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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걷고 타는 모닥불 앞에서
내가 챙겨 온 비옷과 거짓말"
나는 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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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유혜정 이호연 지음
(세상에 가려지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 11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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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차별과 혐오의 정치로 들끓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한국사회에서 사라진 적은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혐오 정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기와 한국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특별한 현상이며,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변화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희망없는 삶에 대한 분노는 구조가 아니라 약자를 출구로 삼았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기보호의 공포가 강하게 작동한다.
정체성은 저항의 출발점이 아니라, 타자를 배제하기 위한 선긋기가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엮으며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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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삶이란 이렇듯 고통스럽다거나,
반대로 이렇게 희망적인 삶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관점의 이야기 모두 소수자의 삶은 '문제'로만 남는다.
소수자는 타자화된 존재다.
그의 삶을 구성한 맥락이 지워진 채 사회적 통념과 편견으로 재단된 평면적 존재로 인식된다.
차별을 드러내고 문제화하겠다는 시도조차 때때로 그의 삶을 오직 하나의 문제로 환원해버리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타자화를 경계한다는 것은
내가 얼굴을 마주한 상대가 고유한 역사와 감정과 사고 체계를 가진 한 사람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동일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으며, 세상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위치성(position)을 가지게 된다.
내 안에는 성별,인종,민족,지역,계층,나이 등의 다양한 정체성이 얽혀 있다.
그러한 정체성들이 축이 되어 세계 속에 내 좌표가 생겨난다.
각자가 놓인 다른 위치가 다른 경험과 다른 인식을 만든다.
여성이라고, 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삶을 살지 않고, 같은 억압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러한 억압의 복잡성은 페미니즘에서 '교차성'이라는 말로 이론화된 개념이다.
한 사람이 겪는 억압은 그 사람이 놓인 다양한 조건들을 섬세하게 고려해 분석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억압이란 복잡한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늘 삭제된(숨겨진) 맥락의 가능성을 질문해야한다. 새롭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차별의 양상과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우리의 경험을 해석하고 재구성할 통찰력과 언어를 새롭게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서 차별과 고통을 앎의 자원으로 활용해
세상에 저항하거나 균열을 일으키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간 이들이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약자의 말하기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고 변화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일례로, 우리 사회에서 동의 없는 성관계를 '폭력'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애야,
성폭력은 성관계나 정조의 유린이 아닌,
젠더 권력구조 안에서 발행하는 여성에 대한 제도화된 폭력임이 드러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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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곁이 된다는 것은 전통적 의미에서 사랑과 헌신을 주고받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에게 부여된 위치가 이동하는 일이다.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규범 등을 재구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 자식이 '착한 딸'이기를 기대할 때 부모는 학내 성폭력을 고발한 자식의 곁이 돼줄 수 없다.
가족이나 친구같이 '친밀한'관계만이 내 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편견 없이 대해주는 직장 동료,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사회안전망,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과 연대에 이르기까지 곁은 다양한 수준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억압이 다층적이란 말은 변화 역시 다층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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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 누군가는 단 한 번밖에 없는 생을 두고 때론 결혼을, 때론 이혼을 선택한다.
둘 다 삶의 방관자가 아닌 행위자로서의 결단이다.
세상에 쿨한 사랑과 이별은 없다. 홀로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무수한 세계, 사람과 관계맺고 공존하기에 필요한 건 따뜻한 곁의 존재다.
가족이, 이웃이, 사회가 기꺼이 곁이 될 때,
세상을 함께 바꾸며 개인의 고유성과 가족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삶은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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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가 쉰인데 어디를 가면 보통 저를 '아가씨'라고 불러요.
좋은 의미에서 아가씨가 아니에요.중증장애인이니 당연히 결혼을 안 했을 거라는 거죠.
아니 더 정확하게는 결혼을 안 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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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0일.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상우 씨와 최영은 씨의 웨딩사진과 러브스토리가 한 일간지에 크게 보도됐다.
각각 30년과 20년 동안 거주했던 장애인 거주시설을 벗어나 자립생활을 시작하며
사랑을 꽃피운 이들의 결혼보도에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축복하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중증장애인 부부의 탄생을 축복하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사랑은 축복해도 아이는 낳지 말라는 댓글이 적지 않았다.
"둘이 같이 평생해로 하기를 바라나 2세는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는 낳지 마세요.아이에겐 고통입니다."
"그냥 혼자 살지.애를 낳으면 2세는 앞날이 깜깜하다. 현실을 생각해야지."
첫댓글 와 띵한 문장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