 가끔 뵐 때마다 그를 통해 문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힌다.
인용한 시「혼불」은 박정남 시인 자기 생명의 근원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을 그 제재로 하고 있다. 우리가 위 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차분한 감정 절제의 시적 진술이다.
“그 빠져나간 혼불은 그럼 어디 가서 사나,”와 “사흘이 걸려 무덤이 다 완성되면 그 속에 다시 들어가 불 켜놓고 살다가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환한 종달새 노래 띄우고 제비꽃 자그맣게 앉혀놓나”라는 혼잣말인 듯 누구에게 전하는 말인 듯 한 두 시구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어미를 떠나보낸 박정남 시인의 설움과 슬픔이 흥건히 배어있다.
그리고 필자는 「혼불」이 외에도 「김춘수의 가방」「복수초」「몽실 언니」「논거울 이야기」「밤에 연꽃이 지는 걸 보러 갔다」「만어(萬漁)의 신발」등의 시편에 밑줄을 그으며 오래 서성거렸다.
-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