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돼지
╋ 찬미 예수님
올해가 무슨 해죠? 돼지해.
돼지도 보면 종류가 많아요.
백 돼지, 검은 돼지, 먹기만 하는 돼지.
그런데 생각하는 돼지가 있을까요?
기도하는 돼지가 있을까요?
과수원에 놓아먹이는 돼지는
주둥이로 흙을 파면서 떨어진 과일을
주워 먹으러 다니죠.
그런데 절대로 사과나무를 안 쳐다봐요.
꿀꿀거리면서 땅을 파면서
떨어진 과일만 먹어요.
올해 여러분은 돼지처럼 건강하세요.
그런데 먹지만 말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가끔은 생각을 하세요.
떨어진 과일 먹기 바빠
그 과일이 떨어진 나무는
한 번도 안보는 그런 어리석은
돼지가 되지 마시고,
생각하는 돼지,
기도하는 돼지,
겸손한 돼지,
그리고 기뻐하는
금 돼지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에게
사랑과 존경을 갖고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아멘
저 뒤에 걸린 자비의 예수님의 환한
품 안에 올 일 년 동안
우리 서운동 신자들,
또 방송을 듣고 있는
전 세계 신자들을 봉헌합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꿈과 희망을 갖고
새해를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바라는 것의 내용이
달라도 누구나 똑같이 바라는 것이
한 가지가 있어요.
마음 편하게 사는 것.
저도 그게 소원이에요.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죠?
내용은 달라도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소망은
올 한 해 마음 편하게 사는 겁니다.
마음이 편해야 몸도 편하고
영육 간에 건강을 누리게 됩니다.
마음 편하게 산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평화롭게 산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경험으로 봤을 때
쉽게 얻어질 것 같지 않아요.
2019년에도 어떤 도전이 있을지,
함정이 있을지 몰라요.
어떤 사람에 의해 잠시 얻었던
평화가 한 순간에 깨질지 몰라요.
그토록 원하는 평화가 어떤 때는
유리그릇처럼 땅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깨지고,
우리 마음은 평화가 아닌 어둠이
지배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우리들은 압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평화롭게 사셨습니까?
또 올 한 해 평화롭게
살 자신이 있으십니까?
평화의 정체가 도대체 뭡니까?
가족들끼리 소리 지르는 것도 없고
다툼이 없다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은
절대 아닐 겁니다.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의 결과입니다.
평화는 아래로부터
오는 것이 오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하느님이 주셔야 됩니다.
벌써 여러 해가 되지만
일본에 은퇴하면 꼭 살고 싶은
동네가 있었어요.
은퇴하신 분들이 그 동네에 많이 있었고
성당은 산 위에 아름답게 지어져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쓰나미가 몰려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지상낙원이라고 했던 그 곳이 한 순간에
지옥으로 바뀐 것에요.
어찌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 만들어가는
평화는 불완전합니다.
비록 목이 잘리는 처절한 순간에도
평화는 있을 수 있고,
세상 복 다 누리고 죽는 순간에도
평화 없이 죽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얘기 드렸죠?
박해 시절 천주교 신자들 참수하고
나중에 포졸들이 그 시신을
뒤질 때마다 깜짝 놀랐대요.
목이 잘린 그 얼굴이 다 웃고 있더래요.
어떻게 목이 잘렸는데도 웃고 있을까?
그래서 많은 포졸들이 그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대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예전 꽃동네에 교통사고로
허벅지 밑이 절단된 형제가 있었어요.
클럽 기타리스트였는데,
새벽 퇴근길에 잠이 덜 깬
덤프트럭에 두 다리가 뭉개졌어요.
자살도 몇 번도 시도하고
이런 저런 사연을 통해
꽃동네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처음 꽃동네에 입소했을 때는
얼마나 신경질적인지
아무도 말을 걸 수가 없었어요.
그 양반 신상카드를 보니
전 직업이 기타리스트야.
나를 내밀어내도 조금씩 다가가,
나중에 기타 사주며
꽃동네 기타리스트가 되어 달라했지요.
우두커니 하루 종일 고개 숙이고
밥 올 때만 기다리는 꽃동네의
그 많은 사람들.
처음에 준 기타는
그 다음 날 가니까 부숴놓았어요.
기타를 또 사서 줬어요.
세 번째 기타를 받고 나서는 회복했대요.
그때부터 이분은 할아버지 방에 가서
휠체어에 앉아서
기타를 얼마나 기막히게 치는지.
조용하던 할아버지들이 박수를 치고
꽃동네가 순식간에 천국이 된 것에요.
고통네가 아니라 꽃동네로 바뀌는 것에요!
그분은 순식간에 꽃동네의
스타 중에 스타가 됐지요.
한참 지나고 난 다음에 내가 물었어요.
“형제님, 다리가 없는 게 굉장히 불편하시죠?”
“괜찮아요. 하도 사는 게 재미있어서
이제는 없어진 다리 볼 시간도 없어요.”
맞죠. 못난 사람은 평생 못난 것 붙들고
징징거리면서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의 상처나
어둠을 보지 않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움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과연 그 사람이 기도를 하고,
미사를 참석하더라도 마음에 평화가 있을까요?
무엇을 해도 미운 사람 생각만 나고,
‘그놈 밉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계속 튀어나옵니다.
꿈에서 조차도 ‘어떻게 하면 복수할까?’
궁리하고 그 사람이
뭔가 잘못되기를 바라곤 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게 상처 준
그 사람의 종이 되어 끌려 다니며
쓰레기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미움과 분노에 끌려 다니는 삶,
이것이 바로 종의 삶입니다.
끌려 다닌다는 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위대하신 하느님의 자녀이고
그분 나라의 상속을 보장받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들입니다.
미움의 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인이 되고
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평일미사 때 얘기한 것 같은데,
어느 자매님이
시어머님이랑 사는데 정말 미웠대요.
시어머니가 경로당에 간 사이
청소를 하다 속이 끓어 벽에 걸려있는
사진에 삿대질을 했대요.
그런데 막 삿대질을 하다보니까
팔이 안 내려가는 것에요.
정형외과 가서 물리치료를 하고
침을 맞고 해도 삿대질한 팔이
내려가지 않는 것에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본당에
성령세미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모님이 ‘의사가 고칠 병이 아니야.
내가 볼 때 마음의 병 때문인데,
하느님이 고쳐줘야 될 것 같아.
세미나 받자.’
성령세미나를 7주,
8주 하는데 안수 받는 날 이었어요.
안수식이 있는 날 신부님이
안수를 해 주는데 눈물이
앞을 확 가리는 것에요.
그동안 시어머니를 미워했던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땅을 치며
울고 있는 것에요.
팔이 내려왔어요.
‘용서하니까 나았다.’는 것에요.
끌어안으니 그 병이 나았다.
여러분이 속 뒤집어 놓는 인간들이
많이 나타났다 사라질 것에요.
오래 담지 마세요. 끌어안으세요.
올 한 해 동안
자유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미움의 종이 되지 맙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만과 허영의 종이 되지 맙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상처를 주는
못된 입술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 쾌락의 노예가 되지 맙시다.
평화는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 될 때 주시는
선물임을 잊지 말고,
올 한 해 내 평화를 깨는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말고
신앙의 승리를 하도록 축원합니다. 아멘.
2019년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01/0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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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렬신부(예쁜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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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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